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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한국어32

"외국어로 학문하기 전에 ‘학문어로서의 우리말’ 먼저 살펴봐야죠" 국어사랑이 남다른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유재원 선생의 많은 역작 중 하나를 꼽으라면 "우리말 역순사전"이 아닐까. 포털검색을 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우리말 역순사전"이다. 그 사전에 수록된 어휘들은,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밥'을 찾으면, 그 아래에는 흰밥, 보리밥, 팥밥, 밀밥, 김밥, 비비밥, 덮밥, ... 우리말을 사랑하기에 그런 연구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유교수가 만든 그리스어사전은 네이버사전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제공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그의 연구와 궤를 같이하는 글을 한 꼭지 보자. 2011년 10월, 서울대학교신문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o 출처 : “외국어로 학문하기 전에 ‘학문어로서의 우리말’ 먼저 살펴봐야죠” < 보도 < 취재 < 학술·책 < 기사본문 .. 2023. 1. 10.
위당 정인보의 자모사(慈母思) o 출처 : 위당 정인보 “자모사(慈母思)” 문학 / 2018.11.10. 22:25 출처 : https://hancho.tistory.com/1774 http://www.seelotus.com/gojeon/hyeon-dae/si/si-jo-hyeon-dae/ja-mo-sa.htm 자모사(慈母思) 1 가을은 그 가을이 바람불고 잎 드는데 가신 님 어이하여 돌오실 줄 모르는가 살뜰히 기르신 아이 옷 품 준 줄 아소서 2 부른 배 골리보고 나은 얼굴 병만 여겨 하루도 열두 시로 곧 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 채 그지 달려 삽내다 3 동창에 해는 뜨나 님 계실 때 아니로다 이 설움 오늘날을 알았드면 저즘미리 먹은 맘 다 된다기로 앞 떠날 줄 있으리 4 차마 님의 낯을 흙으로 가리단 말 우굿이 어겼으니 .. 2021. 1. 22.
위당 정인보의 자취 위당 정인보 선생의 자취에 대한 기록을 옮겨왔다. 1. 시인 조동화 선생의 글 ("시조21" -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꿈꾸는 잡지 - 중에서) 출처 : blog.naver.com/sijo21/20107729642 위당 정인보의 조춘(早春) - 조 동 화 (시인)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는 조선 말기 영의정을 지낸 동래 정씨(鄭氏) 원용(元容)의 4대손으로 서울 출신이다. 1893년 호조참판을 지낸 아버지 은조(誾朝)와 어머니 달성서씨(達成徐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가는 장흥방(회현동)이고, 10세 전후까지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으며, 1905년 성계숙과 결혼했다. 1910년 대한제국 말기의 양명학자인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에게 집지(執贄)를 드린 후 경학과 양명학을 공부하다가 이듬해 벽초(碧.. 2021. 1. 22.
정인보의 「조춘(早春)」에서 맛보는 우리 말의 아름다움 창가에 앉아 거실 밖 따사롭게 느껴지는 풍경에 문득 떠오르는 싯구 하나,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의 「조춘(早春)」. 싯구만 가지고는 '아, 정말 아름다운 우리 말의 조련사' 정도로 지나칠 지 모르겠으나. 시골에 10여년 살아보니 위당 선생은 정말 우리 것을 찬찬히 살피어 풀 하나 나무 하나에까지 사랑을 쏟았던 진정한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조를 지은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발표가 1929. 4월, 월간지 "신생新生"에 수록되었다. 선생은 1893년 서울 장흥방(회현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1910년대에 중국 상하이, 난징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8년경 모친 서거 후 귀국하였다고 한다. 1923년부터는 서울 양사골(현 충신동)에 살았으며 연희전문, 이화여전, 세브.. 2021.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