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쓰는 학문이 발전하지 못하면 우리글은 사라져 버리고 말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유재원 교수가 아래 기사 중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오래 전 서울대에서 「우리 말 역순사전」을 출간했다. 1985년 일이다.
이런 거다.
예를 들어, 끝말이 "밥"으로 끝나는 말은 전부 한 자리에 모은 거다. (<-- 이 말은 내가 기억하는, 당시 신문보도에 나온 사례였다)
끝나는 말(받침)이 'ㅇ'인 글자도 한데 모았다.
-밥
밥, 깁밥, 주먹밥, 덮밥, 볶음밥, 꼬두밥, ... <-- 일반사전에서는 각각 ㄱ,ㄷ,ㅂ,ㅈ부에 수록
-ㅇ
하양, 빨강, 파랑, 노랑, 검정, ... <-- 일반사전에서는 각각 ㄱ,ㄴ,ㅂ,ㅍ,ㅎ부에 수록. 역순사전에서는 모두 ㅇ받침에 모이게 되어
낱말들의 형태와 의미 사이의 상관관계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유재원(劉載源·69; 2019년 9월 현재) 교수가 서울대에 강사로 있을 적에 학부·대학원생 11명과 함께 2년여 작업 끝에 3만7천여 단어를 수록한 우리말 특수사전 중 하나를 만든 것이다.
월간조선 2019년 9월호에 수록된 글. 그 중 일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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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한 세대 지나면 우리나라 학문은 다 망해”
유 교수는 이 대목에서 비장하게 우리말과 우리글로 하는 학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인이, 한국의 화학자와 물리학자를 위해 논문을 써야 한국의 과학이, 집단지성이 발전합니다. 우리끼리 훌륭한 논문을 쓴 뒤 학계에서 평가받아서 영어로 바꿔 발표하면 돼요.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영어로 논문 쓰라고 난리입니다. 대학평가 기준이 영어논문이죠. 학술진흥재단의 평가 기준이 한글로 논문을 쓰면 120점이고, 세계적인 SGI급 학술지에 등재된 영어논문은 600점을 줍니다. 5배 차이가 나요.
이런 식이라면 한 세대가 지나면 우리나라 학문은 다 망합니다. 후손들에게 뭘 남겨주겠다는 겁니까. 영어논문을 남기겠다고요?”
o “조선어학회 이극로(李克魯·1893~ 1978) 선생이 ‘맞춤법 통일안을 만드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친일파 사람들이 돈을 많이 냈어요. 친일파조차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는 데는 절대로 돈을 안 아꼈어요.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중략) 이완용(李完用·1858~1926)은 죽을 때까지 일본어를 안 배운 사람입니다. 말을 배우는 순간 말의 노예가 되니까. 통역을 쓰는 게 대우를 더 잘 받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 사람, 언어 천재였습니다. 영어도 무지 잘 썼는데 일본말을 몰랐겠어요?”
o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를 세운 민족은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었어요. 그들의 언어는 만주어였고, 청나라를 세운 뒤로 만주문자를 만들어 공용어로 사용했죠. 오늘날에도 베이징 자금성에 가면 모든 현판에 한자와 함께 만주어가 적혀 있어요.
만주어는 공용어가 갖추어야 할 모든 필수조건을 갖춘 언어였을 뿐 아니라 300년 이상 세계 최강 중국의 공용어로 쓰인 언어인데도 결국 사어(死語)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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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아래에 전재한다.
o 출처 : 월간조선, [김태완의 인간탐험] 그리스학자 유재원 교수가 말하는 ‘언어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 월간조선 (chosun.com)
김태완의 인간탐험
그리스학자 유재원 교수가 말하는 ‘언어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무기 중의 무기는 言語, 민족 생존은 母國語에 달려 있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 세계 최초·유일의 학문어는 그리스어. 풍부한 어휘를 가져다 쓸 언어의 보물창고
⊙ 일본은 17세기 이후 서양의 문학과 학술 서적을 번역하며 한국·중국을 앞질러
⊙ 일본이 치열하게 번역한 것을 한국은 막 가져다 써. 매우 위험해
⊙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문자를 얻은 민족이 한국… 학자의 모국어 인식이 민족 운명 결정
劉載源
1950년생.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그리스 아테네대학 언어학 박사, 그리스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대학 명예박사 / 한양대·한국외국어대 교수, 한국외국어대 어문대학 학장, 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 한국·그리스학 연구소장 역임. 現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한국 카잔차키스의 친구들 모임’ 명예회장, 한국·그리스협회 이사장
▲지난 6월 27일 그리스 테살로니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유재원 교수가 아리스토텔레스 동상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두 종류의 전쟁을 한다. 총칼을 든 무력전쟁과 문화·언어전쟁을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전쟁의 끝은 언어 정복이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치명적인 무기인 ‘문자(文字)’를 평생 연구해온 학자가 있다. 유재원(劉載源·69)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그리스학과 그리스어라는 수천 년 된 무기를 불에 달궈 두드려서 한국 것으로 만들어왔다. 수많은 문헌과 고서, 자료의 봉인을 풀려고 학문의 전선을 누볐다.
