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까페 "우리 황실 사랑회"의 글 중 일부만 옮겨 옴.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 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 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 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
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굳세어라 금순아’는 , 부산이 아닌 대구 교동시장 강산면옥 앞길을 걸으며 만들었다 (0) | 2012.06.30 |
---|---|
<조선왕실의궤·동의보감 '살균소독'한다> (0) | 2012.01.29 |
수원시, "만석공원"은 아는데 "만석거(萬石渠)"는 몰랐다? (0) | 2011.09.02 |
조선은 왜 근대화 실패했나 (0) | 2011.08.10 |
한·일 100년 대기획 시리즈 총목차 - 서울신문 (0) | 2011.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