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 동화
연구
-일제 시대의 생활동화 '노마'연작에
관해-
원 종 찬
1.우리 나라 생활동화의 발자취
동화는 소년소설과 달리 판타지를 특성으로 한다. 이것은 유년기 아동의 심리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다. 하지만 현실주의 문학 운동과 함께 현실의 어린이를 사실대로 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주 드높았던 때가 있었다. 1930년을 전후한 프로 아동문학 운동 시기가 바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의 맥락을 잃고 있는 판타지 동화나, 다만 상식의 범위에서 얄팍한 교훈을 제공하는 우화의 세계에서 프로 아동문학은 한 걸음 나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 바로는 당시 '동화'란 이름으로 나온 대부분의 현실주의 작품들이 엄밀히 구분하자면 소년소설이나 그냥 소설에 들어가는 것들이지 유년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동화'는 아니었다.
유년기와 소년기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더라도, 곧 생활동화와 소년소설을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동화에 속하는 하나의 작은 갈래로서 생활동화는 자기 나름의 전통 혹은 문학 관습을 만들어 왔다. 거칠게 말해서, 저학년이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이면서, 어린이의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삶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면, 우리는 이것을 생활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동화는 현실주의 문학정신이 낳은 것이다. 여기에서, 현실을 떠난 관념과 공상의 세계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일제시대 프로 아동문학 운동이 지닌 긍정의 역할을 말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동화에서 판타지를 관념으로 치부하는 것이 현실주의 문학정신이라고 한다면, 이건 아주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훌륭한 판타지 동화는 그것대로 인간과 사회의 올곧은 반영으로서, 즉 인생에 대한 하나의 은유와 상징으로서 성립할 수 있다. 어쩌면 세계 명작 동화의 대부분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 동화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판타지 동화도 그렇지만 이른바 생활동화의 문제점 역시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프로 아동문학 운동이 남긴 부정의 영향이라고 판단한다. 당시 많은 논자들은 현실주의를 현실의 단순 복사로 좁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 결과 현실주의 동화란 곧 생활동화이고, 나아가 생활동화이면 곧 현실주의 동화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너도나도 생활동화를 쓰는 것까지야 뭐라 할 것이 못된다. 진짜 문제는 '동심'이었다. 아이들의 연령에 따른 심리적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썼느냐, 혹은 '동화'라는 갈래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썼느냐 하는 문제로 와서 냉정히 평가해볼 때, 함부로 쓴 생활동화 작품들이 동심이나 동화의 숨통을 조여 왔다는 많은 지적이 결코 과장은 아닌 듯싶다. 아동문학에서는 현실주의이란 게 가당치 않다고 여기는 이들은 물론이고, 현실주의 아동문학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원수(李元壽)조차도 '무미건조한' 생활동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가 있다.1)
이런 문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 나오는 생활동화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문장과 줄거리가 어른한테도 참기 힘들 만큼 지루할 정도이니, 아이들한테 읽힌다면 거의 고문과 다름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재미있게 쓰려고 애쓴 작품의 경우에는, 유치한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줄거리가 통속 일변도이거나, 단순히 아이들과 농담 주고받기라도 하려는 듯 경박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을 숱하게 쏟아놓은 것들이기 십상이다. 진짜 아이들 생활은 없고 아이들 흉내만 있는 것이다.
'동심'과 '동화'를 잘못 이해하고서 쓴 생활동화의 문제점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이러하다. 첫째는 어린이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작가 관념의 빈번한 노출. 둘째는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통속적인 줄거리. 셋째는 사건과 줄거리 또는 주제가 빈약하고, 문장이 지리멸렬하거나 아니면 그저 경박하기만 한 것 들이다. 두 말할 나위없이 위대한 판타지 동화는 위대한 철학이 아니고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생활동화는 우선 동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현실주의 문학정신을 살려내야 한다.
