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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by 아름다운비행 2006. 1. 26.

나 어렸을 때,

한밤중에 변소를 가고 싶으면

꼭 엄마를 깨웠다.

 

무서우니까.

 

누이들한테 들은 말,

손이 쑥 올라와선

빨간종이 줄까

파란종이 줄까

물어본다는 말이

깜깜할 때는 왜 그리

머리 속을 가득 채웠는지.

 

***

 

지난 12월 초,

서울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던 날,

지하수를 썼었는데,

수도가 얼어버렸다.

보일러도 얼어버렸다.

 

마침 형수님이 인천 애들집에 가신

영규형님네서 일주일,

그 담주엔

또 형수님이 수술 후 인천에 계시는

덕휘형님네서 일주일,

저녁 때 가서 자고 아침 얻어먹고.

 

그 담주부턴 일단 보일러는 녹인 터라

숙직실로 복귀하곤

물은 마을회관에서 한 양동이씩 길어다 쓴다.

화장실도 마을회관을 쓴다.

설겆이 할 것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집으로 퇴근들 하신 후에

마을회관에 가서 한다.

마을회관엔 따듯한 물이 나오니까.

ㅎㅎ~~

 

 

   < 내가 먹고 자는 숙직실. 웃풍이 세서 어깨는 시려도 다행히 방바닥은 뜨끈뜨끈.. >

 

 

물을 길을 땐

아침 일찍, 아니면 저녁 때 어두워진 후에

길어온다.

기왕이면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남들이 보고

물어보면

물이 안나와 길어다 쓴다고 답하는 나는

더 처량해 질 것 같아서.

 

 

김포대학 앞에 숙소도 있지만,

거기서 다녀도

어차피 아침 6:30분엔 나와야 하고

차비들고..

 

더 싫은 것은,

칼바람 부는

추운 아침

배터에서 기다리는 것이

정말이지 싫어서.

 

귓가엔

마치 고장난 LP판 전축마냥

'지하철을 타고'에 나오는

"언제쯤 지겨운 방황 끝나나.."

그 말만 자꾸

들리는 것 같아서.

 

왜 나는 집에서 다니지 못하고

이 추운 겨울날

여기 서 있어야 하나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

 

지금도

축구본다고 불 쓰고 있다가

깜빡 잠들었는데

경기는 이미 끝나고

김포 숙소 동기들이 전화를 했다.

시무식 해야 할 것 아니냐고.

 

안그래도

잠들기 전부터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고 있다가

할 수 없이 다녀왔네.

 

주섬주섬 옷 다시 껴입고.

아래 위 내복까지 입고 지내는 요즘이니

입을 옷가지 수도 많다.

 

 

   < 석모2리 마을회관의 야경 >

 

 

 

깜깜한 밤,

추운 데 나갔다 오니

잠은 다 달아나고

 

오늘도 또 밤 새는 거 아닌가 몰라.

 

아까 읍내 나갔다 들어오며 들은

어느 형님의 말,

 

아직도 쌀 300여 가마를 찧지도 못하고

쌓아놓고 있다는 말이

귓가에 맴도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