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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민족의 일만년 역사

by 아름다운비행 2008. 1. 26.

한민족의 일만년 역사

우리 역사의 맥과 우리 민족의 또다른 맥

한국 7세 3301년      B.C 7199

배달국 18세 1565년 B.C 5885

조선 47세 2096년    B.C 2333

북부여 6세 182년    B.C 239   -  낙랑국, 중삼한, 위만, 동부여(가섭원 부여)

고구려 34세 846년  B.C 178   -  백제,신라,가야: 사국시대

대진 15세 259년     A.D 668   -  신라(통일신라):남북조시대

고려 34세 475년     A.D 918   -  요, 금

조선 26세 528년     A.D 1392 -  청

 

이 표는 생소한 점이 많을 것이다. 왼쪽은 우리역사의 맥이고 오른쪽은 우리 민족의 또다른 나라이다. 여기서 여진, 거란이 나오는데 여진족은 우리 민족에게서 갈라진지 2000년 경이고 거란은 그보다 오래 되었는데 우리에게는 형제나 다름없는 핏줄을 가지고 있다.

동이족으로부터 거란, 흉노, 선비, 몽고, 여진족이 갈라졌음이 또한 한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1) 한인의 한국시대:

 

한국은 천산 동방으로 [동서가 2만리, 남북이 5만리] 의 방대한 문명의 대국으로 파내류국으로도 불리웠다. 당시 천산에 거하며 득도하여 덕이 높던 성자가 천왕으로 추대되어 한국을 통치하였는데 그 이름을 안파견이라고 하였다. '만인의 아버지' 라는 뜻의 안파견 한인은 초대 한인으로서 한국을 다스렸는데 한인이란 통치자와 제사장의 관직명이다. 당시 한국은 12 한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안파견 한인은 자신의 형제 9인으로 하여금 각 한국을 나누어 다스리게 하였으며 이를 통칭하여 [광명의 제국]이라 불렀다 (삼성기하, 태백일사, 규원사화] 제1변의 남, 북 문명의 정통을 계승하여 중앙 아시아에서 태동한 이 한국문명은 제2변의 동, 서문명으로 맥이 이어졌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 근거는 최근 120년 동안의 고고학적인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약 5,500년 전에 현서양문화의 뿌리인 슈메르문명이 있었으며 이 문명을 건설한 슈메르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김상일,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국) 또 북미의 오리건주에서 발굴된 짚신 75켤레가 동이족의 짚신과 흡사한데 방사성 탄소의 측정에 의하면 이는 약 9천년전의 것이라 한다. 미국 워싱톤 박물관(스미소니언)에는 이외에도 나무절구, 소쿠리, 광주리, 베틀, 어망, 물레 등 우리 선조들이 쓰던 생활 도구와 동일한 것이 많다고 한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천산 산맥은 그 주맥이 동북쪽으로 뻗어 나가 소련과 캐나다의 국경인 베링해협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이 붙어 있었던 약 25,000 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던 동방족의 이동은 1만년 전까지만 해도 육교의 역할을 하던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진행되었다.


(2)한웅의 배달국시대

 

한국의 정통 정신을 계승한 분은 후기 한국 말경에 당시 '자식들의 마을(서자부)' 의 수장이었던 성자 한웅으로, 한웅은 야만 생활을 하던 인간을 널리 구제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에 한인께서 중국의 감숙성(돈황현)에 있는 삼위산(삼위산)과 동방의 태백산을 살펴보고 태백산으로 가고 싶다는 한웅의 뜻을 허락하여 태백산으로 파견하였다. (6천년전) 이 때 한인천제께서는 제세 핵랑군이라 불린 문명 개척단 3천명과, 천부인 3개를 주고 개천입교, 홍익인간, 제세이화를 만세 자손의 홍법으로 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한웅께서는 이를 배달국을 여는 개국의 창시 이념으로 하셨다.

 

당시 한웅의 동방 백두산 문명 개창시에 송화강-백두산 일대에는 토착민인 웅족과 호족이 살고 있었는데, 원주민은 호족이었고, 이주민은 웅족이었다. 호족은 사납고 약탈에 능했으나 점차 이들은 웅씨족에 의해서 융합되었다. 웅의 음은 검이며 검은 곧 신으로 불리었다. 또한 호는 불로, 불은 시로 변하였다. 그리하여 두 민족의 협력 건국으로 인하여 한웅께서 수도를 신시라 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이라 하였다.

(3)단군 조선시대


동아문명의 선도 역할을 하셨던 신시 배달국 시대의 통치자인 한웅은 큰 스승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을 대웅전이라 아는데 이는 거룩한 스승을 모신 성전이라는 뜻이다. 한웅이란 당시 우리 광명 민족을 이끌어 주신 거룩한 스승 (한:크다, 밝다 웅:수컷, 스승) 이라는 뜻이다.

배달국의 말기 단웅께서 웅씨 왕녀와 결혼하여 낳은 분이 초대 단국 성조이시다. 단군 성조께서는 신묘년 (BC 2370) 5월 2일에 탄생하셨다.

 

신인의 덕으로 원근에서 외경하여 14세 되는 갑진년에 웅씨왕으로부터 비왕으로 임명받아 24년간 대읍국의 국사를 섭정하였다. 38세 되는 무진년에 단국으로부터 돌아와 마지막 거불단 한웅천황께서 돌아가시자 아사달에서 천제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 단군왕검은 제사장과 통치자를 겸임한다는 의미의 관명이다. 단군 성조께서는 한인과 한웅 천황의 정통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옛 신교 정신을 부흥시켰고, 동방 문명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아의 대홍수는 단군성조께서 87세 되던 정사년 2월 17일에 단군 조선의 대영 토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홍수가 범람한 다음해인 88세 되던 무오년 7월 5일에는 운사 배달신으로 하여금 강화의 전등산에 삼랑성을, 마리산에는 제천단(참성단)을 쌓게 하였다.

 

105세 되던 갑술년 (BC 2217) 에는 태자 부루를 도산에 보내시어 <도산회의> 를 소집하고 순임금이 특파한 우에게 오행 치수의 비법을 전수해 주었다. 초대 단군 성조께서는 세계 문명의 시원 국가인 한국과 한웅천황의 대도 정신의 법통을 정통으로 전수 받으시고 황하, 양자강 유역, 만주 등의 동아시아 대부분을 통치하셨다. 전 영토를 삼한으로 나누어 부단군 격인 왕(한)을 두어 다스렸다. 만주와 중국 북부를 관할하던 진한은 단군의 직접 통치를 받았으며, 중국 동부는 번한, 한반도와 일본은 마한이 통치하였다.

참고서적 : 한단고기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 서희건, 고려원

소설 한단고기 - 김태영

한민족과 증산도

민속문화론 - 임재해, 문학과 지성사

 

* 원출처 : 한얼 한국고대사 미스테리(http://cafe.daum.net/hankook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