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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초교2

[인천인물 100인] 39. 이옥녀 - 박창례의 '평생단짝' , 학교 설립 때부터 든든한 후원자 이옥녀(1910~1987년) 선생은 박창례 선생과 늘 함께했다. 박 선생이 처음 보각선원 강당에서 야학을 열었을 때부터 이들은 함께였다. 이 선생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여장부'로 통했던 박 선생과는 달리 조용한 성격인 데다 늘 학교에 남아 박 선생의 교육사업을 뒷바라지했기 때문이다. 이 선생은 1910년 강화에서 태어났다. 이후 인천시내로 와서 1929년 인천영화여자보통학교(현 인천영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도포기했던 박 선생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동명초교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34년 일본 조도전대(현 와세다대) 고등여학교를 졸업했고, 1937년에는 경성보육학교를 졸업했다. 박 선생과 이 선생의 만남은 유년시절로.. 2006. 2. 28.
[인천인물100인] 39. 박창례 - 평등교육실천 '항도 페스탈로치' ▶ 박창례 선생이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학생들에게 우승기를 전달하는 모습. >39< 동명초교 설립 박창례 선생 사랑의 교육자, 스위스의 '페스탈로치'를 닮았다고 해서 '인천의 페스탈로치'로 불리는 박창례(1910~1983·여·인천동명초등학교 설립자) 선생. 일제 강점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교육받지 못한 수백여 지역 청소년들에게 우리 말과 역사를 가르친 참교육자였으나, 박 선생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설립한 동명초등학교(동구 송림동)에 남겨진 빛바랜 사진 몇 장이 고작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 후손이 없다는 이유도 있겠으나, 다른 인천 인물들과는 달리 지금껏 평생을 지역에서 '만인평등교육'을 실천한 그의 업적을 세상에 알린 단체나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선생은 1910.. 2006.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