그리스학(어)과 관련된 논문과 저서를 많이 남겼지만 《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 《바른글 한국어 전자사전》 등을 편찬할 정도로 우리글과 우리말에 애정을 보였다. 지난해부터 그가 만든 ‘현대 그리스어-한국어 온라인 사전’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제공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6월 27일, 유 교수의 평생 업적을 심사한 그리스 국립 테살로니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테살로니키대학은 젊은 시절 그에게 박사학위를 준 아테네대학과 라이벌 대학이라고 한다.
기자는 유럽 문명의 원형인 그리스, 그리고 서양 학문어(學問語)의 뿌리인 그리스어에 대한 유 교수의 열정을 듣고 싶었다. 소설가 유경숙(柳京淑)씨가 만남을 주선했다. 유 작가는 ‘한국 카잔차키스의 친구들 모임’ 회장을 지냈는데, 유 교수는 이 모임의 명예회장이다. 지난 8월 7일 ‘한국·그리스협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공덕동에서 유 교수와 만났다.
▲지난 6월 27일 그리스 국립 테살로니키대학에서 유재원 교수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 관계자와 기념촬영을 했다. |
― 그리스어 연구자이지만, 우리 말과 글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여러 종류의 한국어 사전을 만들면서 저는 한국어의 어휘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한국어를 좀 더 수준 높은 고급 언어로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혼자서 고민을 했지요. 그래서 이미 최고 수준에 도달한 세계적 언어들을 살펴보았죠.”
― 어떤 언어가 학문어 위상을 지니고 있나요.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정도입니다. 고급 문학과 학문을 이루어낸 언어들을 살펴보면서 제가 발견한 것이 있어요. 이런 언어에서 고급스럽고 섬세한 의미를 나타내는 낱말들은, 원형을 그대로 차용했든 번역을 통해 받아들였든 대부분 그리스 어원을 가졌다는 사실이죠.”
유 교수는 “세계 최초의 학문어이자 동시에 세계 유일의 학문어가 그리스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그리스어는) 심오하고 풍부한 어휘를 가져다 쓸 언어의 보물창고”라고 했다. “이 보물창고에 들어오는 데에는 입장료도 없고 자격증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든 들어와서 자기가 필요한 낱말을 마음껏 골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는 ‘유럽의 선생’
▲그리스학과 그리스어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그리스 테살로니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
마음껏 가져갈 때 필요한 것은 그리스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자신의 언어 발전을 위해 필요한 낱말들을 고를 수 있는 안목, 모국어 현실에 맞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그리스어를 높은 수준까지 배워야 한다. 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명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정확한 번역을 할 수 있다. 유 교수의 말이다.
“그리스는 ‘유럽의 선생’이라 말하죠. 서양 문학의 기원을 따지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스 신화 자체가 서양 문학의 원천을 이루고 있죠.”
― 그리스가, 그리스어가 ‘학문’의 기원이라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네요.
“서양이 인류에 남긴 가장 큰 공헌이라고 자랑하는 자연과학의 뿌리도 탈레스와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만드로스 같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에게 두고 있죠. 수학과 기하학은 피타고라스와 에우클레이데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 뛰어난 공학자인 아르키메데스도 빼놓을 수 없죠.”
― 철학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은 여전히 서양 철학의 핵심이 아닌가요?”
유 교수는 그리스어로부터 우리말로 고급 개념어들을 가져오고, 또 그 어휘들의 배경이 되는 문화적 맥락을 한국인들에게 이해시키려 고민해왔다. 그러다가 “이런 노력이 나 한 사람으로는 불가능하고, 우리 세대만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학의 후학을 기르기 위해 그리스학과를 설립했다. 설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 일은 학문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였다”고 회고했다. 결국 2004년 3월 한국외국어대에 그리스학과를 세울 수 있었다. 학과가 개설될 당시 학과명은 ‘그리스·발칸어과’였다. 2011년에 ‘그리스·불가리아어과’로 바뀌었다. 현재 명칭은 ‘그리스·불가리아학과’다.
지난 6월 유재원 교수가 테살로니키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을 때 준비한 ‘수락 강연문’을 읽어보았다. 이런 문장이 눈에 띄었다.
“…칼과 활로 무장한 군대가 미사일을 가진 군대를 이길 수는 없다. 언어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도로 정확하고 섬세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어휘를 갖지 못한 언어가, 아주 고도의 학문과 추상적인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이길 수는 없다.…”
유 교수에 따르면, 그리스 이후(구체적으로 르네상스 이후) 서양에서 최초로 자기 나라 말로 철학을 논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언어전쟁에서 승리해 세계 정복을 꿈꾸는 미국·영국”
17세기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리바이어던》을 영어로 출판했고, 로크(John Locke·1632~ 1704)와 흄(David Hume·1711~1776)이 뒤따랐다. 자연과학 부문에서는 뉴턴(Sir Isaac Newton·1643~1727)이 영어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데카르트( Descartes·1596~1650)와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 등이 프랑스어로 학문을 시작했다.
한 세기 뒤에 독일도 자국어로 학문을 시작했다. 1781년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순수이성비판》을 독일어로 출판했고, 그 뒤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1788~1860),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가 따랐다. 그의 말이다.
“시각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리면, 17세기부터 중국의 패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일본은 서양의 문학과 학술 서적을 번역하며 당시 한국이나 중국을 앞선 학문 강국으로 발돋움했어요.”