2.일제시대 현덕의 동화 분석
현덕(玄德, 1909-현국전쟁 때 월북)에겐 판타지 동화가 한 편도 없다. 나는 과거 한 논문에서, 작가 현덕을 가리켜 본격 소년소설의 개척자라 평가한 적이 있다.2) 이 글은 일제시대 현덕의 '노마' 연작 동화'가 우리나라 유년기 생활동화의 정점임을 밝히려 한다. 소년소설과 구별되는 생활동화 전반의 전통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형편에서, 현덕 동화 전후를 둘러보아 그만큼 뚜렷한 성과를 찾아보기 힘들다. 마해송, 이주홍, 이원수, 권정생 같은 이들은 넓은 의미의 판타지 동화와 소년소설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낳았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덕은 현실주의 문학정신을 바탕으로 프로 아동문학이 이루지 못한 유년기 아동의 현실을 동화의 세계로 담아내었고, 동화의 특성을 옳게 이해한 바탕에서 동심의 세계를 사실적이고 시적인 문장으로 그려낸 작가이다.
동화는 판타지가 아닐지라도 유년기 아동의 나이에 따른 특성을 옳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 형상의 세계이되, 간결하고 압축적인 문장과 운율의 언어를 가지고 시적 효과를 노려야 한다. 말하자면 동화는 개성을 지닌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산문시, 혹은 시적 산문에 가깝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현덕 동화의 작품 얼개와 문장 구조의 특성을 먼저 살펴본 다음, 내용에 따른 현실주의 특성을 뒤에 기술하기로 한다.3)
1)현덕 동화의 형식미학
첫째, 현덕의 동화는 대부분 단일한 사건과 이어진 구체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린 아이들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매우 짧은 분량이다. 서두부터 간결한 문장으로 극적인 상황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곧 사건의 처음이자 작품 모티브로 되어 있어서, 다음 장면을 계속 끌어당기게끔 하는 효과를 갖는다. 생활동화가 유년기 아동의 특성인 상상의 날개를 잘라버린다는 비판은 적어도 현덕의 동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살살 앵두나무 밑으로 노마는 갑니다.(〈고양이〉 처음 부분)
기동이는 물딱총을 가졌습니다.(〈물딱총〉 처음 부분)
맨발 벗고 살살 영이는 다리를 건너갑니다.(〈맨발 벗고 갑니다〉 처음 부분)
노마가 돌 축대 위에 올라섰습니다.(〈내가 제일이다〉 처음 부분)
기동이가 커다란 구두를 신고 나왔습니다.(〈아버지 구두〉 처음 부분)
담 모퉁이에서 기동이와 똘똘이가 만났습니다.(〈싸움〉 처음 부분)
노마가 구슬 한 개를 잃어버렸습니다.(「잃어버린 구슬」 처음 부분)
"난 너구 안 놀아."
하고 영이는 담 밑에 돌아앉았습니다.(〈너하고 안 놀아〉처음 부분)
둘째, 현덕의 동화는 대부분 반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그 자체로 운율의 효과를 낳고 있으며, 동시에 인물의 행동을 명료하게 하고 줄거리를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 이 반복 구조는 어떤 상황이나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거듭 똑같이 발생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물론 단순 반복이 아니라, 소박한 대로 사건의 진행과 심화로서, 점층 효과를 낸다. 첫 장면에 제시된 의성·의태어가 구체적인 상황을 드러내면서 일정한 대목마다 되풀이되어 사건을 연속 고양시키기도 하고, 아이들의 행동 차례대로 서술을 반복하되 의성·의태어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단조로움을 피하고 문장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대화글에서는 똑같은 말을 여럿이 복창하더라도 등장인물 모두의 인상과 행동을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일일이 반복해서 써준다. 한 아이가 대상을 달리해가며 똑같이 소리 지르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런 반복은 운율만이 아니라, 모두 장면을 명료하게 해주는 효과를 낸다. 사건의 진행과 인물 성격에 관한 이해를 한층 돕고 있는 것이다.
