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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4 - 인천 개항기15

[개항기 격동의 현장 인천] 7. '日 흔적 없애기' 개혁의 바람 >7< 새로운 도시를 위해  해방 직후 전국에서 가장 극심한 혼란상을 보인 인천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새로운 조국의 관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준비작업이 각 분야에 걸쳐 진행됐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통치권을 넘겨 받은 미군정은 우선 행정·치안조직 재편에 나섰고, 민의를 대.. 2005. 12. 5.
[해방기 격동의 현장 인천] 6. 그러나 그들은 갈곳이 없었다 >6< 전국 최대혼란지 인천  인천은 해방직후 전국에서 가장 극심한 혼란상황을 겪은 곳이다.  해방직후 귀환한 해외동포는 총 250만명에 달했는데, 이들 가운데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경우가 75만여명이라고 한다. 이 중 상당수는 인천에 눌러 앉았다. 급격한 인구팽창으로 인한 사회문제는 불가.. 2005. 11. 26.
[해방기 격동의 현장 인천] 이재민 귀국통로 '인천항' 해방 직후 인천은 점령자의 지위에서 하루 아침에 신세가 뒤바뀐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철수하는 중심지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강제징용이나 폭압을 피해 해외로 나가 있던 '전쟁 이재민'들이 몰려 들어오는 통로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문제도 야기됐고, 숭일(崇日)의 아픔이 되.. 2005. 10. 25.
[해방기 격동의 현장 인천] 5. 패망앞둔 일제 발악의 자살놀음 ▶ 일제는 전쟁터에 나가는 소년병들을 미화하기 위한 작업에 열을 올렸다. 사 진은 일본 육군보도부장상을 수상한 소년병 미화 엽서. =인천학연구원 제공 >5< 돌아온 카미카제 '오장 마쓰이'  일제 강점기간 중 징병과 징용, 학병이나 지원병으로 끌려가거나 가혹한 수탈을 피해 해외로 이주했던.. 2005.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