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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 (인물,소설 등)

고려인 한 담은 100년전 아리랑

by 아름다운비행 2013. 4. 6.

* 출처 :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81492.html 

 

최초로 국내에 공개된 1917년 전쟁터에 끌려간 고려인 2세가 부른 ‘아리랑’이 담긴 레코드판

1차대전때 독일 포로 돼 녹음
후렴구 가사 다르고 곡조 빨라
문경 옛길박물관 전시서 공개

100년 전 전쟁에 끌려간 고려인 2세가 부른 ‘아리랑’과 이를 녹음한 레코드판이 공개됐다.

 

4일 경상북도 문경시 옛길박물관에서 시작한 ‘길 위의 노래, 고개의 노래 아리랑’전(국립민속박물관과 공동기획)에는 97년 전인 1917년 두 명의 한국인이 각각 부른 두가지 아리랑과 이를 수록한 에스피(SP)판 2장이 등장했다. 아리랑연구가 김연갑씨가 올 2월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 부속 자료관인 라우트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자료로, 이틀 동안 일반에 공개된 뒤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아리랑을 부른 한국인은 1차 세계대전 독-러 전투에 러시아 병사로 참전한 고려인 2세인 김 그리고리(한국이름 김홍준, 당시나이 27살)와 안 스테판(한국이름 미상, 당시 나이 29살)으로, 이들은 독일군 포로가 되어 프로이센 포로수용소에 수용 중인 전쟁포로였다. 아카이브를 조사한 김연갑씨는 “고려인 포로는 두 사람 외에 김충세(kim chung see), 유 니콜라이, 강 가브리엘(한국식 이름 강홍식)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기록을 보면, 김 그리고리는 니콜스크 우수리스크 농부 출신이다. 전쟁과 함께 재소집되었는데 3개월 만에 포로가 되어 3년째 수용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18살에 결혼해 아들(김복), 딸(김샛별)을 두고 있다. 김충세는 독일어를 할 줄 알아 수용소 내 통역을 맡고 있으며, 안 스테판은 상인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선 자세한 기록이 없다.

 

4일 개막한 문경 옛길박물관의 기획전에 전시된 다른 아리랑의 악보. 이 악보는 1896년 외국인 헐버트에 의해 채보된 아리랑으로 그의 책 <코리안 리포지터리>에 실려 있다.

독일은 1916년과 1917년 두 차례 빌헬름 알베르트 되겐(1877~1967) 등 언어학자로 구성된 조사원 23명을 포로수용소에 투입하여 230개 민족의 언어를 노래 또는 주요단어를 구술받아 초기녹음 방식인 왁스판에 녹음해 두었다가 1933년 에스피판으로 옮겼으며 현재는 디지털 음원으로 바꾸어 원본과 함께 라우트 아카이브에 보관하고 있다. 음반을 가져온 아카이브 쪽 큐레이터인 사라 그로세르트는 “유 니콜라이도 아리랑을 부른 것으로 기록에 나오지만 그 음반은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며, “베를린 민속박물관 쪽에 더 많은 음악이 소장돼 있다”고 전했다.

 

녹음된 아리랑을 들어보니 ‘아라랑 아라랑 아라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 가자’(김 그리고리), ‘아라랑 아라랑 아라라리요/ 아라랑 철철철이 배 떠나간다’를 후렴구로 하여 ‘아리랑 고개 집을 짓고/ 오는이 가는이 정들어 주지’ ‘요내 배는 한강 밴지/ 팔동의 한량이 다 타고 논다’ 등 남녀의 성희를 내용으로 하는 사설을 매기고 있다. 현재 전하는 나운규의 아리랑과는 후렴구 가사가 다르며 곡조 역시 빠른 편이다.

 

김연갑씨는 “이 노래가 곡조로는 서도 아리랑에 속하고 가사는 연해주 고려인의 수난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원 일부는 <인터넷 한겨레>에서도 들을 수 있다.

 

문경/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고려인 전쟁포로가 부른 100년전 ‘아리랑’

http://www.hanitv.com/20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