― 일본은 17세기에 이미 중국을 앞질렀네요.
“그렇죠. 일본이 그렇듯, 학문이 앞선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는 현상이 오늘날 더욱 심화되고 있죠. 가장 전형적인 예가 미국과 영국이에요. 영어가 모국어인 두 나라는 자국 언어의 패권과 그에 따른 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그 결과, 한때 학문 강국이었던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의 학자들은 영어로 논문 쓰는 것을 선호하고, 한국도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학자들을 중심으로 영어로 논문 쓰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유 교수는 “영국과 미국의 경우 언어전쟁에서 승리하여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처칠 영국 총리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어 확산의 야심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어를 지배하는 것이 민중들에게서 지역이나 경작지를 빼앗거나 그들을 착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가져온다.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 될 것이다(The power to control language offers far better prizes than taking away people’s provinces or lands or grinding them down in exploitation. The empires of the future are the empire of the mind).”
영어 패권주의와 모국어로 학문하기
▲그리스 아테네대학 유학시절 아내 마은영씨와 파르테논 신전을 찾은 유재원 교수. |
이런 영어의 제국주의 패권의 야망에 대해 다른 언어는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언어도 영어의 해일(海溢)을 피할 방법이 없다. 영어를 모르고선 학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세계 엘리트들에게 영어는 필수 언어다.
유재원 교수는 그러나 “영어의 절대적 우위가 모국어로 학문함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의 예를 보듯, 한 언어의 학문적 수준은 바로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힘에 비례한다. 모국의 수준이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학문과 나라의 흥망에 대해 예를 들 필요는 없어요. 학문을 자기 모국어로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그 언어 사용자들의 운명이 결정되죠. 한 나라 학문의 첨단을 맡고 있는 학자들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어요. 특히 언어학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 모국어의 인식 수준이란 번역 수준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제가 작년에 《그리스인 조르바》(문학과지성사 刊)를 번역했습니다. 사실 우리말로 적는 순간 우리 것이 되는 거예요. 심하게 말해 남의 나라 말과 글을 빼앗아오는 것이 번역이죠. 그래서 번역의 질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의 예를 들어볼게요. 일본은 자국의 좋은 논문과 책을 번역해서 외국에 내보냅니다. 저자가 하지 않아도 ‘일본 번역국’이 알아서 하죠. 2008년 노벨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영어를 거의 말하지도 쓰지도 못한 사례로 유명하죠. 그가 노벨상 탔을 때 외신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I can’t speak English’라고 했죠. ‘영어로 된 학술논문을 쓰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내가 안 썼다’고 했고요. 다 일본 번역국에서 한 일이죠.
친구 아들이 판사인데, 최근의 미국 판례를 보려고 한국어 번역기를 돌려 본대요. 참담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법률전문 번역기가 있는데 정확하다는 겁니다. 그 정도로 일본은 세계 최고 전문지식을 자기 나라말화(化) 하는 데 굉장한 공을 기울여왔어요.”
유 교수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일본에서 2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합니까. 영어만 했다면 절대 그런 결과가 안 나옵니다. 자기네 말로 토론하면서 남들이 못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게 집단지성이죠. 모국어로 사고하면서 집단지성이 만들어진 것이죠.
요즘 한국 학자들은 영어논문이 대세입니다. 대학평가의 기준이 영어논문을 얼마나 쓰고 인용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우리 화학자, 물리학자, 의학자들은 ‘외래어로 된 학술용어 때문에라도 우리말로, 한글로 논문을 못 쓴다’고 항변합니다.”
“한 세대 지나면 우리나라 학문은 다 망해”
유 교수는 이 대목에서 비장하게 우리말과 우리글로 하는 학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인이, 한국의 화학자와 물리학자를 위해 논문을 써야 한국의 과학이, 집단지성이 발전합니다. 우리끼리 훌륭한 논문을 쓴 뒤 학계에서 평가받아서 영어로 바꿔 발표하면 돼요.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영어로 논문 쓰라고 난리입니다. 대학평가 기준이 영어논문이죠. 학술진흥재단의 평가 기준이 한글로 논문을 쓰면 120점이고, 세계적인 SGI급 학술지에 등재된 영어논문은 600점을 줍니다. 5배 차이가 나요.
이런 식이라면 한 세대가 지나면 우리나라 학문은 다 망합니다. 후손들에게 뭘 남겨주겠다는 겁니까. 영어논문을 남기겠다고요?”
― 학문어로서 일본어가 발전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일본은 17세기에 아시아 제일의 강국이 되었어요. 배경을 따라가 보면 이미 7~8세기부터 가나문자를 써왔음을 알 수 있죠. 그게 국한[日漢]혼용문이고, 1000년 이상을 써왔어요. 다시 말해 자기네 말로 문자생활을 1000년 이상 해온 겁니다.
우리는 15세기 말에 와서 한글을 창제했는데, 당시 일본인 식자층 수를 (우리와) 비교하면 어림잡아도 10배 이상 차이가 났을 겁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471년 신숙주(申叔舟·1417~1475)가 일본에 다녀와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라는 책을 썼잖아요. 죽기 전 그는 일본을 제대로 보고 성종에게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죠.