살살 앵두나무 밑으로 노마는 갑니다. 노마 다음에 똘똘이가 노마처럼 살살 앵두나무 밑으로 갑니다. 똘똘이 다음에 영이가 살살 똘똘이처럼 갑니다. 그리고 노마는 고양이처럼 등을 꼬부리고 살살 발소리 없이 갑니다. 아까 여기 앵두나무 밑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이렇게 살살 갔던 것입니다. 검정 도둑 고양입니다.(〈고양이〉, 13면)
분홍 치마-솜사탕 장수 어딨는 거 봤수?
기름 장수-나 몰라.
노랑 치마-솜사탕 장수 어딨는 거 봤수?
기름 장수-나 몰라.
파랑 치마-솜사탕 장수 어딨는 거 봤수?
기름 장수-난 모른대두.(〈바람은 알건만〉, 23면)
그렇지만 다 같이 팔을 쳐들고 소리칩니다.
-내가 제일이다. 어림없구나.
-내가 제일이다. 어림없구나.
-내가 제일이다. 어림없구나.(〈내가 제일이다〉, 44면)
그러다가 똘똘이, 영이, 노마를 보고 소리칩니다.
-너 생전 나구만 논댔지?
-너 생전 나구만 논댔지?
-너 생전 나구만 논댔지?(〈과자〉, 50면)
셋째, 반복, 대조, 생략, 의성·의태어의 사용 따위로 문장의 배치를 교묘히 하여 운과 율을 극대화한다. 이를테면 우리 말의 소리값과 어절의 변화에 따른 음보율을 잘 살려 쓴다. 이점에 유의해서 다음 대목들을 읽어보자.
기동이는 옥수수 과자를 혼자만 먹습니다. 하나를 먹습니다. 둘을 먹습니다. 셋, 넷을 먹습니다. (〈고양이〉, 26면)
그럴수록 영이네 광엔 쌀이 늘어갑니다. 그럴수록 노마네 가게엔 돈이 늘어갑니다. 돈이 늘어갈수록 쌀은 줄어갑니다. 줄어갑니다. 늘어갑니다. 늘어갑니다. 줄어갑니다.(〈싸전 가게〉, 35면)
마침내 기동이도 제일이 되고 싶었습니다. 다리를 옴질옴질 두 팔을 훨훨, 그러다가 펄쩍 축대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내가 제일이다〉, 43-4면)
우물 앞을 왔습니다. 노마는 돌래돌래 아무리 찾아도 구슬은 없습니다. 먼저부터 그런 것처럼 조끼주머니에는 노랑 구슬만 두 개가 도굴도굴, 아무리 찾아도 파랑 구슬은 간 데가 없습니다.(〈잃어 버린 구슬〉, 113-4면)
함박눈이 내립니다. 펄펄 지붕 위에서 함박눈이 내립니다. 지붕 위에서 내리는가 하면 펄펄 버드나무 위에서 내립니다. 버드나무 위에서 내리는가 하면 펄펄 전봇대 위에서 내립니다. 전봇대 위에서 내리는가 하면 펄펄 그보다 썩 높고 먼 데서 함박눈이 내립니다. 아주 멀고 높은 데서 아주 수없이 내립니다.(〈삼형제 토끼〉, 135면)
넷째, 대화글의 생동감이다. 상황에 따라, 심리 변화를 쫓아, 서울내기 아이들의 경아리 사투리가 또랑또랑하다.
"맛있니?"
"그럼."
"다냐?"
"그럼."
(……)
"우리 할머니 집엔 낼 빈대떡 부친다누. 그래서 나두 간다누."
"피 그까짓 거. 우리 집은 낼 고사떡 하는데, 뭐."(〈옥수수 과자〉, 26-7면)
"어디 가우?"
"한강 가우."(〈새끼 전차〉, 30면)
"아까 똘똘이하구 무슨 얘기 했니?"
"그건 알아 뭣해?"
"너 똘똘이하구 내 숭봤지?"
"언제 늬 숭을 봤어?"
"그럼 무슨 얘길 했어?"(〈싸움〉, 56면)
"너 이것하구 바꿀까?"
"뭣하구 말야."
"포도하구 말야."
"이런 먹콩 같으니."
