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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종이 을사조약체결 지시” 이등박문 보고서 조작됐다

by 아름다운비행 2005. 11. 14.

2005년 11월 14일 (월) 17:56   쿠키뉴스

 

 

[단독] “고종이 을사조약체결 지시” 이등박문 보고서 조작됐다

[쿠키문화] ○…1905년 을사조약 때 고종이 반대했던 사실을 왜곡한 뒤 마치 고종이 협상 타결을 명령한 것처럼 고쳐놓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당시 일본 특파대사의 출장보고서가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본보가 14일 일본 조센대 강성은 교수로부터 단독입수한 ‘이토 히로부미 복명서 초안’의 제 24행에는 ‘한국황제는 대체로 이번의 제안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고’란 문구의 ‘하는 것이 아니고’ 위에 줄이 그어져 있고 바로 옆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으로 고쳐져 있다. 애초에는 고종이 일본 측의 을사조약 제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기록했다가 나중에 반대한 사실을 흐리는 방식으로 문장을 고쳐쓴 것이라고 강 교수는 밝혔다.

문서는 이어 ‘(한국황제가)이에 동의하는 편이 오히려 한국 장래의 국시에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바와 같이…당국에 명령해 일본정부의 제안에 기초해 타협을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추가 기입해 고종이 협상을 마치 지시한 것처럼 했다고 강 교수는 덧붙였다.

강 교수는 “복명서 초안 원본의 경우 문제의 부분에 붉은 색 줄이 그어져 있었다”며 “가필한 흔적이 뚜렷이 드러난만큼 고종의 지시로 을사조약 협상이 이뤄졌다는 일부 일본 학자들의 주장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명서는 을사조약 체결 강요를 위해 우리나라에 건너온 이토가 1905년 11월 18일 을사조약을 맺은 뒤 일본에 돌아가 일왕에게 올린 출장보고서로 같은해(메이지 38년) 12월8일 작성된 것으로 돼있다. 실제 일왕에게 제출된 최종본은 1958년에 간행된 ‘일본외교문서’에 수록돼 있으나 초안은 미발견 상태였다.

강 교수는 2002년 말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 소장된 ‘쓰즈키 게이로쿠 관계문서’에서 복명서 초안을 찾아냈으며 이 초안이 당시 일본 추밀원 서기관장으로 이토의 방한을 수행했던 쓰즈키가 작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는 “강 교수가 찾아낸 초안은 조약이 고종의 동의없이 강제로 체결됐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문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일본 사학계에서는 이토 복명서 최종본과 ‘오대신상소문’(을사오적이 조약 체결 뒤 고종에게 바친 상소문) 등에 근거한 ‘을사조약 합법론’이 우세했다”며 “그러나 조작된 초안이 발견됨으로써 한국황제가 협상을 지시했다는 일본의 다른 공식 기록들도 짜맞춘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적요는 요약한 문서이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부속서 1호에서 8호까지의 초안도 발굴해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을사조약은

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다. 강제로 매저졌다는 의미로 을사늑약, 혹은 제2차 한일협약,을사5조약이라고도 한다. 5개 조항으로 돼 있는데 '한국이 외국에 대하는 관계 및 사무를 일본이 감리·지휘한다'(1조) '일본 정부의 중재없이 한국이 다른 나라와 어떠한 조약도 체결하지 않는다'(2조) '일본은 한국 황제의 궐내에 1명의 통감을 둬 외교에 관한 사항을 전적으로 관리한다'(3조) 등이 주 내용이다. 조약 체결에 따라 외국에 있던 한국 외교기관은 모두 폐지됐고,영국과 미국,청나라,독일,벨기에 등은 공사관을 철수시켰다.

일본 정부는 을사조약에 대해 당시에는 유효했지만 1951년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승인한 결과 지금은 무효가 됐다는 주장을 펴 합법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조약 자체가 강압에 의한 불법이므로 정당한 효력의 발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고종이 서구 여러 나라에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작성한 친서와 을사조약 무효를 선언한 문서,이토 히로부미 등이 헌병의 경호를 받으며 한국 정부인사와 협상장에 들어섰다는 내용이 담긴 당시 주한 미국공사의 보고서 등이 발견돼 강제 체결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송세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