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이 미래학자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박영숙 기자 | 입력 : 2012.08.07 18:30
◀ JEROME CLAYTON GLENN
(사진 출처 : http://www.acunu.org/millennium/resume/jglenn.html)
박정희 대통령과 ‘허먼 칸’ 미래석학과의 비사(秘史)가 있다. 이 것이 자칫 역사 속으로 묻힐 뻔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미국의 미래석학 허먼 칸 등 미래학자들의 조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고 박 대통령이 당시 외국경험도 없고 세계화, 글로벌화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외국의 미래석학을 몰래 청와대로 불러 조언을 청하고 그들의 미래예측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행동하고 실현시킨 용기였다.
허먼 칸은 이미 유명인사로 명강사, 사회학자, 미래학자였다. 싱가폴 이광요수상은 막 말레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폴이 무엇을 먹고 살아야하는지 자주 허먼 칸을 불러 미래 기술예측에관해 물었다고 한다.
▲박영숙 (사)유엔미래포럼 한국지부대표
일본의 천왕이나 수상도 일본이 무엇에 투자를 하고 어떤 성장동력을 가져야 부상할 수 있는지 잦은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일본이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책으로 특강으로 널리 알리고 다닌 사람이 허먼 칸이다. 아시아로의 경제권력이동을 주장하였고, 한국의 언론기사에보면 '한국 세계의 공장이 될 것이다', '한국 아시아의 부국이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당시 국민소득 100불의 나라에 관해 엄청난 예측을 했었다.
그가 방한한 기사들은 동아일보, 매일경제등 많은 신문에서 톱으로 다뤘다. 그리고 올때마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에 들어가서 악수하는 장면들이 신문에 많이 실렸다.
당시 고속도로 건설 등은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으면서 박 대통경은 고비 고비마다 허먼 칸이라는 미국의 미래석학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이 비사가 사라질 뻔 하다가 최근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회장에 의해 그 증거가 발견됐다.
제롬 글렌 회장은 “위대한 대통령 박정희가 미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이 경제대국 11등으로 자랐고 이제 또 허먼 칸의 수제자인 제가 한국 경상북도 김천에 ‘세계기후변화종합상황실’과 알지 미세조류 연구소를 만들게 된 것도 우연한 인연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가 최근 발견한 책자는 바로 허먼 칸의 '1979년과 그 이후의 세계경제발전(World Economic Development 1979 and Beyond)'이었다.
여기에 보면, 허머 칸 박사가 미래성장동력을 예측해 준 것이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을 이끌었다. 3차 경제개발계획때는 이제는 신발장사 가발 장사는 안되고 중공업, 자동차, 선박, 철강으로 가야한다고 조언하였다.
특히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서울평화시장 노동운동 분신사태 직후 방한한 제롬 글렌 회장은 "앞으로 미래사회는 노동자들이 권익을 주장하고 개개인이 똑똑한 사회가 되며 노동운동이 봇물처럼 일어나는데, 한국은 농촌인구가 많아 농촌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허먼 칸이 말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농촌인구들을 도시로 끌고와서 노동하라고 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므로 당신이 직접 시골로 들어가서 시골사람들을 한가하게 만드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그린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였다고 한다. 칸 박사는 환경논자였다. 미리 그린 프로젝트로 환경운동도 해야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 '그린 프로젝트'는 나중에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1972년 10월 25일 박 대통령에 의해 발표된다. 이 녹색성장운동은 저탄소 에너지절약운동으로, 짚으로 덮던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흙집을 개량집으로 바꾸면서 농촌인구가 한가해졌다. 특히 물길러오는데 3시간걸리는 길을 부엌에 펌프를 박으면서 아낙네들이 한가해졌다. 가정에서 군불 때고 가사일 하던 여성인력을 농촌 공장으로 끌고 나와 생산노동력으로 바뀐 것이다.
제롬 글렌 회장은 허먼 칸 박사의 조수로 일하면서 허먼 칸 박사가 1960년대 초반부터 자주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조언을 했다는 증언하였다. 하루는 허먼 칸 박사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갔는데 그가 양복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고 한다. 허먼 칸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너무 갑자기 불러서 양복은 챙겨입었지만 신발 갈아신을 시간이 없었다고 독특한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한국이 녹색성장을 주력정책으로 택한 것은 갑작스런 정책이 아니라 40년의 역사가 밑받침이 되기 때문에 한국이 녹색성장의 주도국이 되겠다는 의지는 한국 정부의 갑작스런 결정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슬로건이 바뀌기 때문에 이번의 녹색성장이라는 단어는 분명 그린 프로젝트 등 다른 이름을 달게 될 듯하다. 개혁 개혁하다가 혁신하듯이, 녹색성장 하다가 기후에너지산업이라는 말로 바꾸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 관련 기사
- 박정희와 허먼 칸의 만남
http://blog.daum.net/kjt3131/7591251
- 미래예측 전문가 워크숍 참석 소감 (김춘근 김천 알지(미세조류)연구소 소장(016-289-0865))
- 제롬 C. 글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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