"그럼, 구슬 두 개허구."
"난 일없어."
"그럼, 세 개허구."
"그래두 일없어."
"그까짓 먹는 게 존가. 가지고 노는 구슬이 좋지."
"그래두 난 일없어."(〈포도와 구슬〉, 59-60면)
"그럼 이따 우리 어머니 돈 주면 과자 사서 너 고금만 줄게."
"그까짓 조금."
"그럼 반만 줄게."
"고까짓 반."
"그럼 다 줄게."
"그까짓 사지두 않은 과자 누가 안담, 뭐."(〈너하고 안 놀아〉, 110-2면)
"개울이 퍽 넓으냐?"
"그럼, 넓기만."
"물두 깊구?"
"그럼, 깊기만."
"송사리나 미꾸라지 말구 붕어두 있니?"
"그럼, 정작 붕어가 없어?"
"그럼 메기두 있니?"(〈실망〉, 167-8면)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 얼개와 문장 구조의 특성은 따로따로 효과를 나타내지 않고 한꺼번에 어울려 현덕 동화 특유의 형식미학을 결정해줌과 동시에 거기에서 비롯되는 '읽는' 즐거움을 한껏 고조시킨다. 이쯤되면 독자의 나이가 어려서 등장 인물의 미묘한 심리 변화나 내용의 깊이까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말의 아름다운 흥취만으로도 현덕 동화를 충분히 즐길 만하다.(더욱이 이것들이 일제에 의해 조선어 교육이 폐지된 1938-39년 사이의 산물임이 상기되어야 할 것이다.) 동화는 보통 상세한 장면 제시보다는 주로 스토리에 의존하고, 인물도 얼른 이해할 수 있는 평면적 인물이 적당한 법인데, 현덕 동화는 이와 다른 자리에서 유년 동화를 성공시켰다고 평가된다. 현실의 인물 탐구를 목표로 하여 아이들의 생활을 퍽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무릇 '동화'라는 갈래의 특성을 뚜렷이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그의 소년소설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성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2)'노마' 연작 동화의 현실주의 특성
현덕 동화는 무엇보다 현실주의 문학정신의 성과이다. 그 첫째는 한 치도 보태거나 뺌이 없는, 구체적 상황에 따른 유년기 아동 심리의 사실적 반영이요, 둘째는 일제 시대에 새로 형성된 도시 변두리 산동네의 골목 풍경을 무대로 한, 거기 아이들 생활의 사회적 전형성이고, 마지막으론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도 내일의 세대인 어린 아이들에 대한 작가의 기대와 희망의 메시지로서 사회적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올바른 가치 형성의 문제이다. 어린이의 경험 세계와 이해 범위 안에서 인간 본성과 그 조건에 대한 깊은 천착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덕 동화의 현실주의 특성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천진한 동심의 세계이면서, 가공된 심리나 미화된 성격이 아닌, 어디까지나 현실 그대로의 아이들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붙들어 내었다. 투명한 동심과 마주하되 유치한 구석을 만나볼 수 없다는 점에서, 현덕 동화는 유년기 아동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향유될 수 있는 조건을 지닌다. 노마, 영이, 기동이, 똘똘이는 천진난만하다고 해서 막연히 추상적 어린이의 그림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살아 있는 인물로 다가온다.
그리고 기동이는 영이가 더 먹고 싶어하라고 일부러 더 맛있게 먹어 보입니다. 하나를 꺼내 들고 얼마나 맛있는 것인가 한참씩 눈 위에 쳐들고 보다가는 넙죽넙죽 돼지 입을 하고 먹습니다. 그 손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영이 눈도 따라 움직입니다. (……) 다 먹었습니다. 다 먹고 빈 종이로 입을 씻습니다.
"아아, 맛있다."
영이는 고만 성을 발끈 냅니다.
"너구 안 놀아. 당최 안 놀거 뭐."
그리고 영이는 흙 한 줌을 끼얹어 주고 저의 집으로 달아납니다.(〈옥수수 과자〉, 26-8면)
버드나무 앞엘 왔습니다. 게서 영이는 기동이를 만났습니다. 기동이는 묻습니다.
