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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39

[인천인물100인] 41. 소설가 한남철 - 분단시대 문학 '든든한 버팀목' >41< 소설가 한남철 한남철(본명·한남규, 1937~1993)은 소설가로는 유일할 정도로 분단시대의 인천을 속 깊이 그려낸 작가로, 6·25 이후 인천문학의 공백을 홀로 메웠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11월 18일 오전 서울 백범기념관에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창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행사장 앞줄에 선 젊0은 문인들은 인천 출신 작가인 한남철을 비롯해 김정한, 고정희, 김남주, 김도연, 김소진 등 작고한 문학인들의 영정을 들고 있었다. 영정의 주인공들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74년 11월 18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의사회관 앞에 모여 김지하 시인을 비롯한 양심수 석방과 자유민주주의의 새헌법 마련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이날 바로 .. 2006. 2. 28.
[인물 40] 우문국 - "피란시절에도 인형제작 못말리는 열정의 예술가" [인천인물100人·40] 딸 미령씨가 본 우문국 화백 [인터뷰] "피란시절에도 인형제작 못말리는 열정의 예술가" 임성훈 기자 / 발행일 2006-02-16 제0면 “아버지는 배고프고 힘든 길을 걸으셨어요. 그렇지만 항상 당당하셨지요. 청렴결백하고 담백하게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분이셨어요.” 고여 우문국 화백의 딸 우미령(48·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씨는 고여의 삶을 이렇게 소개하면서 “베레모가 아주 잘 어울리셨던 분이었고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는 항상 꽃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문국 화백의 예술적 정열을 가늠할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우 화백의 부인은 백범 김구 선생의 수양딸로 김구선생이 직접 쓴 글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 화백이 한국전쟁 당시 피란차 머물.. 2006. 2. 28.
[인천인물 100인] 40. 고여 우문국 화백 - 항도화단 '문화의 꽃' 피우다 [인천인물100人·40] 고여 우문국 화백 항도화단 '문화의 꽃' 피우다 임성훈 기자 / 발행일 2006-02-16 제0면 >40 2006. 2. 28.
[인천인물 100인] 39. 이옥녀 - 박창례의 '평생단짝' , 학교 설립 때부터 든든한 후원자 이옥녀(1910~1987년) 선생은 박창례 선생과 늘 함께했다. 박 선생이 처음 보각선원 강당에서 야학을 열었을 때부터 이들은 함께였다. 이 선생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여장부'로 통했던 박 선생과는 달리 조용한 성격인 데다 늘 학교에 남아 박 선생의 교육사업을 뒷바라지했기 때문이다. 이 선생은 1910년 강화에서 태어났다. 이후 인천시내로 와서 1929년 인천영화여자보통학교(현 인천영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도포기했던 박 선생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동명초교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34년 일본 조도전대(현 와세다대) 고등여학교를 졸업했고, 1937년에는 경성보육학교를 졸업했다. 박 선생과 이 선생의 만남은 유년시절로.. 2006.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