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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 (인물,소설 등)

김산 그리고 아리랑/Song of Arirang

by 아름다운비행 2005.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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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훈처에서 곧 발표할 것이라는 예정에 급히 방영된 프로그램 아닌가.. 싶네요.

   물론, 제작기간을 생각한다면 일정기간 이전에 준비된 작품이지만,

   공기(公器)라는 언론의 역할상 그런 소식을 직작에 몰랐을 리 없고,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아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고 산화한 선인들의 발자취는

   정확히 기록해 후손에 남겨 주는 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임무가 아닐까요?

 

   정지용이 월북작가라고 해서

   그 작품이 한 시기 동안에 금서(禁書)로 분류되었던

   그 아픈 사실을 기억을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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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아리랑 사의 "김산 그리고 아리랑" 책자소개중에서 옮김.

   http://arirangnara.com/profile.htm

 

** 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위의 링크주소를 방문해 보십시오.  

 

 

 

 

<프로필>

 

 김산: (본명: 張志, 張志鶴외 가명 10여가지)

    

  1905년3월10일 평북 용천 출생

  1912년: 소학교입학

  1916년: 11세때 가출

  1919~1920년: 무정부주의에 심취

  1921년: 16세에 일본에서 고학으로 유학생활

  1921년: 모스크바행 중도에 북경 황포군관학교 수학, 손문(중산)대학

              경제학과 수업

 

  1922년: 3년간 김충창(본명 김성숙) 으로부터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사

              - 공산당에 입당

  1923년: 북경협회의학원 입학
             <공산청년동맹> 가입하여 공산주의 잡지 <혁명>간행

  1925년: 5`4운동 중국대혁명에참가

  1926년: <조선혁명청년동맹>조직위 기관지 <혁명동맹> 부주필로 선언

              문 작성<동양민족연맹>결성

 

  1927년:신흥무관학교 입학,독립신문사 편집,의열단가담
  1930년11월20일:북경경찰에 체포되어 일본영사관에 넘겨져 조선에서

             심문받음

  1931년4월: 석방, 6월 북경으로 돌아감(중앙회 조직부장)

  1932년 :  보정제2사법학교 교사생활,  고양소학교 교사(은둔)

  1933년4월:북경경찰에 체포,심문

  1934년1월: 북경으로 탈출하여 당의 <북부지구위원회>활동
                  중국여인 조아평과 결혼,

  1935년5월:상해

  1936년7월:상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창설,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민족주의자들이 참여)
           8월: <조선해방동맹>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이 김산을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발(독립적 조선혁명운동)

  1937년: 항일군정 대학에서 물리학,화학, 수학, 일본어, 한국어 강의
              4월조아평에게서 아들 얻음 (고영광)
              님 웨일즈와 만나 초고

  1938년: 강생의 지시로 '트로츠키주의자' '일본스파이' 죄목으로 처형당함

  1941년: - 한 조선인 혁명가의 생애 이야기로 출판 (뉴욕 죤데이 출판)
  
  1946년10월: <월간 신천지> 10월호부터 16회 초역 연재 (신제돈 번역)

  1939년: 남한에서 2차대전 직후 지하에서 출판(자료 불증)

  1953년10월: <아리랑> 최초 일본어 번역 출판

  1961년 :<한국과 김산의 생애에 관한 주해(나의 연안 비망록)> 님웨일즈가

              출판

  1962년 :중국 <조선족출판사>에서 처음 문혁을 주도한 주요인물로 `김산`을

              언급

  1965년 :일본에서 <아리랑>제2판 출판  (안도지로 역)
  
  1978년: 아들 고영광이 중국공산당중앙본부 조직부에 아버지 김산의 

              명예 회복 조사요청  

  1973년: 미국 파나프레스 영문 재판 출간

  1981년: <나의 연안 비망록>이 일본어로 번역출판<아리랑의 노래> 

              이회성. 미주노 나오끼

  1984년: <아리랑> 님 웨일즈, 조우화 역 (서울, 동녘)