조선 중기 문신인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1538〜1593)은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돌아왔죠. 일본의 장사꾼 집에 들렀는데 유학책이, 그러니까 한문책이 조선 선비들보다 많아 깜짝 놀랐죠. 평민들조차 취미생활로 학문을 토론하는 지경이니 일본을 앞설 수 있었겠어요. 단지 지배계층 간 학문 수준으로 봤을 때 우리가 앞선 것이죠.”
그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1000년 동안 자기 나라 말로 학문을 익힌 일본은 언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못 쫓아가요.”
― 모국어로 학문하기가 그렇게 중요하군요.
“일본은 국한혼용문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전문술어에다 자기 나라 말을 그냥 집어넣어 번역한 겁니다.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일일이 번역하기 어려우니까요. 우리 역시 국영문이라도 써놓으면 나중에 번역하기가 쉬워요. 그러나 아예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로 논문을 쓰면 우리 국민은 못 읽지만, 미국인들은 좋아하겠죠.
제가 언어학자 입장에서 볼 때 인도는 망했습니다. 모든 말을 영어로 합니다. 필리핀 역시 마찬가집니다. 타갈로그어로 아무것도 못 합니다. 자, 한때 페니키아인들이 고대 그리스와 맞먹는 해양문명을 가졌다지만, 인류에 남긴 게 뭐죠? 페니키아 후예들은 어디에 있죠? 페니키아어가 남았습니까. 아, 참 페니키아어가 딱 한 군데 남아 있습니다. 몰타섬에요.”
― 하하하.
“너무 초라합니다. 학문으로 혹은 예술작품으로 남기지 않으면 다 사라집니다. 우리 존재를 후대에 어떻게 알릴 것인가요? 예술작품과 학문만 남습니다. 언어학자로서 진짜… 남들이 안 보는 것을 보니까… 상당히 괴롭습니다.”
일본이 ‘데모크라티아’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이유
▲그리스 아테네대학 유학 시절 유재원 교수. 그는 그리스 정부 장학생으로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아테네대학에서 공부했다. |
유 교수는 “일본인들은 목숨을 걸고 번역한다. 낱말 하나하나에.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인들이 치열하게 번역한 것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막 가져다 씁니다. 매우 위험하죠. 특히 번역에 의도한 바가 있을 땐 상당히 골치 아파집니다.”
‘귀족정치’의 그리스어는 ‘아리스토크라티아’다. 영어로 aristocracy라고 쓴다. 접미사 크라시(-cracy)는 ‘정치·정부·통치’ 등의 뜻을 나타낸다. 플루토크라티아(英 plutocracy)는 ‘금권정치’, 티라노크라티아(英 tyranocracy)는 ‘폭군정치’, 심지어 트로모크라티아(英 tromocracy)는 ‘공포정치’로 번역한다. 일관성 있게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에 ‘정치’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붙이면 된다.
예외가 있다. ‘데모크라티아’, 즉 영어로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민중정치’로 번역해야 옳다. 데모(demo-)는 ‘민중·인민’이란 뜻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유 교수의 말이다. 그는 2017년 펴낸 저서 《데모크라티아》에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일본은 ‘민중정치’라고 하지 않고, 이 단어만큼은 ‘민주주의’로 번역했어요. 우리도 일본을 기계적으로 따라 했어요. ‘데모크라티아’는 구체적인 정치체제이지 체계화된 이론이나 학설 또는 주장이나 방침을 굳게 내세우는 추상적 ‘주의(主義)’가 아닙니다. ‘-주의’로 번역되는 낱말들에는 모두 접미사 ‘이즘(-ism)’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데모크라티아’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것은 단순 오역이라 볼 수 없어요. 일본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역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죠.”
유 교수는 “누가, 그리고 왜 이런 식으로 왜곡된 번역을 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일본 내에서도 ‘민주주의’란 번역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2000년대 들어 시작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 없이 가져다 썼는데, 고민이나 반성이 아직 없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게요. 그리스어의 티라노크라티아는 일본과 한국에서 ‘참주정(僭主政)’ 혹은 ‘참주정치’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티라노스는 단지 ‘폭군’ 또는 ‘독재자’를 뜻해요. 영한사전에 티란(tyran-)이 들어간 영어 낱말을 찾아보면 ‘참주’라는 번역은 거의 등장하지 않죠. ‘폭군의(tyrannical)’ ‘폭군살해(tyrannicide)’ ‘학정을 행하다(tyrannize)’ ‘폭군(tyrant)’ 등이죠. 만약 ‘참주의’ ‘참주살해’ ‘참주’라고 써놓으면 의미 파악이 어려워져 이해할 사람이 없을 겁니다.”
― ‘폭군정치’라 하지 않고 어려운 ‘참주정치’를 쓴 저의가 있다는 얘기인가요.
“일본은 자기네 천황을 폭군이라 부를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참주라는 어려운 말을 가져다 쓴 겁니다. 그런데 우리마저 왜 참주라는 말을 가져다 쓰느냐, 그 말이에요.”
― 번역 과정에서 단어 선택의 중요성을 실감하겠어요.
“제가 작년에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했어요. 이 소설은 니체 사상이 관통하고 있어요. 소설에 ‘밑바닥 인간’이란 표현이 있는데 보통 니체 연구자들은 ‘최후의 인간’으로 번역합니다. 그런데 의미는 제일 ‘하빠리’ 인간이란 뜻이죠.
