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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모습

[Why] 감자탕집 사장님, '카페 한류'를 꿈꾸다

by 아름다운비행 201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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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감자탕집 사장님, '카페 한류'를 꿈꾸다

하루 커피 18만잔 판매 '카페베네' 김선권 대표
美 카페 매출 오전에 60%…
맨해튼에 8월 직영점 열어 '오후 시장' 만들어 낼 것
카페는 소통의 공간… 길거리 카페 숫자와 선진국 가는 속도 비례
게임장·삼겹살·묵은지 감자탕…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승승장구
어려운 환경이 사람 단련시켜… 日 대지진 겪은 세대에서 20~30년 후 기업가 많이 나올 것

'카페베네'의 김선권(43) 대표는 한국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파는 남자다. 전국 가맹점 수만 600개가 넘는 그의 '커피집'에선 하루 18만잔이 팔린다. 그는 요즘 한국 대중음악 가수들이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 한복판에서 공연을 벌이고, 유럽 젊은이들이 'K팝'에 열광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를 짓곤 한다. 서양식 음악으로 유럽 본토에서 승부를 걸고 있는 그네들의 모습이, 오는 8월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에 카페베네 해외1호 직영 매장을 오픈하는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에도 가능할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29세부터 삼겹살, 감자탕 등 각종 외식업체 프랜차이즈를 오픈해 성공시켜왔다. 하지만 해외 시장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8년 4월 그가 서울 천호동에 카페베네 1호점을 열었을 때,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 카페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후발 주자 중에서도 가장 늦은 축에 속하는 그를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이런 불리한 여건을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 아이디어로 극복했다. 많을 때는 한 달에 30개씩 매장을 오픈하면서 "거품이다" "과잉 투자다"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과다한 마케팅 비용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3년 뒤 카페베네는 국내 시장에서 스타벅스를 물리치고 '톱 브랜드'의 지위로 올라섰다. 이제 그 여세를 몰아 카페 문화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카페베네 압구정 로데오점 앞에서 힘차게 발을 내딛는 김선권 사장. 한식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카페로 영역을 확대한 그의 발걸음은 이제 세계를 향하고 있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스타벅스의 홈그라운드에서 승부를

―미국은 왜 가는 것인가.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소멸될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 이미 우리나라 시장에서 매장 개수로는 카페베네가 1위인데, 직원들을 비롯해 내 마음속에서도 '더 큰 곳에 나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피의 본고장에 한국 토종 커피 브랜드가 나간다는 생각만 해도 피가 끓지 않는가."

―순전히 그런 거창한 이유에서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이야기했다. 사실 제대로 된 매장 하나 열어서 성공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이나 베이징이나 도쿄뉴욕이나 비슷하다. 그렇다면 본고장인 뉴욕에 가서 성공하는 것이 낫다. 뉴욕에서 성공하면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은 그냥 따라오게 돼 있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한국에서야 마케팅과 과감한 투자 활동을 통해 스타벅스를 따라잡았지만, 그 공식이 '홈그라운드'에서도 통할까.

"세계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한국은 치킨(chicken) 업체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통한다. 경쟁으로 단련된 한국 업체들을 외국기업들이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다. 카페 시장도 비슷하다. 유명 해외 브랜드 중에 한국에 들어왔다가 철수한 곳이 수두룩하다. 그 시장에서 우리는 살아남았고 1등이 됐다."

―미국 시장은 한국과 엄연히 다르다.

"미국 시장에서는 카페 매출의 60%가 오전에 일어난다. 점심때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저녁에는 거의 손님이 없다. 반면, 한국은 퇴근 후에 본격 매출이 일어난다. 미국과 정반대다. 현재 맨해튼에만 스타벅스가 200개가 있다. 우리가 그곳에서 '오후 시장'을 만들어내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나는 모든 것을 걸었다. 10년 동안 꼬박꼬박 임대료를 주기로 건물주와 계약을 맺었고, 임대료에 대해서는 내 개인 재산으로 보증까지 섰다. 10년 임대료만 135억원이다."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온다고 생각하나.

"나는 사람들이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서 온다고 본다. 우리 매출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되지 않는다. 그것만 봐도 우리 사업은 커피보다 카페 문화,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비즈니스다. 사람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다가도 카페에선 쉬면서 나만의 시간, 공간을 갖고 싶어한다."

―카페 예찬론처럼 들린다.

"나는 카페가 많이 생길수록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 이것이 소통인데 카페는 소통의 공간 아닌가. 길거리의 카페 숫자와 선진국으로 가는 속도에는 분명히 비례 관계가 존재한다. 술 마시다가는 싸워도 카페에서 싸우는 사람은 본적 없지 않나."

프랜차이즈 업계 '미다스의 손'

카페베네 초창기 그의 이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외식시장에서 '묵은지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추풍령 감자탕'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 뼈에서 핏물을 빼고, 가을이면 김치를 담갔던 그가 지금은 커피를 뽑고 있다.

―감자탕에서 어떻게 카페로 진출했나.

"카페는 인건비 부담이 적다. 들여다보니 손이 많이 가고 사전 준비가 많은 한식에 비해 간단했다. 감자탕은 10시간 동안 뼈를 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손질하고 삶고…. 정말 할 일이 많다. 주방 인원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카페는 단출하다. 일반 식당에선 종업원 불러서 바로 안 오면 금방 불만이 나오는데, 카페는 손님들이 기다리면서도 즐거워하고 먹고 나면 자기들이 알아서 치워준다. 기존 프랜차이즈 유통망을 활용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줄일 복안도 있어 해볼 만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카페 사업 이후 뭐가 달라졌나.