"영이 너 어디 가니?"
그래도 영이는 살살 그림자만 보며 갑니다.
"영이 너 어디 가?"
기동이는 영이를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영이는 가는 데가 있는 듯싶었습니다. 아주 바쁜 걸음으로 맨발 벗고 갑니다.(〈맨발 벗고 갑니다〉, 37-8면)
먼저부터 그런 것처럼 노랑만 두 개가 도굴도굴, 파랑 구슬은 영 잃어버렸습니다.
마침내 노마는 두 개 노랑 구슬보다 한 개 파랑 구슬이 갑절하고 갑절 얼마든지 갑절 좋아졌습니다. 열 개하고 한 개 하고 바꾸재도 얼른 바꾸겠습니다.
얼마든지 갑절 백 개하고 바꾸재도 얼른 바꾸겠습니다.(〈잃어 버린 구슬〉, 115면)
등장인물은 각자의 성격에서나 함께 어울려 노는 관계에서, 매우 평등하게 그려져 있다. 모두 개성적이지만, 그것이 어른의 선악 개념을 따라 선험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물 떠오는 심부름을 시키고도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고 노마의 얼굴에 물딱총을 쏘아대는 기동이나(〈물딱총〉), 같이 놀아준다고 하고서 기동이의 과자를 얻어 먹고선 과자가 다 떨어지자 얼굴 모습을 바꾸는 똘똘이, 영이, 노마나 다 한가지다(〈과자〉). 빤히 쳐다보는 영이 앞에서 과자를 혼자서만 맛있게 먹어보이는 기동이나(〈옥수수 과자〉), 금을 그어 놓고 똘똘이를 못들어 오게 하다가 마침내 구슬 하나를 손에 쥐고서야 금을 지워 맞아들이는 영이나 다 한가지다(〈너하고 안 놀아〉). 주인공 격인 노마도 구슬을 잃어버리고는 공연히 기동이를 의심하고(〈의심〉), 마음에 차지 않으면 우선 어머니한테 떼를 쓰고보며(〈물딱총〉〈여자 고무신〉〈강아지〉), 제멋대로 까불다가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실수〉). 똘똘이는 제일 막내면서도 노마나 기동이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린다(〈큰소리〉). 사건과 자연스레 결부되어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고, 어린이 독자는 바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발견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대화나 행동을 통해 자기 중심적이고 현실적 욕망이 강한 아이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그려내는 가운데서도 현덕은 아이들의 생활과 정서를 어느 한 쪽에만 치우쳐서 바라보지는 않는다. 여기 아이들이 그저 천덕꾸러기들만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가령, 〈바람은 알건만〉,〈맨발 벗고 갑니다〉,〈귀뚜라미〉,〈바람하고〉들과 같은 작품은 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다소곳하고 차분한 정서로 그려내 보여준다. 또 〈조그만 어머니〉,〈어머니의 힘〉,〈동정〉,〈우정〉 들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따뜻한 분위기를 이끌며 아이들의 대견스런 모습을 담아낸 것들도 있다. 한편,〈기차와 돼지〉,〈땜가게 할아범〉은 얼마나 수더분하고 흐뭇한 세계인가? 어린이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마음 쓰는 작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실로 다양한 경험, 폭넓은 정서의 세계가 꾸밈없이 아주 자연스레 펼쳐진 공간이 바로 현덕 동화인 것이다. 깔끔하면서도 넉넉한 공간이다.
지루한 설명이 없고 생생한 장면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의심〉,〈용기〉,〈실수〉,〈실망〉,〈동정〉,〈우정〉따위처럼 관념의 세계를 제목으로 한 것들도 막상 읽어보면 다른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구체적인 형상의 세계이다. 어느 한 작품 뒤쳐지는 것이 없이 모두 고르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서 작가 현덕의 탁월함은 거듭 증명된다.
