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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39

[인천인물 100人] 34. '묵헌' 김정렬 前인천시장 >34< '묵헌' 김정렬 前인천시장 지난 1996년 6월10일 오후 인천시 남구 숭의동 수봉공원에서 최기선 시장을 비롯, 신맹순, 김동순, 심정구, 문병하, 이기상, 강부일, 민봉기, 곽재영 등 인천 지역의 정·관·재계 인사 3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법(司法), 행정(行政), 입법(立法)의 3부(三府)를 두루 거친 묵헌(默軒) 김정렬(1907~1974) 전 인천시장의 '송덕비' 제막식을 갖기 위해서다. 고인이 된지 22년만의 일이다. 묵헌의 큰 아들 한경(82)씨는 "2년여동안 제막식을 준비한 터라 참석자들의 얼굴은 고무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행사는 '고 김정렬 전 시장 송덕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고 김은하 전국회부의장)'가 주관하고 지역인사 120여명이 추진위원으로 참여해 뜻을 모았다... 2005. 12. 29.
[인천인물 100인] 32. 서양화가 장발 - 근현대 미술 '격동의 중심' 지난 2001년 4월8일 인천 출신의 장발(張勃) 화백이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100세의 나이로 타계한 직후 미술계와 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도 학자와 비평가 사이에서는 연구자의 처지와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장발 화백이 민족사적 수난시대를 겪어오면서도 한국 화단과 미술교육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과 미술협회 분할과 '국전(國展)'파동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미술계의 건전한 발전에 제약을 가하는데 일조했다는 대조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근·현대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장발 화백에 대한 평가는 작가로서, 미술교육·행정가로서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발은 우현 고유섭보다도 5년이나 앞서 한국의 화가 중 최초로 미국에 유학해 콜롬비아대학.. 2005. 10. 25.
[인천인물100인] 30.아동작가 현덕 좌익, 월북에 묶여진 순수함 60여년만에 '어린이품으로' &lt;사진설명&gt; 138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소개란에 실린 작가 사진(1월 7일자) 뛰어난 아동작가로 평가받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를 냉전 이데올로기로 지난 70여년을 묻어 왔다.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했던 인천도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세월.. 2005.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