제가 ‘빼어난 인간’이라 쓴 것을 니체 연구자들은 ‘초인(超人)’으로 번역했는데, 그렇다면 ‘최후의 인간’으로 번역해선 안 돼요. ‘최후인’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초인, 최후인… 이렇게 써야 맞아요. 근데 국내 번역자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다음에 제가 ‘힘에 대한 의지’라고 번역한 것을 지금까진 ‘권력의지’라고 썼어요. 원문의 의미는 ‘스스로 자립해 살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지, ‘어떤 권력을 추구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권력의지’로 번역하면 어떻게 하나요?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초인’이니 ‘최후의 인간’이니 ‘권력의지’라고 해놓으니 아무도 (니체 철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본 번역 ‘따라 하기’의 悲劇
▲젊은 시절 유재원 교수와 딸 수진. |
유 교수는 내친김에 몇 가지 예를 더 들었다.
“가령 칸트의 철학책 《Die Kritik der reinen Vernunft》를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으로 번역했는데, ‘Vernunft’를 독영(獨英)사전에서 찾으니 제1 뜻은 ‘지식·이해’입니다. 이해력을 뜻해요. 칸트가 말하길 “오리가 지들 곁에 사람이 지나가면 머리를 뻗어 밥 달라 하고, 독수리가 나타나면 숨는다”는 겁니다. 그걸 ‘순수이성’이라고 썼는데, 저더러 번역하라면 ‘선천적 지식’ ‘본능적 이해력’ 정도로 할 겁니다. 그다음에 ‘실천이성’은? 저는 ‘경험지식’이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해요. (일본과 한국의) 철학자들이 ‘순수이성’ ‘실천이성’이라고 해놓으니까 아예 들어가는 관문을 막았습니다.”
‘오성(悟性)’이란 단어를 철학 사전에선 ‘사고능력’으로 풀이한다. 감성(感性)과 대립되는 의미로 고차적인 인식 능력, 혹은 능력 일반으로서의 이성·정신과 구별한다. 영국 철학자 존 로크의 대표적인 저서 중에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이 있다. 그런데 《인간오성론》의 원어는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간 이해에 관한 에세이’다.
“제가 볼 때 ‘오성’은 영어로 ‘under standing’ 입니다. ‘이해·이해력’ 정도로 번역하면 되는데 ‘오성’이라 하니 철학하기가 얼마나 어렵게 느껴집니까.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얘기가 있어요. ‘철학을 쉽게 해선 안 된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일본 철학계의 특성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가 (일본이 만든 철학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학문하기가 무척 어렵게 됐어요.
제가 그리스에 유학을 가니, 고2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있더군요. 철학책이 자그마한데 너무 재미있게 썼어요. 그때 느꼈어요. ‘철학, 이렇게 재밌는 거야? 재밌어도 되는 거야?’라고. 서양 사람들은 절대 철학을 골치 아픈 학문이라 생각 안 해요. 그 사람들은 철학을, ‘그냥 살아가며 부닥치는 일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 것인가’의 문제로 봐요. 우리는 철학을 형이상학으로 만들어버렸죠.”
― 근데 일본은 왜 그런 단어들을 어렵게, 접근하지 못하게 번역했을까요? 우리는 왜 아무 생각 없이 일본책을 베꼈을까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일본인은 4·19혁명을, 1987년 민주항쟁을, 심지어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민중의 정치’를 한국 정치의 미숙함으로 본 것이죠. 일본인이 볼 때 정치는 통치고 통치가 정치인데, 통치는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상전(지배계급)이 해야지 백성은 절대 해선 안 되고 근처에 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세요. 일본에선 철두철미하게 세습 귀족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일본은 민란(民亂)이 없는 나라라고 합니다. 아예 민란의 싹을 잘라버리니까.
1925~1935년 사이에 소위 서양식 민주주의를 주장한 일본 지식인 중에 칼을 안 맞은 사람이 없어요.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군국주의로 갔죠. 누가 죽였을까요? 사무라이 ‘닌자’들이 죽였습니다.
일본에서 데모크라티아를 ‘민주주의’라고 번역한 사람은 좌파·진보 지식인입니다. 만약 그가 ‘민중정치’라고 번역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아마 칼에 맞았을 거예요. 일본인들은 체제 유지를 자기 나름대로 아주 잘한 것이죠.”
― 그리스학 전문가인 줄 알았는데 일본 연구도 많이 하셨네요.
“그리스학을 연구하다가 대척점이 되는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한국과 일본, 중국에 ‘서양고전학과’가 없는 이유
▲유재원 교수는 1985년 《우리말 역순사전》(정음사)을 펴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출간 당시 가족과 함께 사전 광고탑 앞에 섰다. |
그는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말하겠다”며 톤을 높였다.
“일본이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며 외국 대학 학과들을 다 세웠는데 딱 한 학과만 안 만들었습니다. 영어로 ‘department of class studies’인데 ‘서양 고전학과’입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을 비롯해 프린스턴, 영국 옥스퍼드대학, 독일 베를린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에는 다 고전학과가 있는데 일본과 중국, 한국에만 없어요.
