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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에조(英臟) 보고서 1 / 김진명

by 아름다운비행 2005. 8. 13.

1.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8월 15일에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12일날 이런 말을 했다는데..

 

취임 전엔 "(총리가 되면) 8월15일 어떤 비판이 있더라도 반드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고 공약했었고, 그러다가 한국, 중국 등의 반발에 밀려선

2001년엔 8월13일, 2002년엔 4월21일,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1월에 참배했다고 하는데.

 

자기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게 일본의 우익을 단합시켜 자기 세력을 키우기 좋다고 판단하여 강행하다가 야당 등의 공세에 勢不利 해 보이니까 이젠 안하겠다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역시 정치인들은 믿을 수 없어.

하긴 플라톤이 살던 시대에도 정치인은 믿지말라고 했다지?

 

 

도쿄의 스기나미구는 결국 후쇼사판 새역모 교과서를 3:2로 의결 후 채택.

자손들에게 조상이 잘못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자부심과 자신감을 잃게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역사를 왜곡해서라도 잘했다고 가르쳐야겠다는

무서운 사람들, 일본의 우익세력.

 

 

2.

"(세졔 제2차대전)終戰日" - 8월 15일.

 

우리에겐 광복절,

일본은 종전일,

미국, 유럽을 위시한 서방진영에겐 전승일. 그러나 그들은 '종전일'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또한, 서방진영은 유럽에서의 '승리'에만 촛점을 맞출 뿐,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백인우월주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아시아,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잊혀진 전쟁일지도..

 

또한, 연합군의 주력이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시이부대(관동군 731부대)의

생체실험 자료를 건네받는 조건으로 동경전범재판시

관대한 처리를 해주었고 하였으니

전승국의 자랑스런(?) 모습에 먹칠할 우려가 있는 것은 숨기고 싶었겠지.

 

 

'종전' 60주년, 그 의미가 중요하다고들 하는 분위긴데..

그래서 고이즈미도 한사코 '8월 15일' 을 노려왔던 건데..

 

요즘의 한일관계나, 6자회담과 대북 관련 한미일 관계나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삐꺼덕 거리는 소리뿐.

시원치는 안더라도 그래도 맞아 돌아간다는 모양새만 보여도 좀 낫겠구만

뭐 하나 탐탁한게 없네.

 

하긴 우리나라 정부 내에서조차도 서로 다른 말을 하는 판이니 뭐.

 

 

3.

생각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모 명성황후를 잔혹하고도 치졸하게 죽인 역사적 사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도 힘이 없으면

남이 깔본다.

우리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지 않은가.

 

 

요즘 한참 인기가 좋은 '불멸의 이순신'

답답하게 돌아가는 현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틀림없이 하나같이 '저 혼자'만 잘살겠다는 한심한 모습들.

 

 

그래서 민중은 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가가 잘못할 때, 아니 그 어느 권력자라도,

잘못하면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아닌가?

 

 

내 생명이 탁하니까 내 주위도 탁한 것.

"사람이 탁하니까 사회가 탁해지고 그래서 혼란이 온다"

 

언제나 시작은 한 點에서 시작되는 법.

나부터라도 깨끗하게, 주위에 맑은 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리고 불의에 대해서는 바로 지적해 주고 바꿔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야.

 

 

4. 세계역사에 그 유래가 없는 잔혹함, 국모 屍姦 - 명성황후를 다시 떠올리며

 

'황태자비 납치사건' 소설 발간을 즈음해 운영되던

작가 김진명의 홈피에서 받아놓았던 글입니다.

 

"에조 보고서"는 실존하는 문서이고, 그 비밀을 추적하던 작가의 추리로 위 소설이 나왔지요.

 

김진명은 다른 많은 대작가들처럼, 엄청남 자료조사 등을 거쳐 소설을 쓰고,

어찌 보면 국수주의자로 보일 정도로 우리나라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글을 조리있게 쓸줄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제출하는 이벤트에 응모하였다가 당첨되어서

작가의 싸인이 들어간 '코리아 닷 컴'이라는 책을 받고 무척 기분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래 글은 그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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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쓰게 된 배경이 있는가?

 

우리 한국인의 비겁함에 참회하고 싶었다.

또 차제에 일본의 역사왜곡을 끝내지 못하면 앞으로 독도침공이나 더 심한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이런 일본의 만행을 말릴 수 있는 사람들도 역시 일본인이다. 나는 선량한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어떤 논리로도 호도할 수 없는, 그냥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고개를 들지못할 충격적 소재를 발굴하려 애쓰던중 일본의 양심적 다큐작가 쓰노다 후사코 여사가 쓴 <민비암살>이라는 책의 행간에서 민비시간의 예감을 떠올렸다.

 

쓰노다 여사는 (민비시해 당시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할 수 없는 행위)를 했다는 보고가 있다고 쓴 후 그 보고서의 머리만을 소개하고 있었다. 비록 시간에 관한 아무런 언질은 없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추적했다. 참고로 이 책은 얼마전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한국교원대학교 김은숙 교수가 번역하여 <조선일보 출판국>에서 <최후의 새벽>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민비암살에 관한한 최고의 보고서이다. 일독을 권한다.

 


5. 에조의 비밀 보고서는 정말 존재하는가?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
물론 이 보고서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내가 처음 이 보고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쓰노다 후사코 여사가 쓴 『민비 암살』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거기에서 여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바야가와도 썼듯이 40대로는 보이지 않는 민비의 젊음은 유해 확인 과정에서 매우 문제가

  되었던 듯하다. 후에 사건을 담당한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의 구사노(草野) 검사장은 사법대신

  요시가와 아키마사(芳川顯正) 앞으로 보낸 11월 9일자 전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젊었으나 다시 젖가슴을 살펴보니 나이가 든 사람이었다.'

