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에 일제때 만든 105m 지하벙커
우리 주변에는 숨겨진 사연이 깃든 건축물이 적잖다. 때로는 그 배경이 재미있어 술자리 안줏거리가 되기도 한다. 서울의 이런저런 건축물에 얽힌 사연을 시리즈로 알아본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역사 탓인지 서울에는 숨은, 그러나 이제는 용도폐기된 지하 군사시설이 꽤 있다. 수십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
종로구 경희궁 터엔 일제가 만든 지하벙커가 있다. 위치는 경희궁 동편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인근의 둔덕 아래. 철제 울타리에 막혀 일반인 접근은 불가능하다. 궁궐 관리를 맡은 종로구청 직원들도 존재를 모르는 이가 있다. 벙커 입구는 두께 20㎝의 육중한 철문. 입구 양측의 방은 관리원 휴식처 및 비품 보관소여서, 겉모습은 평온하다.
이 곳에서 30년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벙커 내부는 깜깜하고 으스스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계단을 따라 반 층 가량 내려가니 좁고 긴 통로에 부서진 벽의 잔해와 유리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한참을 들어가니 무너진 채 막혔다. 반대편 통로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다.
종로구청 윤인창 주임은 “일제 말기(1943~1944)에 일본군이 미군 폭격에 대비해 군 사령부로 쓰려고 만든 것”이라며 “서울시가 1980년대 중반 경희궁 복원 때 발견했다”고 말했다. 벙커는 넓이 280평, 평균 폭 7m, 길이는 105m쯤 된다. 콘크리트 외벽은 두께가 3m나 된다고 한다. 왕과 왕비의 침전(寢殿)이던 융복전(隆福殿)과 회상전(會祥殿)이 있던 자리로, 왕기(王氣)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서울시가 추산한 철거 비용은 30억원. 당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칫거리다. 이갑헌 서울시 문화재관리팀장은 “문화재청과 협의해 철거해야할지, 아니면 뭔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매표소 자리 뒤편으로도 숨겨진 긴 지하통로가 있다. 시 관계자는 “현재의 경복궁, 그러니까 옛 중앙청까지 연결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초구 반포동 서울팔래스호텔 왼쪽 언덕에는 1980년대 초까지도 군사용 포대(砲隊)를 설치할 수 있는 토치카가 있었다. 견고한 콘크리트로 구조물을 만든 뒤, 한강과 반포대교 쪽을 향해 발포(發砲)용 창도 냈다. 서초구는 여기에 2002년 말(馬) 조형물과 분수대를 갖춘 2200평짜리 공원을 만들었다.
(최홍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rchoi.chosun.com])
(최형석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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