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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친일인명사전 나왔지만 정부는 서훈취소 등 ‘미적’ / 이이화

by 아름다운비행 2011. 3. 31.

*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327205009655&p=hani

 

[한겨레]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17

2001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발족하고 그 산하에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를 설치했다.

2004년 초 국민모금 운동이 번진 덕분에 극적으로 기금을 마련한 친일사전 편찬 작업은 출발할 때부터 말할 나위도 없이 말들이 많았다.

 

 

 

 

극소수지만 어떤 분들은 '주요 친일인물 몇백명만 싣자'라든지, '마지못해 친일한 인사를 제외하자'라든지 하는 상식 밖의 주장을 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는 다분히 억울한 사람을 가려내자는 게 아니라 아무개 언론사의 창업주 같은 세력가들을 제외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였다. 또 공청회나 명단 발표가 있을 적에는 친일파 후손이나 퍼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 방해를 놓기도 했는데, '사실규명이 잘못되었다'고 떠드는 수준은 그래도 순진하게 보였지만, '빨갱이들이 모여 민족분열을 일삼는다'고 호통을 칠 적에는 어이없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했다. 또 당시 천도교의 아무개 교령은 청와대 모임에 참석해 민족종교인 천도교 인사가 열몇명 수록되었다고 떠들기도 하고, 천도교 인사의 친일행각을 공식으로 사죄한 천도교 지도자 박남수씨를 교단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막바지 출간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2009년 출간 보고회 행사장이 외부세력의 압력으로 취소되는가 하면 박정희를 지지하는 노인들이 떼로 몰려와 연구소에 달걀을 던져대는 소극도 벌어졌다. 만주 관동군의 장교였던 박정희가 수록된 걸 불만으로 여긴 것이다. 박정희 지지세력은 '일제에 일사봉공(一死奉公)하겠다'는 만주군관학교 지원 당시 박정희의 혈서가 공개되자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 혈서 공개는 그의 아들 박지만의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비롯되었다. 사전 편찬은 특정인을 목표로 진행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은 긁어 부스럼이라 할 만했다. 객관적 사실만을 기재한 사전에 대해 상식 밖의 주장으로 발간과 배포 금지를 요구하니 연구소가 부득이 대응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화가 장우성, 검사 엄상섭, 언론인 장지연, 박정희와 그의 동서 홍순일 등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사법부는 일관되게 친일인명사전의 객관성과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주었다.

이렇게 친일인명사전은 갖가지 방해를 받으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쳐 몇차례나 연기된 끝에 2009년 8월 끝내 발간됐다. 이어 그해 11월8일 백범 묘역에서 발간 국민보고대회도 열렸다.

나는 감수라는 형식을 빌려 초고를 꼼꼼히 검토했다. 내 전공분야에 속하는 인물 중심으로 살폈고 제도용어나 한자의 오류를 찾는 수준이었다. 그 방대한 내용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살피면서 실로 대단한 작업을 해낸 연구소와 편찬위원회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사전은 연구소 출범 18년, 편찬위원회 구성 8년 만에 이루어진 쾌거였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사전의 서문에서, 참회와 화해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전제하고 "이 사전에 등재된 이들의 유족이나 연고자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관련자들의 고뇌와 번민을 고려하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역사 앞에서 우리 모두 겸허하고 냉철해져야만 한다"고 밝혔는데 오만하지 않아서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이 사전은 수백명의 필진이 참여한 해방 이후 최대·최고의 전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제 사전이 나오고도 1년이 훌쩍 넘었다. 한데 이명박정부는 이를 마무리짓는 일에 태만하고 있다. 하나의 보기를 들어보자. 2010년 보훈처 서훈취소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친일행적이 뚜렷한 장지연 등 19인의 서훈 취소를 통과시켰다. 이 취소안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국무총리실에서는 이 절차를 미루고 있다. 다분히 적당히 깔아뭉개려는 의도로 보이고 또 김성수나 박정희 등의 서훈 취소 요구로 진행될까봐 눈치를 살피는 꼴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아쉬운 것은 사전이 출간되었는데도 이런 성과에 대해 본격적인 학계의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흔한 학술 관련 수상도 한번 못했고 공공도서관에서도 구입을 하지 않거나 미루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러니 친일문제는 아직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조용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1질 3책' 30만원의 고가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해서 역사자료관 건립의 기금이 되어주고 있으며 필자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런데 '친일인명사전'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본다. 연구소가 계획하고 있는 < 친일문제연구총서 > 는 최소한 앞으로 10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또 식민지 시기의 민중생활사 자료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아직도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