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도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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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4 16:39 | VIEW : 19,206
국내성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장수왕의 평양 천도 전까지 고구려의 수도는 국내성이었다. 광개토태왕은 이 국내성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며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했다. 국내성은 평양 천도 뒤에도 고구려 3경(三京)의 하나로 정치적·군사적 중심지였다. 고구려의 성립에서 멸망까지 700년을 함께 했던
국내성이 약 70년 만에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위 사진은 1930년대의 국내성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것이다. 1930년대
국내성은 잘 다듬은 네모꼴의 돌로 쌓은 4각형의 석축성의 모습을 볼 수 있어, 700년 동안 중심지였던 국내성의 위용이 남아 있다. 하지만
현재에는 성이 있었다는 흔적만 보일 뿐이다. 게다가 뒤쪽에는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국내성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1930년대 국내성 북서쪽 망루를 찍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망루는 파손되었고, 망루의 하단 1m 정도만이 최근
복원되었다. 같은 곳을 찍은 사진인지 착각이 들 정도이다.
파손이 아닌 복원 때문에 많이 달라진 유적들도 있다. 주로 장군총 등의
계단식 적석총들이다. 나무들과 잡초가 무성했던 장군총은 현재 말끔하게 복원되었다. 하지만 이런 복원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동북공정 등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장군총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이 사진들은 9월 22일(금)부터 12월 22일(금)까지 '집안 고구려 유적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이름의 기획전을 여는 성균관대
박물관(관장 송재소)에서 도깨비뉴스에 보내온 것들이다.
기획전은 1930년대 옛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현 집안) 일대를 당시 일제
총독부 박물관장이던 후지타 료오사쿠(藤田亮策. 경성제대 교수)가 촬영한 ‘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통구12호 벽화, 오회분 5호묘 발굴사진 등 미공개 유리원판사진 120여점을 현대의 기술로 재촬영하고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촬영지점 동일)과
나란히 전시한 것이다.
태왕릉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성균관대 박물관에 의하면 그동안 옛날의 사진을 보여주는 전시는 많았지만, 옛날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는 전시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옛날에 촬영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송재소 박물관장는 “이번 전시는 고구려사 연구의 기초 자료를
학계에 제시할 목적으로 기획되었다”며 “이를 위해 유리원판을 복원촬영하여 인화하고, 2차례에 걸쳐 중국 집안을 직접 답사하여 1930년대에
촬영된 위치를 찾아 같은 위치에서 다시 촬영하는 수고를 감수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성균관대 박물관에서 도깨비뉴스에 보내온 사진
자료들이다.
환도산성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장군총 배총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광개토태왕비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북대석릉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천추총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우산 385호묘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모두루묘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오회분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국내성 1930년대(위) 모습과 현재의 모습
통구12호미공개벽화
도깨비뉴스 리포터 아사달 youngkang21@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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