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2일 (금) 11:24 뉴스메이커 |
[포커스]역사 속 기록 현실이
되다 |
고구려연구재단, 백두산 정계비 터 확인… ‘뉴스메이커’ 지난 3월 위치 예측
‘적중’
“백두산 정계비 터는 북한군 초소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뉴스메이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이 본지 615호(2005년 3월 15일) 기사에서 추정 확인했던 백두산 정계비 터의 위치를 고구려연구재단 조사단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7월 19일부터 30일까지 방북했던 고구려연구재단 조사단은 “백두산 장군봉을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주차장 모퉁이 북한군 초소 뒤에 백두산 정계비 터가 있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지난 3월 본지가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주차장과 북한군 초소 부근에 정계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한 내용이 사실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 기사에서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1m급 위성영상을 통해 주차장, 북한군 초소, 정계비 추정지역 등을 정확하게 보여줬다. 실제로 북한지역을 통해 백두산을 답사하기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자리였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정계비 터의 좌표를 북위 41도 59분, 동경 128도 5분으로 추정했다. 위아(주)의 위성영상 전문판독팀에 의뢰한 결과였다. 토문강과 압록강 분수령에 위치 그동안 백두산을 찾은 남한의 방문객들이 이곳을 쉽게 찾지 못한 이유는 북한군 초소 뒤편에 있다는 사실 때문. 군사지역으로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뒤편에 위치해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 위에서는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백두역으로, 향도역으로 가는 삭도(궤도열차)가 최근 자주 이용되지 않음으로써 백두역 인근의 주차장에 차가 서지 않고 곧바로 장군봉 아래로 직행하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다. 고구려연구재단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백두산 정계비 자리에는 현재 흰색 표지석(높이 45㎝, 폭 25㎝의 사각기둥)과 정계비를 받치던 받침돌만 남아 있다. 위치는 행정구역상 양강도 삼지연군 신무성 노동자구로, 백두산 아래 주차장 인근의 북한군 초소 뒤편이다. 김정배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북한이 중국과의 외교 갈등을 염려한 탓인지 표지석에는 아무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계비 터의 확인은 정계비를 건립한 1712년의 역사적 상황을 사실 그대로 증명할 수 있게 된 일대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조선과 청, 두 나라의 국경선이 정계비가 세워진 분수령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계비 양쪽에 위치한 두 강 물줄기는 압록강과 토문강으로, 토문강은 송화강으로 흘러들어가 북간도 전역을 포함하는 지역이 조선땅이었음을 밝혀준다. 중국이 주장하는 두만강의 물줄기는 정계비 터와 수십㎞ 떨어진 지역에서 시작되고 있다. 중국측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고구려연구재단 배성준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는 정계비가 송화강의 지류인 토문강과 압록강 사이의 분수령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945년 해방전까지 관심의 대상이었던 백두산 정계비 터는 분단 이후 위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지난해 간도되찾기 캠페인을 실시한 이래 정계비의 위치를 계속 찾아왔다. 정계비는 기록상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에서 동남쪽으로 10리(4㎞) 떨어진 해발 2200m 지점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18세기 이후 고지도에서도 정계비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그동안 북한지역을 통해 백두산을 찾은 인사들과 접촉, 정계비 터의 위치를 수소문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취재팀은 일제시대 제작된 5만분의 1 지도와 국내 출판 북한지도에 나타난 정계비 위치를 위성영상을 통해 추정해나갔다. 단서를 제공한 것은 북한에서 2001년 간행된 장편기행문 ‘내나라’. 북한 주민 최성진씨가 저술한 이 책에는 백두산 정계비가 북한군 초소 뒤에 있다는 사실을 적어놓고 있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위성영상을 통해 압록강에서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길과 삼지연에서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합류하는 지점 위에 주차장이 있으며, 주차장 모퉁이에 북한군 초소가 있음을 확인했다. 정계비가 이 초소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최초 공개 북한에서 본 백두산’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북한을 통해 최초로 백두산에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한 이 프로그램은 중국의 조선족 제작팀이 제작했다. 조선족 제작팀은 주차장에서 내리면서 정계비 주춧돌을 스쳐 지나가듯이 찍었다. 초소 인근이라 자세히 촬영할 수 없었던 상황을 추측해볼 수 있다. “공동조사로 정계비도 찾아야” 당초 TV 화면에서 볼 수 없었던 초소의 모습은 사진을 제공받기 위해 KBS를 방문, 원 화면을 보는 순간 오른쪽 화면 귀퉁이에서 나타났다. 초소의 지붕이 일부분 나타난 것. 정계비 터가 초소의 바로 뒤편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정계비 터의 위치를 추정 확인하자, 간도연구가인 이일걸 박사(정치학)는 “정계비 터의 위치를 정확하게 추정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위성영상으로 추정 확인했던 백두산 정계비 터는 고구려연구재단의 직접 답사로 역사 속의 기록에서 현실 속의 문화재로 다시 부각됐다. 간도영유권 주장의 확실한 근거인 정계비 터를 확인하게 됨에 따라 간도연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간도영유권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만 머물렀던 국내의 분위기도 반전될 것으로 보인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육낙현 대표는 “아무런 글자도 쓰여져 있지 않는 표지석에다 백두산 정계비 터라고 명명해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물론 한국도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무조건 덮어두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역사고증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1931년 없어진 정계비를 찾는 것도 하나의 과제. 육 대표는 “험준한 백두산 지역인 만큼 정계비를 멀리까지 옮겨가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남북이 공동조사한다면 분명히 인근 지역에서 정계비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계비 건립 당시 설치했던 석축(돌더미), 나무울타리(목책), 흙무더기(토퇴)의 흔적을 찾는 것도 남은 과제다. 울타리의 흔적을 추적해 나간다면 조선과 청의 경계가 됐던 토문강 줄기를 찾아낼 수 있다. 간도특별기획취재팀은 삼지연에서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놓여진 다리인 ‘백두교’ 밑의 작은 개울이 토문강 상류임을 위성영상을 통해 최근 확인했다. 정계비 터의 분수령 옆에서 발원한 토문강은 국경선임을 표시하는 울타리를 끼고 완만한 U자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백두교를 지나 북쪽으로 흘러 송화강으로 합류한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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