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달 말부터 동네 형님들과 얘기해 온
도시민들과의 직거래 트기.
수매도 못하고 남은 쌀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저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가 사는 동네 주변의 아파트 단지와의 직거래를 터보자고 제의를 했고
좋다고 동의를 구한 후
주말에 집에 가는 기회를 이용해
옆의 아파트 부녀회 임원님들을 만난지 2주째.
여기 동네분들도
모여서 이런 저런 의논을 했지만
의외로,
정말 의외로,
내가 걱정했던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우선 경비를 갹출해서
시식회든 뭐든 한 번 해보자 얘기가 있었는데,
막상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거의 모든 분들이 한 발씩 빼는거다.
만약에 잘되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혹시 일이 잘 안될 경우
돈만 내고 그만둬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나도 얘기했고
그분들도 이해를 했지만,
세 번이나 모여서 얘기를 한 결과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망이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일이었는데.
첫 술 밥에 배부르나?
일단 한 번 시도를 해보고
안되면 다시 한 번 해서라도
길을 뚫어야지.
도시에 사는 이들 치고
시골에 연고 없는 분들이 누가 있나?
내 부모가, 내 친척이, 내 친구가, 내 시댁이, 내 친정이, .....
시골에서 농사 짓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한 번 거래를 터보자.
혹시 우리가 불러서 시식회를 하든..
견본으로 쌀을 조금씩 갖다 드리든..
한 번 시도를 해볼 필요는 있다는 점은 다들 동의를 했고
그래서 몇 번씩이나 모여 얘기를 했던 것인데,
막상 협의가 구체적인 단계로 접어드니까
일을 추진해야 할 주체인 여기 농민들이 먼저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2.
결국 결론은...
일단 한 번 해보자고 하신 형님 두 분,
그 형님들과만
오늘 안양의 A 아파트 부녀회장님과 임원님들을 만나고 왔다.
3.
정말 감사한 것은,
농업기술센타(구 농촌지도소)의 여기 삼산면 소장님이
지원을 해줘서
안내문도 만들어 주고..
팜프렛도 지원을 해주고..
기술센타에서 운영하는 농경문화관에서
시제품으로 만든 강화 사자발약쑥비누도 지원을 해주시고..
여기 형님 두분이 준비한 500g 짜리 쌀봉지 20개를 갖고
오늘 안양엘 다녀왔다.
가기 전에 나도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을 하고도 결실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한 가마도 못 팔 수도 있습니다.. 하고.
형님들도 그거야 그럴 수 있는거니까 한 번 해보자 하셔서
작은 선물이나마 준비해 갖고 다녀왔다.
4.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엔 5개 단지, 5,000여 세대가 살고있다.
각 아파트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직거래장터가 열리고 있고,
그만큼 기존의 거래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로이 거래를 트겠다는 것은
그만큼의 투자가 따라야 하고...
최악의 경우엔 결실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점을 각오하고
나랑 같이 갔던 두 형님도, 나도, 운전을 해주었던 후배 친구도(후배라기보다는 조카뻘인 젊은이)
가면서는
한 마디도,
가서 우리가 해야 할 말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올 경우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서로가 하지를 못했다.
그만큼 서로가 옥죄는 가슴을 안고 간 것이다.
마치 내가 옛날에
책을 팔러 다니고 하고 좀약을 팔러 다니면서 가가호호 방문을 할 때처럼,
정말 가슴을 졸이면서
서로가 그 마음을 숨기곤
이런저런 딴 얘기만 하면서 두 시간여를 달려
안양엘 다녀왔다.
5개 아파트 단지중 B단지는 아예 부녀회장님을 만날 수도
연락처를 알 수도 없는 형편이라 그 곳은 포기하고
나머지 C,D,E 단지 부녀회장님들을 다 전화 통화는 했는데
얼마나 참석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인 상태에서
출발 전 오늘 아침에 다시 확인한 바로는
A 아파트 단지 한 곳만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갔다.
우선 한 곳만이라도 시도를 해보자고.
5.
시제품을 드리면서
한 번 드셔보시고 맛이 있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하면서
40분여를 얘기하곤 발길을 돌려 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갈 때는 서로가 첫 마디를 못 꺼냈던,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탁 털어놓고 얘기하면서,
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일단 직접 만나 얘기는 했으니까
기다려 보자고,
맛을 보신다면 분명히 연락은 올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안양엘 다녀와서 5시반배를 타고 삼산에 도착하니 5시45분.
수고했다고 형님들이 사주시는 저녁을 먹고 있는 중에
한 분 형님 댁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 오늘 쌀 갖다 줬어요? 맛있다고 하면서 연락이 왔어요." 하고.
그 말 한 마디에
함께 있던 우리 모두는 불안했던 마음이 한 번에 싹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갔다 와서도 불안했던 마음들이
바람에 안개가 걷히듯 싸악~ 하고 가시는 느낌.
만나면서 누군가가 얘기했듯이,
정말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 맞아요? 라고 우리에게 물어왔듯이
진짜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인가 하고 확인 전화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동기이든간에,
일단 갔단 온 후 바로 반응이 왔다는 것.
그 점이 중요하다고 서로 얘기하면서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제일 걱정했던
가격에 대한 문제도,
20kg에 5만원 선이면 품질만 좋다면야 충분히 사 드시는 분들이 있을거라고
그곳 부녀회장님 부회장님의 말씀처럼
우린 확신을 가졌다.
6.
이런 직거래가 필요한 이유는,
도시 사시는 분들은
믿고, 맛있는, 좋은 쌀을 사서 드실 수 있다는 것이고
농사짓는 분들은 마음 편히 농사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 아파트 단지도 일주일에 한 번씩
직거래 장터가 열리지만 ,
그 직거래 장터에 오는 사람들은 농민들이 아니다.
마치 풍물장터가 열리듯이,
전문적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옛날 보부상들이 했듯이
농수산물을 사선 도시에다 내다 파는 그런 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1년계약이라든지 하는 형태로
농수산물을 갖다 파는 것일 뿐.
그러나 오늘 갔던 우리는 가장 강한 장점이라면
직접 농사를 짓는 분들이 직접 수요자를 만나고 왔다는 것.
그 분들이 그 점을 이해해 주신다면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
그 점을 오늘 확인하고 왔다.
7.
제발 좋은 결과가 있기를.
일단 칼을 뺐으면 무라도 베어야 할 것 아니냐는 심정으로
가슴 졸이며 다녀온 길인데.
일단 한 단지만 개척이 된다면
입소문으로라도
충분히 주변으로 확산이 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다녀온 길.
정말이지 한 50가마라도,
100가마 정도라면 더 좋고,
결과가 있기를.
나는 준 공직자로서 국가예산을 쓰고 있는 회사의 직원이니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결국 국민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이니
무엇이 되든 최소한도 내가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서라면 해야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
정말이지 제발 잘되어
좋은 결실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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