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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강화섬쌀, 송가평

by 아름다운비행 2005. 12. 15.

쌀 한 톨에는 농부의 발자욱 소리가 여물어 있다

 

쌀미米 자를 파자해 보면 八十八이 된다.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거쳐야 비로소 쌀이 생산된다는 의미이다.

다 자란 벼가 태풍에 쓰러지면 농부들은 마치 자식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 아파한다.

쌀알 한 톨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그만큼 어렵고 수고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강화섬쌀

 

강화도에서 생산된 쌀은 옛날부터 미질이 좋기로 평판이 나 있었다. 똑같은 벼 품종이라고 해도 강화도의 기름진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자연의 기와 신비로움이 배인 해풍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강화쌀은 타 지역 것보다 품질이 좋다.

 

그렇다고 강화쌀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농민들은 그동안의 증산정책에 따라 낟알이 많이 달리는 품종을 위주로 심어왔다. 생산량이 농가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질이 떨어지더라도 다수확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그런 관행을 따르지 않고 양질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고시히까리, 추청, 일품 등의 고품질 품종을 심는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 이후 쌀수입 개방에 대한 우려는 전국적으로 쌀 브랜드화 바람을 일으켰다. 지역마다 생산되는 쌀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품질을 관리하고 새로운 브랜드명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강화도 지역에서도 여러 종의 쌀 브랜드가 탄생했다. "강화섬쌀"은 강화농협에서 강화군내에서 생산되는 쌀중에서 고품질 쌀만을 모아 자체브랜드로 상품화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강화섬의 평야들

 

강화군은 강화도를 비롯해서 교동도, 석모도 등 유인도 11개 섬과 무인도 18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면적 410평방킬로미터 중에서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은 16,945ha인데, 밭이 3,978ha이고 논은 12,967ha이다. 강화도를 여행하다 보면 망월평, 가능평, 당산평 등 크고 작은 평야를 볼 수 있다. 이 들판의 대부분은 바다를 막아서 생긴 것들이다.

원래는 남해안의 다도해처럼 꾸불꾸불 들쑥날쑥했던 해안을 긴 세월동안 방조제로 막아 형성된 간척지들이 지금의 계란형태의 강화도를 만든 것이다.

 

 

고려 고종 18년(1231년)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권신이던 최우는 고종 25년(1238년)에 일품군(고려의 군제로서 지금의 공병대와 같은 군인)을 징발하여 강화도 연안을 수축하고 북방의 유민들을 이주시켜 왔다. 그로부터 강화 일대에서는 간척사업이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고려 고종 43년(1256년)에 이포둑, 인조 14년(1636년)에 삼간포둑, 효종 7년(1656년)에 굴곳둑 등이 축조됐고 현종 때에 대청개둑, 승천포둑, 장지포둑, 망월둑이 완성됐다. 조산리, 능내리, 내리, 상방리에 걸쳐 위치한 가능평과 선두평은 현종 5년(1665년)에 가능둑과 선두포둑이 축성되어 마니산이 있는 고가도(古加島)가 강화 본도로 연속되면서 형성된 평야이다.

 

현재의 석모도는 송가도(松家島)와 구음도(仇音島), 어류정도(魚遊井島)가 합쳐져서 생긴 섬이다. 숙종 32년(1706년) 조정에서 1,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하여 송가도와 구음도를 남북으로 잇는 11km의 상주둑을 쌓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석모도의 석모,상,하리에 드넓은 송가평이 생겼다.

  * 지금도 상1리 끝, 석모도 북동쪽 부분은 '상주'라고 불리고 있고, 상주의 뒷산이 상주산이다.

     상주둑이 막혔어도,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송가평(지금은 '석모상리벌판'으로 불리고 있다)은

     배가 들어오던 벌판이었다고 한다.

 

 

교동도는 섬의 중심이 되는 화개산과 율두산, 수정산이 어우러져 형성됐다. 상고시대에 세 산 사이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지역이다. 연대를 알 수 없지만 교동면 인사리와 고구리 사이의 영산둑과 지석리의 염주둑이 축조되어 갯벌이 평야로 바뀌었다.

강화군에는 그밖에도 크고 작은 방죽이 만들어졌고 둑 안쪽의 갯벌은 모두 농경지가 됐다.

 

이처럼 오랜 시일을 두고 자연을 개척하여 이루어진 경지에서 생산되는 강화미는 늘 그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아 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지력이 좋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강화 연안의 353평방킬로미터나 되는 갯벌지역은 세계 5대 갯벌로 알려질 만큼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지역으로써 간석지, 염습지 등과 함께 해안습지의 일부인 갯벌은 수질정화작용, 홍수조절기능, 어패류와 야생생물의 서식지, 심미적인 작용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갯벌이었던 강화군 대부분의 논은 벼가 자라는데 필요한 미량요소(식물이 자라는데 없어서는 안될 철, 아연, 망간, 마그네슘 등의 원소)와 미생물, 양분 등이 적당히 균형잡혀 있다고 한다. 농부들은 전염병처럼 논에 병이 돌 때 이외에는 농약을 별반 사용하지 않는다. 병충해가 적기 때문이다. 병충해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땅힘이 크다는 뜻이다. 땅힘이 크면 클수록 벼가 병충해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마치 건강한 사람이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어쩌다 병원체에 노출됐다 하더라도 쉽게 감염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강화군의 연평균 강우량은 1,146mm이다. 비가 내리면 빗물은 곧장 바다로 흘러가버리고 만다. 큰 강이 없어서 농사에 쓰일 물을 확보해 두는 것이 어려웠던 농민들은 누대에 걸쳐 곳곳의 산자락에다 저수지를 만들었다. 저수지 물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거미줄같은 수로와 관개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곳에다 관정을 파 온 덕택에 이제는 웬만큼 가물어도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 드넓은 논과 20여 개소의 저수지는 강화의 기후에 영향을 미쳐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은 물론 낚시를 좋아하는 도회지 사람들의 휴양처로도 인기가 높다.

 

낟알이 익어갈 무렵 가장 필요한 것은 일조량이다. 가을날 한낮의 땡볕 속에는 자연만이 가지고 있는 오묘한 기가 있어서 낟알을 단단하고 풍성하게 여물게 한다. 강화군의 논은 대부분 들판에 있어서 햇볕을 받기에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다. 8,9월의 일조시간도 평균 6시간으로써 다른 지역보다 0.8시간이나 길다. 풍부한 일조량은 고품질 쌀이 생산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강화군은 이처럼 기름진 땅과 적절한 기온, 깨끗한 농업용수와 공해가 적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벼농사짓기에 최적의 여건을 갖춘 평야에서 벼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가득 배인 햇볕과 해풍을 한껏 맞으며, 또한 농부들의 정성어린 손길에 의해 해마다 알알이 결실을 맺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