둘째, 현덕 동화의 사회적 전형성은 작품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생활 형편, 그리고 거기서 펼쳐지는 삶의 모습들에서 드러난다. 솜사탕 장수가 오가고, 아이들 군것질거리와 장난감을 늘어놓은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으며, 검정 판자집들이 길 따라 늘어선 산동네의 골목이 바로 작품의 주된 공간이다. 이 '도시 변두리 산동네 빈민촌'은 식민지 자본주의 도시 형성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1930년대 들어 자기 삶의 터전에서 뿌리뽑힌 광범한 이농민과 유민의 발생이 낳은 결과이다. 물론 골목 마당만이 여기 아이들의 활동 무대는 아니다. 산동네의 골목은 두 방면으로 또 다른 세계와 이어져 있다. 골목과 연한 큰 길로 나가면 땜가게 할아범네가 나오고, 이발소와 기름집, 사진관 따위가 늘어서 있으며, 동네의 또 다른 방향으론 고추밭, 호박밭, 우물, 돼지우릿간 따위가 나오고, 개울, 들판, 언덕, 동산으로 열려져 있다. 고급음식점 '화신상'은 어른과 함께 전차를 타야만 다가갈 수 있는 시내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가운데 기동이네는 형편이 좀 펴있는 듯하고 나머지 아이들과 길가를 스쳐지나가는 어른들은 모두 가난한 서민의 삶을 보여준다. 다소 먼거리에서 언듯언듯 작품의 줄거리를 받쳐주고 있는 이들 배경과 주변의 삶은 무대 뒤켠에 존재하고는 있지만 어느 한 대목도 허튼 구석이 없이 모두 당대 사실의 기록들이다.
작품의 사건은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으로 드러나는바, 기본적으로 부잣집 아이 기동이와 서민 아이들 사이의 대립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여기서 또한 작가는 아이들 세계 역시 나름의 사회 질서가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기동이는 가난한 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물질을 독차지한 것 때문에 늘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새끼 전차〉,〈싸움〉,〈둘이서만 알고〉,〈삼형제 토끼〉,〈고양이와 쥐〉). 하지만 놀이의 세계에서 이들은 한 동네의 친한 동무들이다(〈암만 감아두〉,〈토끼와 자동차〉,〈바람하고〉,〈기차와 돼지〉,〈땜가게 할아범〉). 이런 점 역시 현실의 사실적 반영이다. 현덕 동화가 성급한 관념의 제공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 탐구라는 점이 여기서 뚜렷해진다. 관념의 도식을 먼저 앞세우려 했던 카프 동화의 고질적 병폐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덕의 작가 의식은 분명하다. 서민 아동의 승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토끼와 자동차〉를 비롯해서, 〈새끼 전차〉,〈고양이와 쥐〉,〈삼형제 토끼〉 , 그리고 〈용기〉를 보면 이 점이 확연해진다. 이 밖에, 영이 어머니와 노마 어머니의 유대감(〈여자 고무신〉), 땜가게 할아범과 동네 아낙네들의 유대감(〈땜가게 할아범〉)도 서민의 편에서 과장 없이 건강한 서민의 생활 세계를 그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작가의 메시지는 앞에서 말한 사실들 속에 모두 녹아있지만, 결국은 겨레 어린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사회적 가치를 기르게 하자는 데 현덕 동화 최후의 초점이 놓여 있다. 천진스레 노는 가운데서도, 마땅히 서로 나누고 의젓해야 할 곳에서는 노마나 영이, 똘똘이를 비롯해 여기 등장하는 모든 서민 어린이들이 아주 갸륵하고 대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점을 놓칠 수 없다. 우리는 특히 노마한테서 총명과 슬기, 탐구심, 용기를 두루 갖춘 씩씩한 어린이의 전형을 발견한다. 개구장이인 동시에 슬기롭고 탐구심 많은 어린이상의 대표로서 '노마'란 이름이 지금까지도 널리 통용되고 있는 사실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작가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도 내일을 열어두고는, 자기 현실에 튼튼히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개성의 형상들을 통하여, 이 땅의 아이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갈 것을 기대해 마지 않았을 터이다.
