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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2

[인물 31] 장발 - 일제의 '조선미전' 맞서 목일회등 새 전기 마련 “장발 선생은 근대 미술교육의 골격을 다졌고 기독교 미술의 질과 양에서 현격한 발전을 보이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셨지요. 그런 점에서 그가 미술계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미술평론가인 이경모 인천대 겸임교수는 장발 화백에 대해 “장발 선생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가.. 2005. 11. 26.
[인천인물 100인] 32. 서양화가 장발 - 근현대 미술 '격동의 중심' 지난 2001년 4월8일 인천 출신의 장발(張勃) 화백이 미국 피츠버그 자택에서 100세의 나이로 타계한 직후 미술계와 학계에서는 그에 대한 연구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금도 학자와 비평가 사이에서는 연구자의 처지와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장발 화백이 민족사적 수난시대를 겪어오면서도 한국 화단과 미술교육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과 미술협회 분할과 '국전(國展)'파동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미술계의 건전한 발전에 제약을 가하는데 일조했다는 대조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근·현대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장발 화백에 대한 평가는 작가로서, 미술교육·행정가로서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발은 우현 고유섭보다도 5년이나 앞서 한국의 화가 중 최초로 미국에 유학해 콜롬비아대학.. 2005.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