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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간도

백두산 정계비 터 확인됐다

by 아름다운비행 2005. 8. 27.

[간도]백두산 정계비 터 확인됐다

뉴스메이커 615호

증언과 문헌기록 토대로 정계비 위치 추정... KBS-TV 다큐멘터리 화면에서 주춧돌 확인돼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

서쪽은 압록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은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비문으로 간도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되는 백두산 정계비는 어디 있었을까. 1712년 세워진 정계비는 현재 주춧돌만 남아 있다.

'뉴스메이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여러 자료와 남한측 방문자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주차장과 북한군 초소 부근에 정계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정계비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기록상 정계비는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에서 동남쪽으로 10리(4㎞) 지점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해발 2200m지점이다. 18세기 이후 고지도에는 영락없이 정계비가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 좌표가 아니다. 대강 눈으로 본 것을 옮겨 놓았다. 일제시대 지도에는 정계비가 등고선 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는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장군봉 동남쪽 북한군 초소 근처
최근 북한에서 발행된 장편기행 서적에서 정계비의 단서가 발견됐다. 북한의 문학예술종합출판사가 2001년에 발행한 '내나라'라는 장편기행 안에서 정계비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장군봉을 오르고 있는 저자 최성진(북한 주민)에게 한 북한군인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들, 백두산 정계비에 대한 이야기 들은 적 있습니까? 아까 우리가 지나온 초소 뒤에 자리가 있습니다. 백두산 정계비를 꽂았던 자리 말입니다." 저자는 당시 장군봉을 걸어 오르고 있었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기행문에 나타난 저자의 행로를 위성사진을 통해 추적했다. 본지가 611호(2005년 2월 15일자)에서 보도한 백두산 지역의 1m급 위성사진(주식회사 위아 제공)에 의하면 북한군 초소는 네모난 주차장의 모퉁이에 있다. 장군봉에서 동남쪽으로 4㎞ 가량 떨어진 지점이다.

이곳은 압록강 물줄기를 따라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삼지연 쪽의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바로 위쪽에 있다. 위성사진에는 네모난 주차장 가장자리에 3개의 북한군 초소가 보인다. 왼쪽에 위치한 초소의 옆이 정계비가 세워진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이 바로 압록강 줄기와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 줄기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분수령이다. 또한 18세기 조선과 청의 국경을 나타내기 위해 두 강줄기를 연결한 흙무더기 띠(본지 611호 보도)가 바로 아래에서 시작되고 있다.

북한, 중국과의 관계 고려해 함구
이를 뒷받침할 영상자료도 확인됐다. 1997년 9월 14일 KBS가 방영한 일요스페셜 '최초공개 북한에서 본 백두산'에서 정계비의 주춧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춧돌과 표석이 보인다. 당시 다큐멘터리 해설에서는 정계비의 생김새를 처음으로 공개한다고 해설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간도 전문가들도 이 화면이 방영됐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북한을 통해 최초로 백두산에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한 이 다큐멘터리는 중국의 조선족 제작팀이 제작한 것이다. 화면을 통해 정계비의 위치를 추적해 보았다.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정표가 나타난다. 삼지연 42㎞, 백두산 밀영 34㎞, 백두산 6㎞. 삼지연은 천지 동쪽 두만강 상류에 있다. 백두산 밀영은 천지 남쪽으로 압록강 상류 인근에 있다. 이정표에 나타난 백두산은 장군봉으로, 6㎞ 더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위성사진을 통해 이곳에서 장군봉까지의 도로를 측정한 결과 대략 6㎞였다. 장군봉에서 직선거리로 동남쪽 4㎞ 지점에 정계비가 세워져 있다는 기록을 볼 때 두 도로가 만나는 지점 바로 옆에 정계비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바로 북한군 초소가 위치한 지점이다.



당시 방송 화면에서 북한군 초소가 화면 오른쪽 귀퉁이에 보인다.(위 사진 참조) 초소와 불과 5m가량 떨어진 지점에 주춧돌이 있다. 오르막길을 한고비 접어들면서 길 옆으로 차량이 주차한 후 제작팀이 내리는 장면에서 정계비의 주춧돌이 보인다.

1934년과 1939년 2회에 걸쳐 이곳을 답사한 김득황박사(간도연구가)는 "오솔길 옆에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정계비의 주춧돌인 자연석이 남아 있었다"고 증언한다. 산등성이를 타고 장군봉으로 오르는 옛날 오솔길이 도로로 바뀐 것이라고 본다면 그 언덕 위에 정계비가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1992년 발간한 '백두산 총서'에도 정계비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권으로 집필된 '백두산 총서'의 '관광'편에는 백두산 지역의 문화재가 두루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의 항일 유적지만 나열돼 있을 뿐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쪽을 통해 백두산을 올라간 남측 문인-기자-전문가들은 "안내인이 여러 가지 친절하게 안내했지만 정계비에 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공식적인 문서에서나 북한측 안내인의 태도로 유추할 때 북한측에서 정계비에 관한 사실을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북한과 중국 사이에 민감한 영토 분쟁이 일어난 이후 정계비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이 북한측으로서는 큰 부담이 됐을 개연성이 높다.

윤호우기자
hou@kyunghyang.com

 

* 출처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sec_id=115&art_id=9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