일본이 안 만드니까 한국은 따라서 안 만들었고, 중국은 자기네 중화(中華)사상과 맞부닥치는 그리스학이 없으니까 안 만든 거지요. 고전학과는 무얼 가르치는 곳인가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호메로스를 공부하는 과입니다. 일본 메이지시대 모토가 뭡니까. 탈아(脫亞·탈아시아) 아닙니까. 그러나 고전학과만큼은 일본 내 7개 제국대학에 개설하지 않았어요. 경성제국대 역시 마찬가지고요. 무얼 의미하느냐….”
―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요.
“일본의 저의(底意)가 있다고 봅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사상가들은 분명 자기네끼리 치열한 토론을 거쳐 그렇게 결정한 것이 아닐까요?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일류를 달리고 있어요. 무서울 정도로 그리스말을 잘하고, 고전번역도 잘해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학자가, 그리스 학과가 없습니다. 제가 그리스 아테네대학에 가서 ‘일본에 있는 그리스 학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니, 한참 살펴본 후에 ‘그리스말 잘하는 일본인 학자는 있어도 그리스학 전공자는 없다’는 겁니다.”
― 정말 이상하네요. 왜 그리스학 연구를 안 할까요.
“그리스 정신이 뭡니까. 자유·평등·정의가 아닙니까. 백성이 엘리트처럼 똑같은 자유를 누린다? 일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지배계층이 봤을 때 ‘자유’는 고약한 바이러스입니다. 죽여도 죽여도 튀어나오는…. 그래서 철저하게 막은 것입니다. 일본은 국민에게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안 가르칩니다. 그래서 일본인 중에 편집광적인 ‘오타쿠(御宅)’가 생겨나는 겁니다. 그걸 일본 사회가 막지 않아요. 그런 분야에서나마 해소하라고….
일본인에게 ‘정의’는 사무라이의 칼 끝에서 나온다고 믿어요. (저의가) 굉장히 무섭습니다.”
유재원 교수는 ‘서양에서 강조하는 수사학(修辭學)을 (일본이) 외면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언어는 무기입니다. 개인 화기(火器)로서 언어를 다듬는 훈련이 수사학이죠. 서양 사람들은 진짜로 수사학을 중시해요. 일대일(一對一)로 싸울 때 수사학만 한 게 없죠. 그러나 수사학은 개인의 자유가 없는 곳에선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발언권이 없는데 수사학을 배우면 뭘 합니까.
그러나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간 싸움에서도 언어라는 무기가 가장 중요하죠. 수사학은 무기를 벼리는 학문과 같아요. 자, 보세요. 셰익스피어는 영국 문학의 시작입니다. 그가 남긴 작품이 뭡니까. 희곡입니다. ‘말하기’입니다. 몰리에르, 실러가 뭘 썼나요. 희곡을 썼습니다. 〈파우스트〉는 희곡입니다.
근대문학에 왜 희곡이 많을까요. 개인 화기인 수사학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들으면 헉 소리가 납니다. 영국의 한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이 싸울 때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를 인용해 다툽니다. 셰익스피어가 스무 살 때 쓴 〈소네트〉는 ‘그대 혹시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그대를 탓하지 마오’로 시작해요. 기막히지 않나요?”
한글 창제와 조선어학회 사건
▲지난 8월 7일 서울 공덕동 한국·그리스협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유재원 교수. |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라는 훌륭한 왕이자 언어학자 덕분에 1446년에서야 우리 문자 한글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한국어는 사멸의 위험을 벗어나게 되었다.
―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틈에서 한국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굳건히 지켜냈어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안 만들었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망했을 겁니다. 아마 일본 가나문자를 받아들이다가 끝났을 겁니다.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문자를 얻은 민족이 한국입니다. 마지막으로….”
― 국권을 잃은 일제 때도 우리말을 지키려 했어요.
“1910년 이후 우리 민족의 독립전쟁은 무장투쟁과 언어전쟁,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죠. 일제 치하 때 한국의 언어학자들은 1936년에 표준 맞춤법을, 1939년에 표준어를 사정하고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여 공포했죠. 한국어가 공용어 구실 할 모든 준비를 한 뒤 한국어 사전 편찬에 들어갔어요.”
그러자 일제는 1942년 한국 언어학자와 그들을 돕던 애국 인사 42명을 체포해 재판에 넘겼다. 그리고 창씨개명을 단행했다.
“조선어학회 이극로(李克魯·1893~ 1978) 선생이 ‘맞춤법 통일안을 만드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친일파 사람들이 돈을 많이 냈어요. 친일파조차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는 데는 절대로 돈을 안 아꼈어요.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주시경(周時經·1876~1914) 선생이 한글강연을 다닐 때 한 리어카꾼이 선생을 강연장으로 모십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 영업을 하다 강연이 끝날 때쯤 다시 와서 대기했죠. 자발적으로…. 리어카꾼이 그 정도였어요.
이완용(李完用·1858~1926)은 죽을 때까지 일본어를 안 배운 사람입니다. 말을 배우는 순간 말의 노예가 되니까. 통역을 쓰는 게 대우를 더 잘 받는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죠. 그 사람, 언어 천재였습니다. 영어도 무지 잘 썼는데 일본말을 몰랐겠어요?”
