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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식민지의 상징이던 인천신사의 모습./인천학연구원
사진제공
광복 60년이 지난 인천은
여전히 일제의 잔재 문제로 시끄럽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의 이름이 된 '송도(松島)'의 지명문제가 지역사회의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인천항 개항(1883) 이후 '외교 자유지역'이었던 자유공원(만국공원)은 맥아더동상을 둘러싼 보·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천개항은 인천이 우리나라의 관문이자 허파였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일제 치하에서의 인천은 수탈의 전진기지일 수밖에 없었다.
1945년 8월15일 맞은 해방은 인천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남다른 데가 있다.
인천항 개항 이후 일본은 인천을 아주 특별하게 여겼다.
인천은 조선 땅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열강들도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로 진입하려 했다.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까지 3년 동안의 해방기 인천에선 일제 식민지배의 청산, 좌·우 대립 격화 등으로 매우 숨가쁘게 돌아갔다. 가장 강력한
식민도시였던 근대 인천이 현대 인천으로 전환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2005년 8월 인천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모습만 변했지 인천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흐름은 매우 긴박하다.
해방기 격동의 현장이었던 인천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 월미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제물포 해전(1904)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배꼽에 위치한 인천의
일본 식민지화는 더 일찍 시작됐다. 인천의 입장에서 볼 때 일제 강점기간은 36년이 아니라 62년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개항과 함께
일제는 인천을 철저히 식민지화했던 것이다.
1903년 일본인들이 인천개항 20주년을 기념해 당시 인천에 있던 출판사
'조선신보사'에서 간행한 인천지역 종합지 '인천번창기(仁川繁昌記)'는 이 같은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직 우리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인천번창기'의 표지그림은 일본인들이 일본과 인천과의 관계를 미국과 하와이와의 그것처럼 여기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X자형으로 포개 '공존번영'을 상징화하고 있으며, 인천항 일대의 번화한 모습도 생생하다. '인천의 번창이 곧 일본의 번창'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최근 이 책을 일본에서 구입한 김창수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한 지방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서술자들이 해당 지방의
주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은 러일전쟁(1904)과 을사늑약(1905) 이전에 이미 인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지배적 위치를
확보한 지배자의 위치에서 '인천번창기'란 이름의 인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일본 패망직후 인천거주 일본인들의 본국철수를 주도했던 인천 일본인상조회의 회장을 맡았던 고타니 마스지로의 회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인천에서의 일본인 철수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 '인천인양지'란 책에서 인천 개항 8년이 지난 뒤 일본의 대표적 신사에서 신체(神體)를 가져 와
인천거주 일본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끔찍이 여겼던 신사를 우리는 너그럽게 대했다. 해방 뒤 인천시 관료들은
인천신사의 상여를 인천시민들의 상여로 삼도록 할 정도로 일제에 대해 관대했던 것이다.
올 해로 창간 45주년을 맞는 경인일보는
광복60주년과 창간을 기념해 개항 이후 인천의 모습과 해방기 인천의 역동적인 순간순간을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생동감있게 되살린다는 구상이다.
이번 기획특집에는 이갑영 인천대 교수, 이현주 국가보훈처 연구관, 김창수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등 3명의 전문가가 함께
한다.
정진오·schild@kyeongin.com / 2005. 8. 15
* 경인일보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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