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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감상문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完)

by 아름다운비행 2005. 7. 16.

* 평가교수 님의 블로그에서 옮김

 

 

바람과 함게 사라지다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完)
2005/04/19 오전 12:54 | 영화감상문

두대의 전세기를 타고
게이블과 갓 결혼한 신부 롬바디
비비안 리와 로렌스 올리비에

밍크 코트에 챙이 넓은 밀집모자 (애슐리 집의 원유회에 쓰고 갔던 모자) 에 긴 리본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는 이 모든이들에게 아틀란타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날의 아틀란타는 신문 전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이야기 뿐이었다
그일 외에는 없는 듯 했다.
아틀란타의 인구 30만명

샐즈닉의 일성은 이랬다
" 신사 숙녀 여러분 저희는 송구스러움으로 전율을 느끼며 이곳에 왔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머물것 입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저희가 노력한 바를 지켜봐 줄것을 간곡히 부탁드림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조용한 속에 영화는 끝이 나고
밋첼 여사는 흐느낌 속에서
배역진의 훌률한 선정과 멋진 연기에 만족감을 표시.

활력과 용기의 화신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애정을 기울였던 샐즈닉
그처럼 많은 오스카상을 많이 받은 영화도
그처럼 많은 돈을 벌은 영화도
이제껏 만즐어진 그 어떤 영화보다도 훨씬 많은 관객을 동원했던 것도
헐리우드에서 그토록 큰 영애도
그런 큰 성공도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 입니다

세월이 지난뒤 그는 자신이 이룩했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궁지에
빠졌노라고 투덜댔습니다
그토록 성공을 한뒤로 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던 간에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비교하면서 그보다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1944년 샐즈닉은 그 영화를 헐값에 팔았습니다
모든 전설은 그 순간에 지나가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1961년 샐즈닉은 비비안 리, 올리비아 하비랜드와 아틀랜타를 다시 찾았습니다
남북전쟁 100 주년 기념제 였습니다
그들은 행복과 비애를 동시에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늙어갔으나 영화는 선명하게 옛 그대로 그들 품안에 안겨 왔습니다
그들은 최후의 생존자였습니다

레슬리 하워드는 1943년 영국 정부를 위한 밀명을 수행중 비행기 폭파로
세상을 등졌으며
소설을 쓴 밋첼여사는 1944년에 자동차 사고로

그후
게이블은 1965년 심장마비로
비비안은 1967년 폐를 앓다가...

비평가들은 영화가 지닌 예술성은 인정하나
예술이라기 보다는 위대한 볼거리였으며 독자들을 결코 속인 것은 아니다.
무척 다감하고 야심에 찬 샐즈닉, 비비안 리에 의해 추진된 위대한 영화였고
어쨋든 이 두 사람은 스칼렛 오하라를 통해 결합되었고
그리고 그녀를 통해 전설은 이어져 옵니다

고통에 찌든 암울한 여인 사랑스럽고 귀엽고 또한 무서운 여자
그녀의 이기심과 갈망, 그 힘을 통해서
그녀의 모든 완고 절망을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가 어떻게든 사랑하는
남자를 되 찾을 수 있기를 염원하게 만들 정도로 뜨겁고 절실하게 합니다

샐즈닉은 자기의 스칼렛에게 일말의 해답을 제시해 놓습니다
태라
내 고향 고향에 갈테야
거기가서 그이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내일의 바람이 불테니까

커다란 느릎나무 밑에
태라를 향해
그 넓다란 밀짚 모자를 손에 들고
내일의 바람을 향해 그녀는 굳건히 서 있는 것으로 이 DOCUMENTARIE 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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