  1984년1월27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직국은 공식적으로
                        김산에게 명예회복 (참조:85년4월25일 길림신문)

  1985년3월: 재미언론인 김영희에 의해 <월간 뿌리> 번역연재

  1985: 조우화역 <아리랑> 미국에서 한글완역간행
            캐나다 갈릴리출판사 한글 복사판 출판

  1987년: 중국에서 한국어로 출판<백의동포의영상> 연변역사연구소
            중국어 번역본 이 홍콩에서  출판(난유에 출판사)

  1987년: 일본에서 제11판 (마쓰데라 이오꼬 역, 이와나미출판)

  1992년: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더불어>에 김산의 본명
           `장지락`으로 언급,항일투쟁 인정



   저서

   소   설: <백의동포의 영상>
   번역서:1932년 <포이어 바흐.마르크스.레닌의 인생관>
              (사노 마사부 저),<무신론>
,    시      : 장시<한 해 동지를 조문하여>93년 한국의 시사저널에
              최용수 교수가 발표
<동지들이여 싸우자>
              (중국어)89년 최용수교수가 (북경대 철학가.중공중앙당
              학교 과학연구부 부주임)
              중국에서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3>에 발표
   칼   럼: 홍콩에서 발간된 에스페란토 잡지에
               La Teatra Movado dum la Milito
               전쟁중 연극운동에 대해 시사
               (1939년 5월 18-20쪽)

 

 

 


  

 김산이 옥중에서 부른 마지막 아리랑이다.

 

 

   아리랑옥중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첫 번째 고개를 넘어간다.

  내 들던 막걸리는 어디 있나
  이제는 한강에 펌푸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재판장 고개를 넘어간다

  금시계줄은어디로 갔나
  쇠수갑은 맞지를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감옥행 고개를 넘어간다

  운명의 선고를 기다리며
  나 이제 생사 갈림길에 서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련다

  아리랑 고개에 간이역 하나 지어라
  집행인 기차를 기다려야 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그대 열두 구비에서  멈추지 않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열세 구비를 넘으리니

 

 


                                                                  
   "이 노래는 조선의 정치범들이 자주 부른다. 
1921년, 투옥된 한 조선 공산주의자에 의해 지어진 이 노래는 죄수 경험을 여러 단계로 말하고 있다. 즉 경찰에 의한 체포,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한강 펌프>라고 명명된 물고문, 사형선고의 기다림, 그리고 다른 혁명가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종래의 열두번째 고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승리 즉 아리랑의 열세번째 고개를 쟁취할 것을 의미하는 마지막 구절 등이다.
간이역과 기차에 대한 언급은, 오늘의 죽음이 우선 고개 넘어 교수대까지 걸어가야 했던 옛날보다 더욱 빠르게 그리고 쉽게 이루어짐을 뜻한다". (김산, 1937)

 

   김산은 그 시대 상황에 대해 "우리 민족은 열두 고개를 넘었지만 아리랑의 마지막 열 세고개를 넘지 못했다"고 술회하면서 우리 약소민족의 슬픔과 한을 미래의 승리를 아리랑으로

 

   다음은 아리랑 연가로 남녀가 번갈아 부르는 이 노래는 많은 절로 되어 있다. 
그 가사는 약 2백여년 전에 씌어졌다고 설명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떠나는 님은 잡지를 마라
    못보다 다시 보면 달콤하거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에 물새는 못사네

    나를 버리고 가시는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하늘에 별들도 많은데
    구름 뒤에 날보고 웃는 이 누구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쓴 편지에는
    "아들을...백의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내로 기릅시다."
    그리고 옥중의 벽에다 손톱으로 아리랑 가사를 적어 놓고
    우리에게 <아리랑>을 남기며 짧은 32년의 생을 살다 갔다. 
    
