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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생각한다

왜 논술인가

by 아름다운비행 2005. 8. 6.

* 알섬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http://blog.daum.net/_blog/ArticleCateList.do?BLOGID=06Dh8&CATEGORYID=166162

 

  

 

얼마 전의 일이다. 퇴근 후 리모컨으로 TV 화면 밭을 뛰어다니다 다큐 채널에 뚝 멈췄다. 내레이터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 우등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우리가 얻은 대답들은 의외였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눈을 번쩍 뜨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바로 이어 TV 카메라는 ‘소원’을 묻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대여섯 명 남녀 학생들의 입을 클로즈업했다. “글 잘 쓰는 거요.” “글을 좀 잘 썼으면 좋겠어요.” “굿 라이팅요.”


지구촌의 남·북 갈등을 최초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이론을 정립하는 인물이 된다든가, 아니면 백악관 주인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이름으로 남아보고 싶다든가, 아니면 물리학·수학의 난제를 가장 먼저 해결하는 천재가 되고 싶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3시간만 자도 안 졸리기, ‘소프트웨어 황제’에 ‘게임 도사’ 되기, 졸업 전 고액 스카우트되기, 여름방학 때 ‘얼짱’ 친구와 단둘이 떠나기…. 다큐 PD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정말 의외로 우등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자신이 어떤 상상력과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느냐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느냐라는 점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절절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올여름 뜨겁게 불어 닥친 한국의 논술고사 진통에도 고스란히 겹쳐진다. 우리도 이제는 에세이 쓰기가 한 교양인의 종합적인 능력을 판단하는 중심 잣대가 되는 과정에 들어와 있다고 보고 싶다. 진부하게 그것을 선진국형 입시 시스템에 동참하게 됐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겠다. 이미 조선시대 500년 동안 우리 선조도 중앙 정부의 최고 엘리트는 시문(詩文)으로 뽑았다.


논술이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는 대입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 거꾸로 대학을 졸업 무렵에 더 실감나게 깨달을지 모른다. 아니면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서 상사가 집어던진 기획안을 땅바닥에서 주워들 때, “일단은 말이 되게 써야지. 말이 되게!”라는 꾸지람을 들을 때, 잘못 쓴 편지 한 장 때문에 1000만 달러 계약을 놓쳤을 때, 논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할 수도 있다.


유명 학원가에 불고 있는 논술 특수현상을 씁쓸하게 지적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한국은 젓가락 사용법에서 줄넘기까지 몽땅 학원에서 배워야 하는 ‘학원공화국’이 돼 가고 있다. 동네 집값과 품위도 학원이 결정하는 마당이다.


덧붙여 논술 고사의 내용을 잘 몰라 이런저런 설명회에 몰려다니는 ‘애타는 부모 마음’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다리는 하나고, 그 밑에 모여든 인간의 머리는 구름과자처럼 많으니 찍어 누르고라도 올라가야 한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급격하게 방향을 꺾는 송사리 떼 같다”는 비난조차 귀에 들리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들은 그저 우왕좌왕이다.


잊지 말 일은 논술은 학원에서 배우는 테크닉과 요령으로 한순간에 따내는 입학 자격증이 아니라는 점이다. 얼마 뒤 “너희는 ‘논술세대’였다”는 시니컬한 이름이 붙건 말건 논술은 평생을 함께 하는 전인격적 능력이고 교양이다. 오래 전부터 하버드 우등생들은 그걸 알아차린 것 같다.

2005. 8. 3 김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