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강화터미널에서 외포리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앞에서 유창한 영어가 들린다.
한국사람 같은데, 젊은 아가씨다.
좀 전에 어느 버스기사님이 뭔가를 종이에 적어주던 아가씨다.
세련되 보이지는 않는 아주 평범한 얼굴의 아가씨가 배낭 하나 달랑들곤 차에 오른다.
말안하고 그냥 있으면 영낙없는 아주 평범한 한국사람 같다.
영어로 하는 걸 봐선 한국사람 같진 않고,
속으로 '그 사람 영어 잘하네.. 외국인인가보네.' 생각을 했다.
기사님 바로 뒤에 앉아서 옆 자리 아주머니께 뭐라고 물어보며 뭘 보여주니까
아주머니는 또 뭐라고 답을 하셨다.
외포리서 내리는데 그 아주머니께 또 뭘 물어본다.
시골 사는 연세드신 분이 영어가 될 리가 있나..
May I help you?
괜스래 내가 또 끼어 들었다.
이 아가씨, 영어로 뭐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니 아주 반가운 기세다.
내려서 물어보니 석모도를 간다고.
나랑 같이 가면된다고 하니 연신 Thank you를 연발한다.
가면서 자기 시계가 멈췄다면서 몇시냐고 물어보길래
주머니 속에 있던 시계 겸용 계산기를 보고 시각을 말해주곤
시계가 멈췄으면 이것을 가지라고 했더니 괜찮댄다.
뉴욕에서 왔는데, 한국엔 두번 째고, 강화는 첨이란다.
와선 보문사를 보고 가려고 한단다.
그래서 열심히 내가 아는 몇 가지를 말해줬다.
배는 매시 정각과 30분에 있고, 막배는 6:30분이고
석모도를 가면 보문사 가는 버스는 1시간마다 있고 ...
일정을 물어보니 오늘 6시 반 비행기로 출국을 하는데,
그전에 서울서 친구랑 2시에 강남터미널서 만나기로 했단다.
시간이 많이 늦을거라고 했더니 늦으면 전화로 약속을 늦추면 된단다.
배를 타고 건너와선 잠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느라 식당 몇 군데를 둘러보고
한국음식도 먹느냐고 물었더니 잘 먹는단다.
바닷고기를 먹고 싶다길래 한 군데 물어보니 밴댕이회 구이를 해서 백반 먹는데 만원.
비싸다고 하더니 씩씩한 발걸음으로 다른 곳을 향한다.
또 다른 곳을 가서 물어보니 된장찌개는 된다고.
된장찌개도 좋아한다길래 그것하고..
또 얘기하는 게 sea snake는 있냐고 물어보며 그림을 그려주는데 소라 같길래
저것을 말하냐고 실물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맞는댄다.
그것까지 해서 만원에 점심을 예약하고,
보문사서 11:30분 버스를 타고 나와선 바로 배를 타야 하니까 도착하면 곧 식사를 할 수 있게
식당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려놓곤
버스에 타는 것을 보면서 구경 잘하라고 인사를 했다.
버스가 출발 하기 전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
人蔘이라고 쓰면서 자기 어머니께 사다드리고 싶은데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얼마면 적당한 가격인지를 물어보길래
강화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면 인삼센타가 있고,
기왕이면 홍삼을 사라고, 가격은 5~10만원이면 홍삼이나 홍삼차를 살 수 있을거라고
얘기해줬다.
그 아가씨가 버스에 오른 후
혹시나해서 내 휴대폰 전화번호와 이름을 내가 가지고 있던 신문지 여백에 적어놓곤
건네주기가 뭐해 그냥 들고 있는데
창너머로 내이름을 묻는다.
그래 그 적은 부분을 건네주니 한문과 영어로 된 내 이름을 보더니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주는데
鄭善群.
한국어로 자기 이름은 '정상군'이라고 하길래 '정선군'이라고 읽는다고 해주곤 함께 웃었다.
아마 중국계 미국인 인 것 같다.
성이 같다는데서 더 반가웠던 것 같다.
핸드폰(cellular phone)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니 없단다.
있으면 혹시 얘기하다 안되는 말이 있으면 내게 전화를 하라고 할 요량으로
내 핸드폰 번호까지 적어준건데.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보고 참 친절하다고 고맙다고.
난 그냥 동행이고 나도 버스를 기다려야 하니 기다리는 동안 안내 잠시 해준 것 뿐인데.
그러고 나서 사무실에 들어와
홍삼 가격을 물어보니 홍삼은 2~3십 만원은 줘야 한다네.
아까 뉴욕서 왔대는 사람을 만난 얘기를 하고 그럼 내가 가격을 잘못 알려줬네 했더니
홍삼차나 홍삼절편은 그 정도 가격이면 살 수 있을거라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인삼 사러 가서 비싸게 부르는 것을 보곤
한국사람들이 자기가 외국인이니까 비싸게 부르는 것으로 오해를 할까봐서 맘이 편치 못하다.
에이..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하면 자유스럽게 말을 할 수 있고 그랬을텐데.
그러면 얘기도 좀 더 정확히 해주었을게고.
아침 출근길의 작은 일이었지만,
영어를 해야한다는 생각과
내가 안내를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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