3.맺음말
현덕 동화는, 스토리를 위주로 하는 전래의 '듣는' 동화에서, 현실의 인물 탐구를 위주로 하는 '읽는' 동화로의 발전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동화'인 점에서, 현덕은 독특한 구어체 스타일을 한편으로는 전래동화의 구조에서 계승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새로 창조하여 양자의 차이를 극복하였다. 여기에 현덕 동화의 비밀과 가치가 놓여 있다. 그렇다고 동화의 세계가 모두 현덕 동화처럼 되어야 옳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동화는 무엇보다도 상상이 자유롭고 그 힘이 무한한 어린이 독자의 심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아동문학의 한 갈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현덕이 일반 문학에서나 가능한 생생한 인물 탐구의 세계를 나름대로 유년 동화에까지 끌어내려 동화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시킨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유년 동화들이 '욕심은 나쁘다.' '착한 것은 보상을 받는다.' 따위처럼 뻔하고 얄팍한 교훈의 세계라고 한다면, 현덕 동화와 같은 현실의 인물 탐구야말로, 기존 질서와 타협할 수 없는 문제적 주인공들의 삶의 이야기인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과 이어지는 문학 본래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이 점에서 전래 동화의 단순한 재탕이 아닌, 근대 창작 동화의 개척자로서 현덕의 위치가 부각된다.
나는 앞으로 생활동화도 그렇지만 뛰어난 판타지 동화의 출현을 더욱 기다리는 사람의 한 명으로서, 우리가 최소한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과 함께 '노마'의 작가 현덕을 가진 것은 그래도 행복이지 싶고, 겨레 아동문학의 긍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한, 우리 아동문학의 작품 가운데에서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작중인물을 꼽으라면 '몽실언니'와 '노마'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판타지가 없고, 권정생마냥 선이 굵은 장편이 없다는 점에서 좀 아쉽기도 하지만, 현덕 동화의 세계는 탁월한 작가 개성의 발현인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류는 있어도 바로 그 세계는 다른 이한테서 다시 나올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세계, 현덕 동화를 읽을 때마다 거듭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다.
▣(이 글은 《아침햇살》 1996년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 원종찬님은 우리회 이사입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한국글쓰기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아동문학의 여러 문제들을 연구하고 좋은 어린이책을 소개하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2000년에 《아동문학과 비평정신/창작과 비평사》을 냈습니다.현재 인하대 강사 및 선화여상 교사로 재직중입니다.)
※ 각주
1)이원수, 〈아동문학 프롬나드〉( 《이원수아동문학전집 》28권, 웅진출판사, 1992) 220면.
2)원종찬, 「현덕의 아동문학」, 《민족문학사연구》 제6호, 1994년 하반기. 동화와 소년소설을 포함한 현덕의 작품 연보는 이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3)이 글의 텍스트는 현덕 지음·원종찬 엮음, 《너하고 안 놀아》(창작과비평사, 1995)를 참조로 했다. 현덕은 일제시대의 작품들을 모아서 해방 직후에 두 권의 동화집을 펴낸 일이 있으나 그 책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앞의 책은 작가 현덕이 일제시대-정확히 1938년부터 1939년-에 쓴 동화들을 당시 문헌들에 토대하여 최근에 발굴 소개한 책이다.
* 출처 : (사)어린이도서연구회
http://www.childbook.org/spc/hd/hd2-16-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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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사)어린이도서연구회, 작가들의 방 - 삶과 작품세계 중에서
http://www.childbook.org/spc/hd/hdteacher2.htm
1. 현 덕의 삶·글·문학
현 덕 연보 <너하고 안
놀아>에서 |
2. 현 덕 작가론·작품론
|
|
3. 작품·책 모음 집을 나간 소년, 산하 1993 |
4. 그리고 또
박정원,《너하고 안 놀아》를 읽고,
인천남동구동화읽는어른모임 회보 <반딧불이>에서
한혜원, <내가 제일이다>를 읽고 -
<책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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