    "내 전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 나 자신에 대하여 -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격을 뒤엎지 않으면 안되는 피억압자 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억압은 고통이요, 고통은 의식이다. 의식은 운동을 의미한다. 인간 그 자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려면 수백만이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혈과 죽음의 광경, 그리고 어리석음과 실패의 광경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력을 가로막지 않는다"


    이 책은 그의 요구대로 1940년까지 출간되지 않았다.
    그의 행적과 동지들의 이름이 밝혀지면 적들에게 발각되며, 당연히 그들의 행동에 제약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가 1937년에 기록한 한국인 독립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33살까지 살면서 세계역사의 격변기를(1920~1930년대를) 불사조처럼 살다 간 김산의 나라사랑과 김산의 사상을 담은 이책은 님 웨일즈를 만나서 단 6개월간 22번의 인터뷰를 담아서 만든 김산과 공저인 <연안노트>를 기초로 하여 필리핀의 바기오 섬에서     을 완성했다. 그런데, 님웨일즈는 왜 김산의 일대기를 담은 이 책 제목을 왜 <아리랑>으로 이름했는지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아리랑>의 의미를 재확인 시킨다.

    이 책에서 김산은 아리랑을 "고통받는 민중에게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옛노래"라고 기록하고 있고, 님 웨일즈는 김산이 말하는 아리랑을 통해 "아리랑은 불멸성 뜻한다"고 재해석하고 있다.

    이 책은 한 지식인의 전기를 넘어, 동아시아 한, 중, 일의 근대사 기록이자 우리 민족의 고난의 시대를 아리랑으로 승화하고  아리랑으로 우리 민족의  불멸성을 입증한 세계명작 중에 한 책이다.   

 

 

 

 

 

 

 

    

 

    아들 고영광은 누구인가?
    
  고영광씨는 김산의 유일한 실자로 중국여인 조아평과 사이에서 1937년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 성을 따라 고영광으로 불린 적은 있지만 1945년 어머니 조아평이 재혼함에 따라 계부 성을 따라 고영광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씨는1957년 천진, 난카이대학을 졸업하면서 하얼빈 공대교원으로 재직하고 78년 베이징으로 이주해 국가계획위원회 과학 기술사로 근무했다. 그는 1945년 어머니 조아평을 따라 공산당 통치 지구에 가서 공부 하면서 자신의 부친이 김산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981년 님 웨일즈와 편지를 주고 받고 그해에  중국어로 번역된 부친의 전기문인 <아리랑>을 비로소 읽게 되었다. 그는 70년대 중반에서야 부친과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을 만나 부친에게 씌어진 일본 간첩 협의가 부당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중국공산당 중앙 조직부에 이 문제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 하기도 했다.

   이 결과 83년 고씨는 공산당 중앙 조직부로부터  “김산의 처형은 특수한 역사 상황 아래서 발생한 잘못된 조치였다. 본 결의에 의해 그에게 덮어 씌워졌던 불명예가 제거 되며 그가 지녔던 명예를 모두 그에게 되돌린다 이로서 그의 당원자격은 회복된다”라는 결정을 이끌어 냈다.
또한 이 조치로 인한 명예 회복이 이루워진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두아들과 함께 한족에서 조선족으로 자신의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김산의 분신인 고영광이 장영광이 되었다.


    님 윌즈가 김산의 아들 고영광에게 보낸편지(축약)  

 

    존경하는 선생님
    오늘 아침 뜻밖에 당신이 띄운 편지를 접하고서 찹착한 심정을 걷잡을 길 없습니다.
    세상에 영원히 남아 길이 전해지는 거라면, 하나는 아들, 딸을 낳아 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책을 출간해 후세에 남기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당시 부친의 소원이 오늘에 와서 성취된 셈입니다.

