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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셜 리포트/韓·中 역사전쟁 제2탄!] 고구려 유적에는 지금 무슨 일이?

by 아름다운비행 2007. 3. 22.
[스페셜 리포트/韓·中 역사전쟁 제2탄!] 고구려 유적에는 지금 무슨 일이?
접근 금지… 멀리서 바라보기만

버스 안에서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광개토태왕비.

中정부 지난해 12월25일자로 비공개 조치
공안들, 답사팀 일거수 일투족 비디오 촬영하며 감시


지난해 12월27일 오전 10시50분 월간중앙 ‘역사탐험’팀과 ‘고구려연구회’가 주최한 고구려 유적 탐방 행사에 참여한 24명의 답사팀은 중국 동북 지방의 중심도시 심양에 도착했다.

심양에서 통화를 거쳐 고구려 유적이 몰려 있는 집안과 환인의 유적지를 3박4일 동안 둘러보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답사팀에겐 심양에 도착한 첫날인 12월27일부터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답사팀은 답사 첫날 백암성을 둘러보기로 계획했었다. 백암성은 고구려가 수도인 국내성 방어를 위해 세운 성으로, 심양에서는 자동차로 불과 2시간 거리에 있다.

그런데 백암성 안내를 맡은 조선족 출신 여행사 직원은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백암성은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외국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 유적지들이 많다. 백암성도 비공개 유적 중 하나다.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비공개 유적지를 둘러보다 경찰에 발각될 경우 법의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백암성을 비롯한 몇몇 유적지는 법적으로 비공개 대상일 뿐 외국인들의 관람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중국 정부가 답사팀의 백암성 관람을 금지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밤 10시 백암성 답사에 실패한 답사팀은 심양역에 모였다. 고구려 유적지가 모여 있는 집안시의 관문으로 불리는 통화(通化)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난방 연료로 무연탄을 사용하는 탓에 역 구내에는 시커멓고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답사팀은 모두 한결같이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서둘러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일반좌석, 6인승 침대칸, 4인승 침대칸 등 세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기자는 비좁은 6인승 침대칸을 배정받았다. 객차 천장 바로 밑까지 간이침대를 설치한 탓에 키가 큰 사람은 침대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딱딱한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자리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날이 밝으면 사진으로만 보던 광개토태왕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것 같다.

12월28일 새벽 5시30분, 심양에서 밤새 남쪽을 향해 달린 기차가 통화역에 도착했다. 답사팀은 마중나온 여행사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집안시로 향했다. 그런데 답사팀이 탄 버스가 관마산성 아래를 지날 무렵 이상한 차량 한 대가 뒤쫓아 오는 것이 보였다. 검은색 폴크스바겐 승용차로, 중국 공안들이 주로 사용하는 차종이었다. 이 차는 답사팀이 탄 버스가 정차하면 먼 발치에서 서고 버스가 출발하면 다시 뒤따라 오는 것이었다.

이번 답사를 공동 주최한 고구려연구회의 서길수 회장은 “여러분은 아주 안전한 여행을 하고 있다. 저렇게 중국 공안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따라 오고 있으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뼈있는 농담을 했다.

사진 촬영하다 발각되면 1만위안 벌금

국내성이 있는 집안시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 그러나 우울한 소식이 답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 유적 관람 불가’란 통보를 해 온 것이다.

“집안(集安)박물관은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결함이 발견돼 보수공사중이기 때문에 관람할 수 없습니다. 광개토태왕비와 장군총 등 고구려 유적들도 지난 12월25일자로 관람 금지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유는 묻지 마십시오. 저희들도 곤란합니다.”

김송학 집안시 취원국제여행사 사장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구려 유적 답사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고구려연구회 서회장은 “중국 정부가 광개토태왕비와 장군총 등 고구려 유적 관람을 허용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곳에 왔는데 사전 예고 없이 관람을 금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이 같은 조치는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중국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겨냥한 횡포”라고 말했다.

서회장은 “집안박물관은 최근 새로 지은 건물인데,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중요한 유적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중국 정부가 대외적으로는 광개토태왕비의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없도록 관람을 금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회장의 항의를 받은 김사장은 여러 차례 어디론가 전화를 한 후 “박물관을 관람할 수 없는 이유는 물이 새기 때문이 아니라 열쇠를 갖고 있는 직원과 연락이 닿지 않아 박물관의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이라며 박물관 관람 불가의 이유를 바꾸었다.

결국 답사팀은 김사장을 통해 집안시 관광국 등 관계부서와 1시간 넘게 협상을 벌여 ‘광개토태왕비와 장군총·태왕릉·오회분 4호묘는 관람이 가능하지만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다. 집안박물관과 환도산성은 관람할 수 없다’는 조정안을 이끌어냈다. 중국 정부는 김사장을 통해 ‘유적에 대한 설명은 집안시박물관 직원이 하며 서길수 회장이 하는 것은 금지한다’는 조건도 내세웠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집안시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외국인들에게 고구려 유적을 공개해 왔으며 집안박물관의 경우 불과 하루 전에도 외국인과 일반에 관람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28일 박물관을 수리중이라는 이유로 관람을 금지했으나 중국인들은 휴일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설명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서회장과 중국 정부가 여행사 사장을 통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버스 밖에서는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답사팀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있었다. 답사팀이 중국 정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혀 감시당한 셈이다.