1945년 광복 직후 미군정은 그때까지 남한을 통치하던 일본인들의 조선총독부 조직과 인원을 그대로 이용하여 통치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한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 본토를 통치한 수법과 동일했다. 통치 언어는 물론 일본어로 한다는 잠정적인 결정이 있었다. 유 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미군이 서울에 들어온 지 불과 닷새 뒤인 1945년 9월 12일, ‘미군정 명령 제4호’를 통해 한국어를 공용어로 한다고 공포했어요. 이 결정이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죠.
공용어, 행정어로 일본어를 못 쓰니까 총독부 일본인 관료들이 떠나게 된 것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인들은 미군정청에 남아, 결국 군정청을 뒤엎고 계속 우리를 지배하려 했을 겁니다. 한국어 공포로 결국 우리가 언어전쟁에서 일본을 이긴 것이죠.”
1945년 9월 12일 한국어 공용어 公布
1945년 광복 후 남북한 모든 학교에서 한국어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 교수는 “한국어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 중 한 명이 바로 나이다. 우리를 한글세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세대가 바로 한글세대들이다.
“인도의 간디는 민중에게 ‘반영(反英)운동 하라’는 연설을 영어로 한 반면, 한국에서는 친일파들이 ‘일본 지배를 받아들이고 충성을 다하라’는 독려를 한국어로 했어요. 이 차이가 오늘날 한국과 인도의 언문 생활을 결정지었죠. 친일까지도 한국어로 한 우리는 지금 모든 교육을 우리말로 하고 학문서적도 한국어로 출판하고 있어요.
그러나 영어로 영국에 저항했던 인도는 찬란한 역사와 한때 세계 최고의 학문을 일궈냈음에도 교육과 학문을 영어로 하고 있어요.”
― 언어전쟁에서 무엇이 승리를 좌우하나요.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문자죠. 문자 없는 언어는, 문자를 가진 언어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어요. 문자 없이 싸운다는 것은 맨주먹으로 총을 든 사람들과 싸우는 것보다 더 불리하기 때문이죠. 지금도 뉴기니와 아마존강 지역, 필리핀의 민다나오섬, 아프리카 오지 등지에서 수많은 언어가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상형문자와 쐐기문자가 사라진 이유는…
― 문자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문자의 표준화와 표준어 제정이죠. 어떤 문자든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행정과 교육, 상거래 등의 공용어 구실을 할 수가 없어요. 공용어는 무엇보다도 우선 표준 맞춤법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각자가 쓰고 싶은 대로 철자를 쓴다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어서, 문자로 협동은 물론 소통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스어처럼 오랜 문헌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이런 문제점이 없지요.”
세계 최초의 문명을 만들어낸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왜? 쓰기도 읽기도 배우기도 어려운데다 표준 맞춤법마저 없어 효율적인 언어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한 언어 안에는 수많은 방언이 존재하고, 그 방언 중에 무얼 표준어로 삼느냐의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표준 맞춤법과 표준어를 최초로 제정한 민족은 고대 그리스인들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학자들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70여만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정리·분류했어요. 앞선 세대의 학문적 지식을 배우고 전하기 위해 맞춤법, 구두점, 띄어쓰기, 대소문자 구분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던 것이죠. 그 결과 그리스어는 세계 최초의 학문어로 발돋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어 다음으로 표준어를 가진 나라가 중국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느냐?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서죠. 분서갱유는 파괴행위지만 언어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문자의 통일이었어요. 당시 중국 각 지역이 서로 다른 문자를 썼어요. 진시황은 자기가 인정하지 않은 문자로 된 책을 불태운 겁니다. 진나라 이후 한자가 통일되고 책이 통일됐어요.”
― 언어 표준화의 마지막 단계이자 완성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 편찬이죠. 사전 편찬은 문자 발명에서 표준어 제정 등 일련의 과정들이 축적됐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사전 편찬은 오랜 시간과 많은 이의 노력과 협동, 비용이 드는 일이에요. 한 나라의 말이 얼마나 여러 종류의 사전을 가지고 있느냐, 그 사전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에 언어의 품격과 질이 결정됩니다.
이런 언어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그 언어는 사라질 위기에 빠지는데, 아일랜드의 게일어는 바로 그런 비극에 빠진 언어죠.”
“그리스 국가는 사라져도 그리스말은 사라지지 않아”
유 교수는 “언어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최후 요소는 고급 문학과 학문어로서의 우수성이다. 그 가운데서도 학문이 더 결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를 세운 민족은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었어요. 그들의 언어는 만주어였고, 청나라를 세운 뒤로 만주문자를 만들어 공용어로 사용했죠. 오늘날에도 베이징 자금성에 가면 모든 현판에 한자와 함께 만주어가 적혀 있어요.
만주어는 공용어가 갖추어야 할 모든 필수조건을 갖춘 언어였을 뿐 아니라 300년 이상 세계 최강 중국의 공용어로 쓰인 언어인데도 결국 사어(死語)가 됐어요.”
― 한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던 게 이유겠지요.
“2000년 이상 고급 문학과 학문, 특히 철학을 해온 중국의 한자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죠. 한자로 얻을 수 있는 문학의 즐거움과 고급 정보나 지식의 습득은 만주어와 비교했을 때 아예 비교할 필요조차 없었어요.”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만주족조차 자식들에게는 한자 교육만 시키고 만주어 교육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이다. 유 교수의 마지막 말이다.