   [아리랑의 노래]를 소설이라 일컬음은 지당하지 않습니다. 그 책엔 꾸면 낸 이야기라곤 없습니다. (중략)  난 또 그에게 김산이라는 별명까지 달아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본명을 장지락이라고 알려주면서 자신의 원명을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중략)
   문학에 대한 조예도 깊었습니다. 그는 [백의동포의 영상]이란 장편 소설을 집필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을 거짓 없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조국인민의 투쟁을 직접 도와 나서지 못함을 한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중략)
   1961년 난 [조선과 김산의 일생]이란 소설을 써냈고, 아울러 그 책의 판권을 얻었습니다.
   (중략)
   그분처럼 그렇게 용감하고 완강하며, 일본인에 굴복을 모르는 사람은 조선인중에서도 드물었습니다. 그런 그를 일본침략자의 주구로 간주한다는 건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일입니다.
   (중략)
   나의 <아리랑의 노래>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었고, 더욱이 조선과 일본의 독자들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이 책자는 오늘날까지 줄곧 일본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책이고, 이제 이런 글을 더 쓸 사람도 없습니다.
   (중략)
   그때 그는 그렇게도 흥분된 심정을 안고 나와 얘기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더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만간에 목숨을 잃으리라는 걸 각오 했고, 심지어 폐결핵으로 숨질 것도 각오 했습니다.
   내가 쓴 책이 그가 이 세상에 최후로 남긴 유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짧디 짧은 32년의 경력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그에 대한 불공정한 심판은 이 책에 비극적 색채를 돋구었고,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를 더 심화 시켰습니다.


   달톤교수는 다음과 같이 쓴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내가 1944년 봄에 처음으로 읽을 때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때 난 미네소타주 화와이병영에서 일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 책은 나를 따라 바다를 건넜고, 대동아 전쟁의 초연에 그을리기도 했다. 그 책은 나로 하여금 자신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침략한 조선,중국,그리고 기타 국가 인민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속에 뛰어든 한 성원이었음을 깨닫게했다.

   우린 인종차별현상이 더 이상 지속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난 당신이 나와 계속 연계를 가져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부친의 정황을 보두 밝히게 된다면 편지로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난 그런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그걸로 내 정상적인 인간성을 굳히렵니다.
불공정한 결과를 보리라 예상되지만, 이 역시 침통한 사건이라는 걸 미리 말해두고 싶습니다.
   소원성취를 기원합니다.

 

 

 


< 문헌 자료 : 한국편 >

 

   김산 저, 辛在敦 譯, 「아리랑-조선인반항자의 일대기 」
   (서울: 『신천지』, 1946, 10~1948.1)
   
   님 웨일즈 저, 조우화 옮김, 『아리랑』(서울:동녁, 1984)
   
   님 웨일즈 저, 학민사 편집실 옮김, 아
리랑 2-김산의 생애 및
   
   한국에 관한 보충
(서울: 학민사, 1986)
   
   임영태, 아리랑의 등장인물
   (서울:역사문제연구소 회보 창간호, 1986)
  
   이명영, 동만의 풍운아 오성륜 (서울: 월간중앙, 1973.7)
  
   김학준, 이동화평전 (서울: 민음사. 1988)
  
   이정식 면담/김학준 편집·해설, 혁명가들의 항일 회상
   (정회암·이강훈·김성숙·장건상), (서울:민음사, 1987)
  
   김일평, 중국혁명과 군중노선 (서울:정음사, 1987)
   
   김영희, 김산의 혈육 베이징서 만나다  (서울:한겨레신문,1989.8.9)
   
   임영태, 김산은 누구인가  (서울:한겨레신문  1989.8.9)
   
   백선기, 김산과 아리랑에 대한 소고
   (서울:범양사 출판부, 회귀 제5집, 1989)
   
   백선기, 님웨일즈의 "아리랑회고:
   (서울:범양부 출판부, 회귀 제 6집, 1990)
   
   김산 저 ,水野直樹(미즈노 나오끼) 해설, 서은혜 옮김,
 
「기묘한무기」 및 김산의 작품과 생애
   (서울:월간 『다리』,1990 1월호)
   
   김준엽·김창순 공저,『한국공산주의 운동사』제3권
   (서울:청계연구소, 1990)
   
   님웨일즈 저, 조우화 옮김, 리영희의
"『아리랑』과 나"
 『아리랑』
(서울:동녁, 1992)
   
   서우제 외 5인,「김산의 아리랑」
  (서울:『시사저널』제205~206호,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