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의 돌에 느닺없이 벌집이 생겼다.
작은 벌집인데,
자기 집을 감싸안고 지키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몇 일 전엔 철쭉 가지에
어느 녀석이 똑 같은 집을 지었던데
이 녀석은 다른 녀석인지..
벌의 머리 위,
바위에 튼튼하게 이어 붙인
까만 줄기 끝에
하얀 벌집이 붙어 있고,
녀석은 자기 집을
소중하게 싸안고 있는 모습이
신비롭다.
어떻게 저렇게 집을 바위에
붙일 줄을 알까?
그리고
저 까만 줄기는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녀석은 저 집을 짓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그 옆에는 누군가 화단에서 뽑아 놓은
민들레가
다 말라 비틀어져 있었는데,
그 바짝마른 줄기 끝엔
민들레 씨가 소담스레 붙어 있다.
싸앗이 아직도 파란색을 띄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꽃이 피었었거나 했던 상태에서
뿌리째 뽑힌 후
급히 꽃씨를 지어낸 것 같다.
민들레는
아마..
자신의 생육여건이 안좋다고 감지를 하면
갑자기라고 해도 좋을만큼 빨리
씨를 맺는 것 같다.
몇 년 전
경남 산청엘 갈 일이 있었는데
도로개설하는 곳에
하얀 민들레가 몇 포기 있었다.
부랴부랴 철물점서 모종삽을 하나 사고
동네 슈퍼에서 음료수 종이상자 작은 거 하나 얻어
민들레를 조심스레 캐서
줄기가 부러질까 봐
신문지로 한 포기 씩 겉을 둘러
세 포기를 안양에 옮겨 심었다.
그런데 한 녀석은 몸살을 앓다가 죽고,
한 녀석은 화단 잡초 뽑던 이가 잡초라고 뽑아 버리고
나머지 한 포기가 살아 남았다.
그런데 그 제일 먼저 죽은 녀석,
꽃대를 길게 뽑아 올리더니
어느 일요일 오전, 꽃을 활짝 피우는가 싶더니
점심 때 가보니 이미 꽃씨를 맺고 꽃은 온데간데 없었다.
정말 순식간이라고나 해야할까..
그리고는 그 녀석은 그 한 송이 꽃을 마지막으로 죽고 말았다.
아마 녀석은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을 미리 알고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꽃 한송이를 피워 올리고는
급하게 꽃씨를 맺곤 죽어버린 듯 했다.
민들레는
강인한 생명력을 대변하는 식물중의 하나지만,
그 날 일은 내겐 작은 충격이었다.
종족보존의 본능.
그 죽은 녀석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하려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 했을까?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의
안타까움.
사람은 아니나
마지막 길을 가면서 제 할 일을 다했던
그 녀석에게 느낀 경외감은 지금도 내 가슴 속 한 구석에 진하게 남아 있다.
슈바이처 박사의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라는 말,
정말로 그는 모든 살아있는 것에
경외심을 가진 훌륭한 이.
작은 화단이지만
그 속을 둘러보면
이처럼 생명의 경이로움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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