"아무리 사업을 크게 해도 나는 '식당 사장'이었다. 그런데 카페베네를 하면서 '프랜차이즈 기업가'로 알아주기 시작하더라. 그만큼 사람들이 한식을 낮춰 보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스타벅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워드 슐츠 회장에게 고마워할 일이다."

―추풍령 감자탕이 묵은지 열풍의 진원지였다고 하던데.

"묵은지를 개발하려고 각종 한식연구소나 김치 전문가를 다 쫓아다녔다. 그때 전국 김치 제조업체마다 팔지 못하고 묵혀둔 김치 물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을 우리가 선점해버렸다. 처음 몇년 재미를 봤다. 그 이후 중국산까지 들어오면서 너도나도 묵은지를 팔기 시작하더라."

―카페베네 사업 초기 한 달에 30개씩 매장을 열면서 그것을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성장 과정에서 상식을 벗어난 전략과 투자를 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 선발업체들과 경쟁을 할 수 없었다."

―처음엔 카페베네가 연예기획사인 '싸이더스' 소유라는 말도 있었다.

"감자탕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전략적 제휴였다. 처음 창업 준비하는 분들에게 내 사업 경험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봤다. 사업 전망에 대해선 실컷 내 이야기를 듣고 정작 계약은 다른 업체랑 했다. 싸이더스가 지분을 투자하면서 당분간 나는 나서지 않기로 했다. 연예인 기자회견이나 제작발표회를 유치하는 등 스타 마케팅에도 힘을 쏟았다. 이 때문에 싸이더스가 카페베네 사업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 분들이 많았는데, 굳이 그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었다."

가난이 싫었던 소년

전남 장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선권의 가족은 비가 많이 내리면 산비탈 자드락 논에 가둬놓은 물이 넘쳐 논둑이 무너질까 봐 온 집안 식구들이 잠을 설쳤다. 아버지는 그가 8세 때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워매, 억수로 쏟아지네" 한마디 하고선 어린 자식들이 깰까 봐 조심조심 옷을 차려입고선 머릿수건을 뒤집어쓴 채 삽 한 자루 들고 집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그는 잊지 못한다. 9남매 중 일곱째인 그는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쳐버릴 꿈을 키웠다.

―프랜차이즈엔 어떻게 발을 들여놓았나.

"27세 때였다. 먼저 서울에 자리를 잡은 둘째 형을 따라 가족들이 상경했다. 나는 첫 사업으로 오락실을 하나 오픈하려고 청계천에 갔다가 견적서도 없고, 자료도 없고, A/S도 없는 이상한 시장을 만났다. 도저히 사업을 할 수가 없었다. 반면, 일본의 '게임장'은 깨끗한 매장에서 프랜차이즈로 운영되고 있었다. 연구를 했다. 프랜차이즈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29세 때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 신문에 '화성침공'이라는 전자게임장 프랜차이즈 모집 광고를 냈는데 전화가 폭주했다. 그때부터 '공간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특성을 살려 우주 공간 분위기를 냈고, 매장 바깥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했다. IMF가 터져 모두가 힘든 때였지만,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오는 소비자를 상대하는 사업엔 불황이 없었다."

―그렇다면 게임장을 계속하지 왜 다른 쪽으로 바꿨나.

"청계천 때문이었다. 업주들이 프랜차이즈 '관리'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몰래 청계천에서 기판을 사다가 바꾸더라. 기왕 프랜차이즈에 발을 들여놓았고, 3년 만에 외식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한창 IT 붐이 일 때 삼겹살 프랜차이즈 이름을 '왕삼겹닷컴'이라고 지었더니 이것도 순식간에 가맹점 300개가 되더라."

―정말 순탄하게 흘러온 것 같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두 번을 연달아 성공하고 나니 30대 중반에 세상이 만만해 보였던 것 같다. 주식에 손을 댔다가 다 날렸다. 프랜차이즈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업이어서 힘든 점이 많았다. 아마 그래서 '혼자'하는 주식의 매력에 잠깐 빠졌던 것 같다. 200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가 빈털터리가 된 것을 알았다."

―완전히 망한 것인가.

"아니다. 전화위복이었다. 주위에선 잠깐 떠나 있으라고 조언하는 이도 있었지만, 계속 사업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순 없었다. 직원들 얼굴이 떠올랐다. 하도급업자들, 시행사들 관계된 사람들 다 불러 모았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반드시 정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1년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추풍령 감자탕'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나를 믿어준 사람들과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결국 어린 시절의 가난이나 시련이 성공의 밑바탕이 된 것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20대 청년들이 성공한 기업가를 이야기할 때, '그래 너니까 가능하겠지' '너는 나와 다른 세계에 살잖아' 이렇게 치부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어려운 환경은 사람을 단련시킨다. 이번에 뉴욕에 진출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유대인이 많다. 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때 서커스단에 있었던 사람, 10대 때 군대에 가야 했던 사람 등 풍요의 나라 미국에선 있을 법하지 않은 고생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선 이번 대지진을 겪은 세대 중에 20~30년 후 훌륭한 기업가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중에 카페베네 매각설도 있다.

"내가 직접 지분을 가진 추풍령 직영점이 1개인데 아직도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카페베네는 직영점이 18개고 앞으로도 늘려갈 것이다. 매각설 운운하는 것은 나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토종 커피체인점 카페베네 김선권 사장이 13일 강남 압구정동 매장에서 성공비결에 대해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