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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모습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by 아름다운비행 2007. 4. 25.

 

 

 

- 월간 작은책 9월호에 수록되었습니다 -

 

  저는 지난 삼월에 마흔살 늦은 나이에 혼인을 하고 서울에서 스무 해 가까이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와 살고 있는 초보주부 겸 초보농사꾼(제 신랑 제가 농사꾼이라고 하면 옆에서 웃습니다)이랍니다. 결혼은 절대 안 한다고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맹세(??)를 해놓고 배신했지만, 제 어머니나 주위 친지들은 저의 이 큰 배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엄청 좋아하시지요. 삼월에 전주에서 전통혼례를 올리고 사월 초에 신랑이 농사를 짓는 장수로 내려왔답니다.

  평소 교육이나 육아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할라치면.... 애도 없는 것이 괜스레 끼어 든다 싶어 "애나 하나 낳아놓고 생각해 보자"고 뒤로 빠지기 일쑤였지요. 그러다 여기 장수에 내려 온지 한 달만에 저한테도 아홉살배기 아들이 생겼답니다. 어떻게 시집간지 한 달만에 아들이 생겼냐구요? 혹시 신랑이 숨겨둔 아들이 있었다던가, 신랑이 초혼이 아니고 재혼이라던가? 이렇게 상상하고 계시나요?

   일의 정황은 이러하지요. 신랑은 이 동네 이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각종회의나 동네행사에 앞장서야 하는 형편이지요. 저는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하고도 서먹하고 동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때였구요. 오월팔일이 어버이날이니 오월칠일 동네어른들을 모시고 관광을 가기로 했지요. 전날에는 돼지도 한 마리 잡고 김치도 담고 마을회관에 모여서 일을 하는데요. 신랑이 아침에 동네 올라가면서(저희 집은 동네 안에 새로 짓고 있고 지금은 동네에서 오백미터 정도 떨어진 동화댐 가에 살고 있답니다)저는 올 것 없다고 하더니만 점심때가 가까워지니 전화를 해서는 와서 함께 거들라고 하더군요. 설거지를 하고 고기를 삶고 하는 와중에 마당에선 동네어른들이 금방 잡은 고기를 구워 드시면서 술도 한잔씩 하시구요. 흥겨운 잔치집 마당이었죠. 동네에 열명 남짓한 아이들도 분위기에 취해 어른들이 집어주는 고기 한 점씩 얻어먹다가 제가 설거지를 끝내고 마당에 나갔을 때는 어른들은 회관에 들어오셔서 삶은 돼지내장과 고기를 썰어 점심을 드시고 계실때였구요. 저는 고기를 삶고 남은 숯불에 석쇠를 놓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려놓으면 아이들은 고기가 익기 무섭게 조그만 어린 새의 입에 넣는 것처럼 잘도 받아먹고 있었지요. 연신 고기를 집어먹다가 불 위에 올린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을 거예요. 고기가 빨랑 익으라고 대 여섯명의 아이들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지요. 참새들처럼 쫑알대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제게 묻는 거예요.
"음...... 근데 누구라고 불러야 돼요?"
"음...... 아줌마? 이모? 고모?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그랬더니 눈이 새까만 한 아이가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얼마나 엄마라고 부르고 싶으면 처음 본 사람한테 "엄마라고 불러도 돼"냐고 물을까 하는 생각에... 금방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깐 머뭇거리다가는 "그래... 엄마라고 불러"라고 용감하게 대답을 하긴 했는데 그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신랑한테 말을 했더니 신랑의 친구 아들인데 아주 어릴 때 엄마와 아빠 두분 다 하늘나라로 떠나가서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아이랍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할머니도 연세가 많으시고 자기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의지하니까 내가 잘 보살펴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마 하고 대답했지요.

  다음날 동네어른들과 남해안으로 버스 한 대를 대절해 놀러갔는데 이 아이는 저보고 "아줌마" 그러는 거예요. "임마.. 엄마한테 아줌마가 뭐야? 엄마라고 불러야지"해놓고 살갑게 해주려고 하는데 아이는 쉽게 내 손을 잡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전시장 비행기에 올라가서도 엄마랑 온 다른 아이들은 활짝 웃고 맘껏 떠드는데 이 아이 얼굴만은 웃음이 없이 어두웠습니다. 간신히 아이들을 일열로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얼굴을 숙이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안 찍으려고 하고, 과자를 사주고 손을 잡으려면 수줍은 듯 도망가곤 했지요. 그 뒤로도 몇 번 "아줌마"라고 부르면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잖아"하며 실랑이를 하기도 하구요.

  이제 시집온 지 넉달이 넘었네요. 아들이 생긴지는 세 달이 되었습니다. 신랑하고는 아이가 소풍 갈때 김밥 싸 가지고 따라도 가고,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대신 가기도 한다고... 말은 해 놓았지만 한번도 그러지는 못했네요. 그런데도 지금은 일하고 있을 때나 지나갈 때 "엄마아"하고 달려오기도 하고 "뭐해요?" "어디 갔다 와요?"묻기도 하고요. 엊그제는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아!"하고 부르며 오는 거예요. "애휴 한참 찾았네"하면서요. 할머니가 엄마, 아빠 갖다 드리라고 음료수를 주셨대요. "내일 집에 놀러와. 엄마랑 핫케익 만들어먹자"라고 해 놨는데 안 와서 어제 할머니랑 얘기하다보니 아이가 멀지도 않은 길을 간다고 나갔다가는 덥다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네요.(사실은 쑥스러워서 일거예요)

  수요일은 십 년 넘게 고용보험에 보험료를 낸 덕으로 이 주일에 한번 실업급여를 받으러 남원에 가야 합니다. 신랑은 그 날 회의가 있어 데려다 주지 못하겠답니다. 뭐 방학도 했겠다. 우리모자 손 잡고 남원시내를 한번 휩쓸고 다녀 볼라구요. 서점에도 가고 남원에서 제일 번화한 중앙로도 걸어보구요. 번암에는 없는 피자집에도 들러볼까요? 광한루까지 들러보려면 다리가 너무 아프겠죠? 
  빨랑 아들에게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낼 모레 엄마랑 남원가자.... 아침에 엄마가 데릴러 갈게" 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우리 모자의 첫 외출 무진장 기다려집니다.

  금방 전화했더니 우리 아들 안된답니다. 사람 많아서 걸려 넘어진답니다. 그 날은 놀아야 해서 바쁘답니다. 맛난거 사준댔더니 집에 맛있는거 많답니다. 그런데 가고 싶은데도 딴소리 하는것도 같습니다. 초보 엄마 울고싶지만 어떻게든 울아들과 함께 남원을 정복(?) 할껍니다. 그리고 울아들하고도 좀더 친해지고 엄마노릇도 잘 할 수 있도록 여러분도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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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아름다워 댓글까지 옮겨왔습니다.

 

 

 * 출처 : 노을이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sarammaeul/3230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