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3 - 인천 인물88 [인천인물 100인] 8. 항도체육 영원한 후원자 정용복 1954년 10월 중순께. 인천시 중구 도원동 공설운동장(종합운동장 전신)에는 '망치'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젊은 체육인들과 인부들은 시커멓게 그을린 드럼통 밑과 윗부분을 쇠톱으로 도려내고 중간부분을 잘라 드럼통을 펴기 시작했다. '쫙' 펴진 드럼통은 허허벌판 논 한 가운데 위치해 있던 공.. 2005. 8. 16. [인천인물 100인] 7. 근·현대정치사 중심 삼연 곽상훈 '나는 어둡고 쓰라린 역사의 소용돌이에 던져져 평생을 폭풍 속에 살아왔다'. 삼연(三然) 곽상훈(郭尙勳·1896~1980)은 말년에 쓴 '삼연회고록'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구한말 부산에서 태어나 동래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경성공업학교를 다니면서 인천으로 이주했다. 청춘을 일제강점.. 2005. 8. 16. [인천인물 100인] 6. '황어장터 3·1만세' 주역 심혁성 해방 59주년을 맞은 지난 8월15일 인천시 계양구 장기동에선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친일파 청산'을둘러싼 정치권의 뜨거운 공방 속에서 열린 '황어 장터 3·1만세 운동 기념관' 준공식이 바로 그 것. 애국 지사 심혁성(沈爀誠·1888~1958)은 이 3·1 만세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1919년 3월24일 오후 2시. .. 2005. 8. 16. [인천인물 100인] 5. 개항기 대부호 서상집 '민족자본을 결집한 상업적 선각자에서 친일까지'. 개항기 인천의 대표적인 부호였던 서상집(徐相集·1853~?)의 삶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도덕사관'에 입각해 그의 삶을 조명할 때 그의 친일행적은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도덕성'을 배제할 경우, 역사 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삶은 개.. 2005. 8. 16. 이전 1 ··· 18 19 20 21 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