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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한국어

정인보의 「조춘(早春)」에서 맛보는 우리 말의 아름다움

by 아름다운비행 2021. 1. 22.

창가에 앉아 거실 밖 따사롭게 느껴지는 풍경에

문득 떠오르는 싯구 하나,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선생의 「조춘(早春)」. 

 

싯구만 가지고는 '아, 정말 아름다운 우리 말의 조련사' 정도로 지나칠 지 모르겠으나.

시골에 10여년 살아보니

위당 선생은 정말 우리 것을 찬찬히 살피어 풀 하나 나무 하나에까지 사랑을 쏟았던 진정한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조를 지은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발표가 1929. 4월, 월간지 "신생新生"에 수록되었다.

 

선생은 1893년 서울 장흥방(회현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1910년대에 중국 상하이, 난징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8년경 모친 서거 후 귀국하였다고 한다. 1923년부터는 서울 양사골(현 충신동)에 살았으며 연희전문, 이화여전, 세브란스의전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산골에 남은 눈이 따사로운 듯이 보이는 무렵이면  

실제로 솔잎은 그 빛을 더해가고 있다.

눈이 와 포근한 얼음솜이불을 머리에 이고 지고 있어도, 양력 1월 지금 즈음에는 이미 솔잎의 빛이 더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위당은 그런 모습마저도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싯구로 읊었으니 선생은 진정으로 이 땅과 우리 말을 아낀 선각자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조춘(早春)

   - 정인보 -

 

그럴싸 그러한지 솔빛 벌써 더 푸르다.

산골에 남은 눈이 다산 듯이 보이고녀.

토담집 고치는 소리 별밭 아래 들려라.

 

나는 듯 숨은 소리 못 듣는다 없을쏜가.

돋으려 터지려고 곳곳마다 움직이리.

나비야 하마 알련만 날개 어이 더딘고.

 

이른 봄 고운 자취 어디 아니 미치리까.

내 생각 엉기올 젠 가던 구름 머무나니,

든 붓대 무심타 말고 헤쳐 본들 어떠리.

 

(1929년 [신생(新生)]에 발표된 시조)

 

 

* 정인보(鄭寅普 ; 1892-?)

 

시조시인. 사학자. 호는 위당(爲堂). 서울 출생.

1910년 중국에 건너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특히 동포를 계몽하는 일에 힘썼다.

1919년 귀국하여 연희전문, 이화여전 등에서 동양학을 강의하면서 시대일보, 동아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시조, 한시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조집으로 [담원시조집] 등이 있다.

6 · 25 때 남복되었다.

 

 

 - - - 

 

* 서울 양사골 : 양사골이 현 청진동이라고 쓴 곳도 있고 충신동이라고 쓴 곳도 있다.

동일 지명이 두 곳에 있었을 수도 있으나, 청진동, 충신동간 거리가 가까운데 동일지명이 붙어있다 싶이 했을 리는 없고, 동대문 종로6가에 양사골사철탕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위당선생이 살던 양사골은 현 충신동 인근인 것 같고, 그렇다면 이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 당시 선생의 경제적 여건은 녹록치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 양사골이 청진동이라고 나오는 자료 : blog.naver.com/lky94312/220424464949

- 양사골이 창신동이라고 나오는 자료 : https://cafe.daum.net/hmsh1208/FpDy/256?svc=cafeapi

                                                  양사골사철탕집 위치 자료 http://naver.me/GvkoweSx

 

* 서울 옛지명에 '方'자가 들어가는 것 :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한 태조 이성계가 1395.6.6 한양부를 한성부라 하고

  1396년 5부(동·서·남·북·중부) 52방으로 하였다. blog.daum.net/k2gim/11406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