여행사 직원은 “광개토태왕비는 물론 다른 고구려 유적들도 사진촬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를 어기고 사진을 찍다 발각되면 1만위안(약 150만원)의 벌금과 카메라를 압수당한다고 말했다. 일행들의 얼굴에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쩌랴.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답사팀은 중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둘러만 보는 단순 관람’에 응하기로 했다.

버스는 이휘라는 40대 초반의 여자 박물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집안시 외곽에 있는 장군총에 도착했다. 이휘는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으로 아시아의 유일한 피라미드이며 1,170여 개의 돌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학자들은 장군총이 광개토태왕릉이라고 주장한다). 계단은 7층으로 이뤄져 있고 4면에 각각 3개의 보호석이 장군총 몸체에 기대 있었다.

신기한 것은 장군총을 정면으로 보면 뒤쪽이 약간 허물어져 있는데, 이곳의 장군총에 기대 있는 바위 한 개가 유실됐기 때문이라고 이휘는 소개했다. 답사팀은 이어 중국인들이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 부르는 광개토태왕비로 향했다.

광개토태왕비는 국내에 알려진 대로 두꺼운 방탄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에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입구에는 경비견과 3∼4명의 감시원도 보였다. 이휘는 “천연 암석으로 만들어진 광개토태왕비는 4면에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의 탄생과 건국 과정, 광개토태왕의 업적, 광개토태왕 사후 무덤을 지키는 군율과 법률이 1,600여 자로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탄유리에 둘러싸인 광개토태왕비의 접근을 거부당해 비문에 새겨진 글자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엉터리로 복원되고 있는 국내성

광개토태왕비 인근에 있는 태왕릉은 장군총 같은 피라미드를 짓다 허물어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 14.8m, 한 변의 길이가 무려 61m 다. 무덤 안에서 두 개의 석관이 발견되었는데 중국 학자들은 이 석관의 주인을 광개토태왕과 왕비로 추정하고 있다. 태왕릉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을 뿐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금지됐다.

오회분 4호묘에서도 답사팀에 대한 홀대는 여전했다. 4호묘에서는 30여 평 규모의 관람실에서 무덤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로 벽화를 보여주도록 돼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관람실 내부에 걸려 있는 6개의 벽화 사진을 설명해줄 뿐 무덤 내부의 벽화는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환도산성과 ‘산성하무덤떼’는 차에서 내려 보지도 못하고 버스 안에서만 관람이 허용됐다. 400여 개의 무덤이 모여 있는 산성하무덤떼의 주인은 고구려의 귀족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하무덤떼의 중앙에 있는 형제무덤은 장군총을 빼닮은 축소판이었다.

최근 새로 보수중인 국내성의 서쪽 성벽 역시 사진촬영이 금지됐다. 서교수는 “중국 정부가 국내성 복원을 잘못하고 있다”며 “국내성 위에는 치(雉)로 불리는 ‘ㄷ’자형 돌출부가 50m 간격으로 있어 성 밑에 있는 적군을 효과적으로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최근 복원되는 국내성에는 복원 대상에서 치가 빠져 있다”고 말했다.

서회장은 “치를 통해서도 고구려는 중원과 다른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며 “서애 유성룡이 지은 ‘축성론’을 보면 치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으나 중원에서는 치에 대한 기록은 물론 유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답사팀은 꽁꽁 얼어 붙은 압록강을 보면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오녀산성의 답사도 금지됐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답사에 참여한 몇몇은 오로지 오녀산성 하나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어 저녁식사 내내 분위기는 아주 침울했다. 고구려 유적의 복원 상태 등을 연구하기 위한 답사팀의 답사 목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번 답사는 실패였다.

이튿날인 12월29일 쫓기듯 환인으로 향했다. 환인으로 이동중 버스 안에서는 서회장의 게릴라식 해설이 이어졌다.

“지금 바로 앞에 보이는 저 무덤이 221호입니다. 칠성산 무덤떼에 있으며 한 변의 길이가 무려 71m가 됩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무덤 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것이 천추묘입니다.”

서회장은 열심히 설명했지만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고구려 유적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오전 11시8분 길림성을 벗어나 요녕성으로 들어섰다. 사첨자산성 밑을 지나 말이 떨어질 정도로 험한 고개라는 뜻을 갖고 있는 곤마령 고개를 넘어 드디어 환인에 도착했다. 그러나 답사팀의 손과 발이 묶인 답사는 오녀산성을 코앞에 두고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중국 정부는 답사팀의 최종 목적지인 환인에서도 ‘접근금지’를 통보했다. 답사팀은 오녀산성이 잘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깊은 한숨과 아쉬움의 3박4일이었다. 그러나 기자나 일행 24명 모두에게 결코 헛된 일정은 아니었다. 우리 역사를 빼앗으려는 중국의 집요한 속셈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 고구려~’. 답사에 참여한 한 대학생이 오녀산성 앞에서 내뱉듯 외친 구호가 아직도 귀전에 맴맴돈다. 비단 나 뿐일까?
한만선 월간중앙 기자 (hanms@joongang.co.kr [2004년 08월호] 2004.08.1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