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 감상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1)

by 아름다운비행 2005. 7. 16.

* 평가교수 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1)
2005/04/17 오전 12:11 | 영화감상문

몇년전 TV 에서 이 DOCUMENTARIE를 보여 주었다.
아마도 셀즈닉 회사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하면서 함께 만든것 같다.
하나의 영화를 만들면서 이렇게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그들의 하나 하나의 작업이 너무나 감동스러워 간추려 본것


1936년 여름 데이빗 셀즈닉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제작에 참여 했을 때는
미국인중 절반이 이미 이 소설을 읽고 로맨틱한 매력에 도취되고 있었다.
이 무렵 미국은 대공항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헐리웃은 모든이에게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오직 그들만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935년 셀즈닉은 국제 영화사를 설립하였다.


이 소설의 주제는 생존이라는 문제
재난을 헤쳐 나가는데 처세에 능통한자와 못한자의 이야기를 써낸것
1900년 아틀란타의 풍요스러움과 남북 전쟁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마가렛 미첼여사가 10년만에 완성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을 영화로 만드는데 제일의 관건은 1000여 페이지에 달한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를 만드는가가 그 관건이었다.


1936년 소설은 이미 엄청 베스트 샐러가 되어 있었고
영화하기로 결정이 되면서 스칼렛 오하라역을 과연 누가 맡아 줄것인가가
세인의 관심거리이며 동시에 121명의 추천을 받기도 했었다


베티 데이비스(그 당시 남부이야기라는 영화가 꽤 바람을 타고 있었다)
이브의 모든것이라는 영화에서 안 박스터, 마리린 몬로(한 컷이 나왔다)와도 공연
캐서린 헾번
마가렛 설리번
죠안 크로포드
바브라 스탠윅


드디어 셀즈닉은 전국을 아니 세계를 향해 스칼렛을 찾으로 다녔다.


1936년 11월 남부로 첫출발을 기점으로
미인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고
헐리웃은 헐리웃대로 스칼렛에 대한 카메라 테스트가 끝이 없었다.
위의 열거한 여배우 외에도 스잔 헤이워드, 라나 타너등


내노라 하는 여배우는 무두 카메라 테스트에 임하게 된다
셀즈닉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영화에 대한 천재성이 입증이 되는 것이다.
그는 스칼렛을 찾는 일에 대중들에게 돈 한푼도 들이지 않고 영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것이다.
단지 스칼렛 오하라역을 공개 모집한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스칼렛역 뿐만 아니라 렛트 바틀러 역 역시 대중들의 관심과 견해는 끝이 없었다.
로널드 콜맨(마음의 행로 : 그리아 가슨과 공연), 게리쿠퍼, 크라크 게이블등
대중의 견해는 크라크 게이블이 맡아야 된다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요구에 이르렀다.
그는 MGM 영화사 소속이고 MGM은 최고의 배우를 빌려 주지 않겠다고 했다.


1938년 시나리오는 정리가 되었음에도
그때까지도 배우는 정해지지 않았다.
주연인 스칼렛역은 물론이고 렛트, 멜라니역 조차도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셀즈닉은 플레디 고다트, 베티 데이비스를 오랫동안 테스트기간을 갖고 있었다.
대중은 게이블이 렛트역을 맡길 원했고
다시 MGM 측과 협상에 들었다.
1938년 8월 MGM은 게이블을 빌려주고 제작비 25만불도 빌려주고 추후 7년동안의
이익의 반을 요구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영화는 추후의 세월을 따져보면 손익 계산이 달라지는
영화이다.


한편 게이블은 영화를 찍기 싫어 했다
겁이 났다
매매 당하는 기분 같다는 표현을 썼다.
하여튼 8월 24일 게이블은 계약에 서명을 했다.


1939년 1월
플레트 고다트, 캐더린 헾번의 카메라 테스트가 오랜동안 진행이 되었으나
셀즈닉으로서는 캐더린 헾번은 치명적인 결함인
관객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어 첫인상이 좋지 않다는 것
스칼렛의 개성인 성적 매력을 그녀가 과연 얼만큼 보여 줄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라나 타너 역시 끊임없는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플레트 고다트는 챨리 챠프린이 좋아 해서 모던 타임스에도 출연시켜
스타가된 배우이다.
샐즈닉, 죠지 큐커(처음에 맡은 감독 나중에 빅터 프레밍으로 교체)등과 친했고
헐리웃에서는 챠플린과 결혼하기를 바랬고 그렇지 않으면
영화와 인생속에서 스칼렛이 되기를 바랬다.


2 여년간 전국을 누비며 탐색했던 그의 스칼렛은 어디에 있는 걸까 ?
샐즈닉이 원하는 것은 외모도 엄청난 양의 돈이나 매력이 아닌 그 무엇이였습니다.

* * * * * * * * * * * *

그 DOCUMENT 를 본 쥔장의 입장을 피력하라면
플레트 고다트 헐리읏 스타중 제일 오랜동안 테스트를 받은 배우이지만
샐즈닉이 원하는 그 무엇이 부족.
스카알렛트의 교묘함, 기회의 민첩함등이 안어울렸고
아주 얇팍한 이미지의 그 역이 주는 이미지는 아닌것으로 보였다.

라나 타너는 키도 작았고 너무나 어렸다.

캐서린 헾번은 그 역을 맡기에는 미모가 딸렸다.

이 모든 사람의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장면을 보여 주었는데
비비안 리는 그 모든 사람들을 단숨에 압도해 버린 것이다.
하나 하나의 동작하며, 얼굴의 표정하나 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꼭은 마가렛 밋첼여사가 그녀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이나 한듯
꼭 맞춤이었다.

비비안의 등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플레트 고다트라는 배우가 그역을
맡았을 것이다. 샐즈닉이 챠프린과 친했고 감독인 죠지 큐커와도...
그들과 배를 타고 놀러가는 일상도 보여 주었다.
비비안의 등장은 그녀의 불행(?)이고 비비안은 올리비에가 미국으로
가는 상황에 행운을 거머쥔것 같다.
그 당시 비비안은 그와의 사랑이 우선이였기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를 찍으면서 올리비에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계획에도 없는 촬영을 더 찍으면 안되요 하며 애교섞인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런 면이 영화속의 스카알렛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인듯....

이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추천수 (0)  답글 (0)  참조글 (0) http://kr.blog.yahoo.com/ksmaeng20002000/12927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