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3일 (수) 16:10 미디어다음
‘수당 없는 야근 10시까지’, 러시아 직장인의 하루 |
[세계의 직장인들 7-러시아] 자정 넘긴 퇴근도 자주, 주말에는 밀린 잠 보충 아파트 사는 게 꿈이지만 모스크바 아파트는 불가능…“주말 없으면 못 견뎌” |
제냐는 12일(현지시간)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물론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이처럼 자정을
훌쩍 넘겨 퇴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했다고 해서 회사에 늦게 나갈 수는 없다. 출근 시간인 10시까지
회사에 도착하려면 9시에는 눈을 떠야 한다. 제냐는 눈을 뜨자마자 세수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다시 회사로 향했다.
제냐는 올해
서른세 살이다.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뒤 러시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IT 전문 회사
‘크록’에 입사했다. 현재는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제냐는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어 남자 사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아직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할 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회사 분위기는 좋아…상사들과 친구처럼 ‘반말’
11일(현지시간) 러시아 직장인 제냐가 바쁜 업무 중에 잠시 쉬고 있다.
출근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마시며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리를 비운 사이 온 전화는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잠깐 동안 영국 BBC 방송을 보며 뉴스를 확인하기도 한다. 러시아 신문은 매일 읽지만 아침에는 절대로 읽지
않는다.
러시아 신문에는 불행하고 우울한 기사들이 많아 오전에 읽으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은 오후
늦게나 저녁에 보는 편이다.
그 뒤의 하루 일과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늘 그렇듯 제냐는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점심도
20분 만에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일을 계속한다. 점심은 보통 구내식당에서 무료로 먹는다.
구내식당에 갈 여유마저 없을 때는
회사에서 주문해 놓은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다. 메뉴는 대부분 러시아 전통음식인데 맛과 질이 괜찮은 편이다. 차와 커피는 항상 준비돼
있다.
사무실은 햇볕이 잘 들고 깨끗해 항상 쾌적하다. 모두를 정신없이 일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회사 위기는 좋은
편이다.
사원들이 상사를 무시하는 일도 없고 상사라고 해서 거만한 행동을 하는 일도 없다. 제냐는 사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장
상사들과 오랜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쓴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실제 직원들의 평균 나이도 27~28세로 젊은 편이고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도 40세 이기 때문에 제냐는 모든 사람들과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다.
제냐는 이날도 저녁 10시가 다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의 정해진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원래 정해진 근무시간도 하루 10시간이지만,
사실 8시에 퇴근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8시를 한두 시간 넘긴 9시나 10시가 돼야 퇴근할 수 있다.
이렇게 늦게까지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모두 처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퇴근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고 해서 시간 외 근무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대중교통이 끊어지는
시간에 직장을 나서게 되면 택시비를 지원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제냐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돈을
그만큼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종일 여유롭게 일하다 5~6시에 회사를 나서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곳은 국가기관이나 국영회사 등인데 월급이 지금 회사와 비교해 훨씬 적은 수준이다.
제냐가 근무하는 크록과 같은
민영회사에서는 국가기관과 같은 여유로운 직장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회사 간부들의 경우 일반사원보다 정도가 더욱 심해 회사에서 아예 살다시피
하는 경우도 많다.
월급은 개인 능력과 동료 평가에 따라…“주말 없으면 견디지 못할
것”
제냐와 IT 전문 회사 ‘크록’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업무 중 포즈를 취했다. 가운데 빨간 옷이 제냐.
제냐는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의 아파트를 사겠다는 꿈이 있다.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년 안에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제냐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모스크바 근교에 아파트를 마련할 생각이다.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마련하고 나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돈은 많이 벌 수는 있지만 사생활이 거의 없기 때문에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생활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도 없다. 제냐는 좋아하는
연극, 오페라 등의 공연을 보지 못한 지 꽤 오래됐다.
대부분의 공연은 6~7시에 시작하는데 정해진 퇴근 시간이 8시이기 때문에
공연을 한 번 보려면 며칠 전부터 동료들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울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알려야 한다.
월급은 직장에 따라 다르지만
민영회사 신입사원의 경우는 500달러(약 50만 원)에서 1000달러(약 100만 원) 사이이고, 팀장이나 과장의 경우는 1000달러(약
100만 원)에서 2500달러(약 250만 원)까지 올라간다.
러시아연방 경제발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러시아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은 8452루블인데 이는 300달러(약 30만 원)가 조금 안 된다.
실제 직장인들이 받는 월급과 정부 통계가
차이가 나는 것은 공식 월급과 비공식 월급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통계를 낸 수치는 공식 월급이고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의 직장인들은
비공식 월급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민간기업을 운영하는 고용주는 사원들의 월급에 비례해 통합사회세를 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고용주들은 일반적으로 정부에 보고하는 공식 월급을 낮게 잡아 주고,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봉투에 따로
담아준다.
제냐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월급은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과 동료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절로 월급이
올라가는 일은 없다.
능력이 없거나 동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은 월급도 오르지 않고 심지어 해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함께 적극적으로 회사 일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고 돕는 사람을 좋게 평가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직장에 애착이 없으면 인정을 받지 못한다.
10시를 훌쩍 넘겨 집에 도착한 제냐는 씻은 뒤 간단한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본다. 너무 피곤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에 심각한 시사프로그램보다는 가볍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텔레비전을 잠시 보다 보면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매일 이렇게 힘들게 하루를 보내는 제냐에게 주말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이다. 제냐 자신도 주말이 없으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충분히 잠을 자고 난 뒤 남은 주말의 몇 시간이 제냐가 누릴 수 있는 사생활의 전부다. 그는 이
시간을 주로 가족과 함께 보낸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밭에 나가 부모님의 일을 거든다. 차를 타고 조금 나가면 밭이 있는데 밭에
나가면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사람 사는 모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끊임없는 변신, 연기자 설경구, 이휘향 (0) | 2005.08.21 |
---|---|
[세계의 직장인들 8] 프랑스 - 초과근무 모아 휴가로 (0) | 2005.08.13 |
[세계의 직장인들 6] 스웨덴 - ‘7월 한 달 내내 휴가’ (0) | 2005.08.13 |
[세계의 직장인들 5] 영국 - 가정이 최우선 (0) | 2005.08.12 |
[세계의 직장인들 4] 중국 - 자신만만 중국 미시 직장인 (0) | 2005.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