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韓中 역사전쟁 제3탄!] 북한 고구려 유적 세계유산 등재 어떻게 될까
막판 ‘정치적 변수’ 경계해야
위원회 결정 번복된 경우 많아
집단의사표시 등 감정적 대응 자제해야 그 동안 북한이 제출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중국이 추진하는 변강사 연구, 즉 ‘동북공정’과 연계돼 언론과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의 집중적인 이목을 끌어왔다. 비록 북한이 신청한 것이지만 이 사안은 한민족 역사 정통성과 직결될 뿐 아니라 찬란한 문화의 꽃을 만개했던 고구려의 역사를 세계 속에 재확인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16∼18일 프랑스 파리의 국제기념물유적위원회(ICOMOS) 본부에서는 세계유산 검토회의가 열렸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회의에서는 중국 정부가 신청한 고구려 관련 유산과 함께 북한 고구려 고분군을 차기 세계유산위원회 정기회의 때 세계유산으로 등재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1차 고비를 넘기게 됐다. 그러나 이 결정은 어디까지나 학술적 기준에 의한 ICOMOS의 ‘권고’일 뿐 최종 결정은 아니다. 세계유산으로의 자격은 오는 6월28일부터 7월7일까지 중국 소주(蘇州)에서 개최되는 제28차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국제적 기준과 절차에 의해 추진된다. 중국과 북한 모두 자국 영토 내에 있는 유산을 세계유산협약(1972년)과 시행 지침에 의거해 등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국제적 관행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등재 신청 반려 또는 기각당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유산의 학술적, 역사적 가치만 따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의 탁월한 가치를 지니는 유산이 해당 정부 및 민간, 지역사회 등에서 항구적으로 잘 보존 관리할 수 있는 체제와 능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더 집중적으로 검토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고구려 역사가 어느 민족, 어느 국가에 귀속돼 있느냐 하는 ‘역사주권’에 대한 논의는 세계유산 등재와 그리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사후적으로 이 유산을 등재시킨 국가가 역사주권을 지니고 있다는 왜곡된 시각과 인상을 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따라서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는 북한만의 문제라기보다 한민족 공동의 과제요,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유네스코 지원 속 유산 등재 준비 세계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 관리해 후손에게 계승해야 할 탁월한 가치를 지닌 문화 및 자연유산을 의미하는데, 매년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원회 정기회의에서 그 자격이 결정된다. 이를 위해 세계유산위원회는 전문적인 검토와 자문을 외부 기관에 의뢰한다. 문화유산의 경우 ICOMOS가, 자연유산은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이 역할을 위임받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주권국가가 자국 영토에 있는 후보지를 선정하고 이의 탁월한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아울러 이를 완벽하게 보존 관리할 수 있는 법적·행정적 체제, 기술적 타당성 등도 충분히 입증해야 한다. img2R신청서 작성에서 최종 결정까지는 보통 2∼3년이 소요된다. 신청서 작성에는 여러 부분에 걸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부 후진 국가들은 유네스코 본부내 세계유산센터(World Heritage Center)나 국제 문화재 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계유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북한이 세계유산을 한 점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기술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적극 지원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2001년 10월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예비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해 1차 검토를 받았다. 이후 보완 작업을 거쳐 2002년 1월17일 정식으로 ‘북한 고구려 고분군’(Complex of the Koguryo Tombs in DPRK) 신청서를 제출했다. 유네스코는 북한이 제출한 신청서 평가를 위해 ICOMOS로 하여금 전문가 1인을 파견하도록 했다. 이에 ICOMOS는 2002년 8월 중국 칭화대(淸華大) 교수인 여주(呂舟)를 북한에 파견했다. 한편 중국은 그들 나름대로 고구려 관련 유적 신청서를 급히 작성해 이를 ‘고구려 왕성 및 왕·귀족 고분군’이라는 제목으로 2003년 1월2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북한의 신청서가 반려된 진짜 이유 2002년 1월 북한이 세계유산 등재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은 2003년 6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제2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집중적인 논의 끝에 “몇 가지 남아 있는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한 후” 중국 소주에서 개최되는 차기(제28차) 회의에서 재심의하기로 결정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이 같은 결정은 등재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던 낙관적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것이었다. ICOMOS가 중국 학자의 보고서와 내부 회의를 토대로 고구려 고분군의 등재를 연기해야 한다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ICOMOS의 지적 내용 중 일부는 학술적 측면에서 볼 때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북한이 고구려 고분군의 등재를 위해 준비한 내용을 감안하면 그 같은 결정의 이면에는 또 다른 정치적 배경(중국)이 있지 않나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다. 