  살아서는 외국 사신에게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던 민비가 죽어서는 이국의 사내들에게 이와 같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더욱이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인 나로서는 차마 묘사하기 괴로운

  행위를 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전 법제국 참사관이며 당시 조선정부의 내부고문관이었던 이시즈카

  에조는 법제국 장관 스에마쓰 가네즈미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서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

  나……'라고 서두에 쓴 후에 그 행위를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쓰노다 여사는 이렇게 행간에 슬쩍 흘리고 지나갔지만 그후로부터 나의 관심은 이 보고서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미 젖가슴을 유린한 일본의 낭인들이 자행한 그 다음의 행위는 무엇인가?
쓰노다 여사가 차마 담아내지 못한 보고서의 내용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당시의 일을 보고한 모든 문서와 자료, 논문, 서적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도쿄는 물론 규슈 등의 지방 도서관도 뒤졌지만 그 보고서의 원문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가장 가능성이 큰 문서는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사부에 있는 <조선내란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조선공사관의 전문들이었다. 교활한 일본인들은 당시의 사건을 조선인끼리 일으킨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제목조차 <조선내란사건>으로 붙인 것이었다.
명성황후 시해에 관한 모든 보고서를 망라한 것이었지만 여기에서도 나는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쓰노다 후사코 여사가 뭔가를 잘못 본 것일까?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일본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 보고서를 찾아내려던 노력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쓰노다 후사코 여사와 연락을 취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현재 88세인 쓰노다 여사는 분명히 에조의 보고서를 보았다면서 『민비 암살』이라는 책을 번역한 교원대학교의 김은숙 교수를 통해 여섯 종류의 자료를 추천해 주었다.


그러나 이 자료들에도 이시즈카 에조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자료들에서 가담자 모두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나를 도와 도쿄의 국회도서관과 외무성사료관, 방위청, 여러 대학의 도서관, 심지어는 규슈 대학까지도 뒤졌던 권용석 선생(선생은 성장기를 거의 일본에서 보낸 최고의 일본어 실력자로 현재는 히토츠바시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역시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자료로 방위청의 <조선내란사건>을 꼽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 그 보고서를 직접 보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고 했다. 일련번호가 없는 전문 중 하나를 빼버리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므로 이런 치명적 문서는 빼버렸을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는 것이었다.


나는 김은숙 교수를 통해 그 문서의 내용이 시간(屍姦)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김은숙 교수는 쓰노다 여사, 신조사(新潮社)의 가토 기와코 부국장과 함께 그 "차마 쓸 수 없는 행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고 그 내용은 분명 시간(屍姦)이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쓰노다 여사가 어디서 그 보고서를 보았는지 기억을 되살려주기를 바랐지만 노령에 몸조차 불편한 여사를 혹독하게 몰아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일본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야마베 겐타로(山邊建太郞)가 쓴 『일한병합소사』에서 다시 관련되는 대목을 발견했다.


  "낭인들은 민비를 시해한 후 능욕하고 불태웠다."


나는 '능욕'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
나는 권용석 선생에게 일본인들은 능욕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 물었고, 권용석 선생은 일본에서의 능욕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쓰인다고 했다.


야마베 교수는 어떤 자료에 근거하여 능욕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권용석 선생은 필사적으로 야마베의 다른 논문과 저서를 조사했다. 그는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다음과 같은 글을 찾아냈다.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에 의하면……."
야마베 교수 역시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인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실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모두는 그 보고서를 두 눈 부릅뜨고 한 자 한 자 생생히 읽어내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일본의 깡패들이 경복궁에 난입해 우리 나라의 왕비를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세계사에 존재한 적이 없는 그런 짐승보다 못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반성은 커녕 한국을 도와주었느니, 이제 와서 은혜도 모른다느니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난 106년 간 이런 엄청난 일이 왜 정식으로 제기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것만은 안다.


우리는 일본 정부에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를 정식으로 공개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야만 한다. 나는 한국인인 나 혼자의 힘으로는 그 원본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또다시 침묵으로 넘어갈 것인가. 또다시 굴종과 비겁의 역사를 반복할 것인가. 안 된다. 이번만은 결코 안 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세계사에 존재한 적이 없는 이런 일본의 행위를 전세계에, 무엇보다도 일본인들의 가슴에 꽂아주는 일에 동참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아직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3. 각 소설 속의 내용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그런 정보는 어떻게 얻는가?

 

나는 철저히 사실에 근거해 소설을 쓴다. 그러므로 내 소설의 뼈대가 되는 사실은 그닥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보는 주로 내 자신만의 의심과 사색으로 얻는 편이다.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아무런 의심없이 넘기는 경우가 많다.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짐으로써 예를 한 번 들고싶다.


과거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직후 유럽을 방문했고 이 때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의 네 나라를 각 일 박씩 공식방문했다. 그래서 모든 언론은 유럽 4개국 순방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실제 전 대통령은 상기 사 개국외에 스위스를 비공식으로 방문했다. 그리고 그 스위스에서는 행적이 베일에 싸인채 이 박이나 했다. 데리고 간 수많은 수행원들을 그냥 놀리면서 스위스에서 휴식을 취했을 리는 없고보면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혹시 박정희의-----

나는 이런 것을 추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