“언어는 최첨단 무기입니다. 갈고 닦아야 합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하지 않나요? 언어가 무기입니다. 언어에서 지면, 논리에서 지면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못 받고 지는 것이죠. 외교가 뭐냐, 재판이 뭐냐, 다 말싸움입니다. 말을 가다듬어 상대가 ‘헉’ 하게 만들 정도로 기가 막히게 말을 해야 승부가 납니다. 언어전쟁에서 지면 다 지는 겁니다.”
― 외람된 질문인데요, 그렇게 좋은 무기를 가진 그리스는 왜 그 모양입니까.
“좋은 언어를 지녔음에도 잘사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느냐의 질문인데요, 그리스는 터키의 지배를 400년이나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살아남았어요. 앞으로 그리스라는 국가는 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말을 하는 사람도 다 사라질지 모르죠. 그러나 그리스어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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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연관된 내용의 기사.
기사 내용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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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출처 : 연합뉴스, news.v.daum.net/v/19911011154500103?f=o
한글특수사전, 정부차원서 편찬주도해야
입력 1991. 10. 11. 15:45 수정 1991. 10. 11. 15:45
= 최근들어 개인차원에서 발간작업 활기 =
(서울=연합(聯合)) 지금까지 나온 우리말 사전 가운데 최대규모가 될 <우리말 큰사전>이 곧 발간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한글특수사전의 발간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금년 들어서만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한국고전용어사전>, 재야연구자인 박준하씨가 <형용사사전>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한글특수사전의 경우 지금까지 나온 것들 대부분이 우리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거나 필요성을 절감한 재야연구자들의 개인차원의 작업성과여서 관련연구소나 정부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사전편찬을 주도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말 사전이 용도에 따라 세분화되기 시작한 것은 60,70년대부터이나 특수사전발간이 본격화된 것은 80년대 중반 들어서인데 현재 서점에는 분류사전, 형용사사전, 역순사전, 유의어사전, 반대말사전, 갈래사전, 은어사전, 표준발음사전, 민담사전, 방언사전 등이 나와 있다.
국내에서 발간된 특수사전의 종류는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매우 적은 편인데 그나마 이렇게 나와있는 특수사전의 활용도도 높지 않은 편.
인접학문 연구자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필요한 한글특수사전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말 逆順辭典>은 한양대 유재원교수가 언어의 합성법 및 파생법 등 조어법연구와 형태소연구에 꼭 필요한 역순사전의 필요성을 절감, 서울대 언어학과 강사시절인 85년 학부및 대학원생 11명과 함께 2년여에 걸친 작업끝에 내놓은 사전으로 3만7천여 단어가 수록돼 있다.
일반 국어사전이 ㄱㄴㄷ...순, ㅏ ㅑ ㅓ...순에 받침순으로 단어가 배열되어 있는데 반해 역순사전은 ㅎ 받침부터 낱말이 배열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색을 나타내는 까망,노랑,빨강,파랑 등의 낱말들은 일반 국어사전에서는 ㄲ ㄴ ㅃ ㅍ 부분에 분산되어 실려 있지만 역순사전에서는 모두 ㅇ받침에 모이게 되어 낱말들의 형태와 의미 사이의 상관관계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리말 분류사전>은 재야 국어학자인 남영신씨가 8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펴낸것으로 토박이말을 그 쓰임새에 따라 분류한 특수사전이다.
이름씨(명사)편과 풀이말(동사및 형용사)편 2권으로 되어 있는 이 사전은 어려운 낱말의 뜻을 찾아보는 일반 국어사전과는 달리 어떤 상황이나 어떤 물건의 용도는 아는데 그 정확한 이름을 몰라 갑갑할 때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우리말 갈래사전>은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박용수씨가 10년의 작업끝에 내놓은것으로 순우리말 3만6천 단어를 뜻갈래와 쓰임새에 따라 분류, 간단한 뜻풀이를 곁들이고 있다.
정확한 언어운용을 돕는 반대말사전, 비슷한말사전은 여러 종류가 나와 있는데배무아편의 <동의어.반의어 사전>, 전수태편의 <反意語辭典>, 김광해편의 <유의어(類意語).反意語辭典> 및 <반대말사전> 등.
<유의어사전>은 글쓰는 이가 자신의 머릿속에 능동적으로 떠올린 어휘 외에 더 적합한 어휘가 또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 가운데 자신이 의도하는 의미내용을 가장 적절히 전달해줄 말을 쉽게 고를 수 있게 하는데 활용된다.
<형용사사전>은 현직공무원인 박준하씨가 20여년의 작업끝에 펴낸 것으로 활용목적에 따라 편찬된 특수사전과는 달리 하나의 품사만을 집중적으로 수록한 특수국어사전으로 기존의 국어사전에 담겨 있는 6-7천여개 형용사의 두배가 넘는 1만3천여 어휘가 수록됐다.
<한국고전용어사전>은 고전연구의 첫 걸림돌인 어려운 고전용어를 쉽게 풀이한 것으로 전3권 가운데 첫선보인 1권은 역사문헌에 수록된 한문용어를 뜻풀이하고 출처와 용례를 밝혀 고문헌에 대한 접근을 한결 쉽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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