당시 ICOMOS가 지적한 내용은 ▷ICOMOS 조사관의 북한 현지조사 때 해당하는 모든 고구려 고분을 다 볼 수 없었다는 ‘접근성 결여’ ▷동명왕릉·덕흥리고분 등 일부 고분 복원 작업 때 내외부에 걸쳐 기존의 모습을 상당히 변형시켰다는 ‘진정성과 원형성의 문제’ ▷유산 관리자들의 기술 수준 및 정책의 부실 그리고 보전 장비의 미비 등 세 가지였다. ICOMOS는 이러한 지적과 함께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관련 유산과 조화를 위해 제2차 현지평가를 실시해야 하고 ▷중국·북한 양국이 고구려 관련 유산을 공동으로 신청하고 이를 위한 연구 실시를 권고했던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 학자들도 북한의 일부 고분들이 복원 때 상부를 콘크리트 구조물로 채우는 등 원형이 변경되었다는 점, 홍수 때 천장까지 물이 침투되는 등 벽화 손상과 구조물이 매우 취약해졌으리라는 점 등을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북한 신청서에 대한 ICOMOS의 권고 내용은 세계유산 심의에 적용하는 일반적 관행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북한의 신청과 중국의 신청이 시기적으로 부합한다는 점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등록된 세계유산 중 2개국 이상이 공동으로 신청한 예는 14건에 불과하다. 이 중 문화유산은 4건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문화유산 공동 신청은 기술적으로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해당국이 개별적으로 등재를 희망할 경우,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도 ICOMOS의 공동 신청 권고는 일반적 관행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같은 ICOMOS의 권고에 대해 한국 대표단은 일부 국가 대표와 함께 이의를 제기하며 북한측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발언을 통해 중국과의 공동 등재를 원하지 않으며 북한 혼자 고구려 고분군을 단독 신청할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회의에서는 북한에 추가로 전문가를 파견하지 않고, 공동 등재도 하지 않기로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지적된 몇 가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한 후 북한의 신청 건을 차기 회의에 재상정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 고구려 고분군은 오는 3∼4월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ICOMOS 간의 내부조정회의를 거쳐 제28차 WHC 정기회의에 정식으로 상정될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여러 상황을 검토해볼 때 북한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은 한결 밝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WHC 정기회의에서는 여러 정치적 이유로 결정이 번복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기에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WHC 이사국이 아닌 ‘옵서버국’이기 때문에 북한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명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결코 마음을 놓을 상태는 아니다. 유산 등재 위한 對北 지원 바람직 img3L그렇다면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신청서를 제출한 북한의 적극적 태도, 완벽한 보존 관리 정책 수립과 이행 등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은 신청서를 제출한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등재와 관련한 1차적 책임은 북한 당국이 질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유네스코를 통한 북한유산 보호를 위한 기술, 장비 및 재정 지원, 학술 교류 등을 활성화함으로써 고구려 고분군의 등재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좀 더 치밀하고 장기적인 지원 협력 체제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더욱 성숙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번 ICOMOS 세계유산 검토회의를 앞두고 국내 일부 네티즌들이 ICOMOS 집행위원들에게 중국을 성토하고, 고구려 역사가 한국의 역사이며 북한 고분군이 등재돼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메일을 집단적으로 보낸 일이 있다. 그 충정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자세는 일종의 ‘정치적 압력’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당연히 북한 유적 등재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회의에 참가한 일부 위원들은 이 같은 ‘한국 시민들의 집단적 호소’를 ‘학술적으로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이 원칙인 ICOMOS 회의를 방해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우리의 관심과 우려를 국제사회에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과 과정은 합리적이어야 하며 국제적 관행에도 따라야 한다고 본다. 유네스코는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등재가 최종 결정되기까지 해당 국가와 관련 회원국들은 어떠한 정치적 행위나 행사, 발언을 자제해 줄 것을 비공식적으로 요청해 오고 있다.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결말나기까지 우리는 냉정함과 치밀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학술 연구의 수준을 높여가는 성숙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 유네스코의 北 유산등재 지원 내용 ▶1999년 10월: 기메박물관 직원 피에르 캄봉, 호주 환경자문관 워렌 니콜스를 파견해 평양과 남포에서 세계유산협약 이행을 위한 국가 및 지방 실무자 훈련 실시. ▶1999년 12월: 세계유산위원회, 예비목록 작성 및 고구려 고분군 지명을 위한 북한측 준비 지원안 승인. ▶2000년 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고구려 고분이 포함된 한국유산 CD롬(불어) 제작. ▶2000년 4~5월: 북한 외무성 및 문화부 관계자 2명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 현지 여행 지원(스톤헨지, 영국 문화유산위원회, 카르낙, 프랑스 문화홍보성 등 방문). ▶2000년 8월: 제1차 유네스코 현지조사 실시(세계유산센터 양민자 부소장, 국제문화재보존로마센터 및 프랑스 전문가 참여). 예비목록, 고구려 고분 보존 계획 등 검토. ▶2001년 2월: 세계유산 신청 예비신청서 접수. 영국 문화유산위원회 및 기메박물관의 보충의견 접수. ▶2001년 3월: 세계유산센터, 북한 문화유산 관련 법규에 대한 영문 번역작업 승인. ▶2001년 7월: 제2차 유네스코 전문가 현지 방문 (영국 수콜 박사, 세계유산센터 아리안 페렝 자문관). 최종 신청서 및 관리 계획안 작성, 관리 계획의 적절성 검토 및 우선과제 파악. ▶2001년 10월: 2차 세계유산 신청 예비신청서 접수. 이에 대한 국제 전문가 의견을 북한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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