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백기완의 [묏비나리](1980년 12월)에서 가사를 따 왔다. 원래의 詩는 대략 이러하다.
(상략)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리리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운동권 출신이 아니어도 386세대들은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노래로
‘사천만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
그만큼 민중가요 중에서는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곡이다.
“여느 민중가요가 그러하듯 이 노래 역시 같이 따라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창시절 군부독재 타도를 외칠 때도 사랑받았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하여 노동운동의 시위가 있을 때도 사랑받았던 노래입니다.
386세대, 그들이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격동의 80년대를 거쳐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얽힌 이야기
1980년 5월
27일. 당시 <5.18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으로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고자 했던
윤상원은 결국 진압군의 총탄을 맞아 전사한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 하나. 그리고 평생 노동운동에 헌신해오다 과로로 숨진 박기순 열사.
이 둘은 1982년 5.18묘역에 나란히 합장되어 완전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들의 ‘영혼 결혼식’에 사용되었던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
이 곡은 지난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차지한 김종률씨가 작곡을 했고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 선생의 시를 노랫말을 바꿔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 나도 얼마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가....
대학생 때는 부산의 서면 중심가에서....
서울의 광화문과 명동 성당을 오가며....
또 IMF가 다가와 삼성자동차 빅딜이 될때에도...남대문 삼성 본사 앞에서...
오늘은 또 이렇게 이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되씹으며 하루를 보낸다.
앞서서 나가니....산자여 따르라.
이 노래의 연원(淵源).
오늘 처음 알았다.
영원한 우리 시대의 저항가.
때로는 사람을 침잠하게도 하고
끓어 오르게도 하고
기쁘게도 해주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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