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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푸엥카레 추론

by 아름다운비행 2006. 8. 22.

 

* 출처: http://lulunouz.net/tag/푸앵카레

 

 

수학계 밀레니엄 난제 '푸앵카레추측' 풀렸다

한 문제를 풀 때마다 상금 100만달러가 수여되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풀지 못한 '밀레니엄 7가지 난제' 중 한 문제인 '푸앵카레 추측'을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 증명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1일 보도했다.

미국의 부호 랜던 클레이가 지난 2000년 한 문제당 100만달러씩 총 7백만달러를 내건 '밀레니엄 난제'는 '리만 가설'과 '양-밀스 이론과 질량 간극 가설', ‘내비어-스톡스 방정식’, ‘푸앵카레 추측’, 'P 대 NP 문제', ‘버치와 스위너톤-다이어 추측’, ‘호지 추측’ 등 지금까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7가지 미해결 수학문제를 일컫는다.

'밀레니엄 난제'는 지금까지 수많은 수학자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풀리지 않아 ‘수학의 에베레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푸앵카레 추측은 ‘어떤 하나의 밀폐된 3차원 공간에서 모든 폐곡선이 수축돼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반드시 원구(圓球)로 변형될 수 있다’는 추론으로 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스테클로프 수학 연구소의 그리고리 페렐만은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인터넷 홈페이지에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짤막한 논문을 게시해 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pdf파일을 통해 각각 22페이지와 39페이지로 돼 있는 논문은 '푸앵카레'라는 단어 조차 나와 있지 않아 처음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푸앵카레 추측을 풀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세계 수학계는 이 때문에 그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정작 페렐만은 이 논문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며 입을 닫아 버렸다. 은둔적 학자 스타일의 페렐만이 권위적인 세계 수학계에 이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상금 100만달러에도 역시 관심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세기 최고의 수학 문제를 풀고도 논문으로 자세히 발표하지 않고 인터넷에 짧게 올린 것 역시 그의 권위파괴주의적인 사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수학계가 그의 논문을 몇 년간 검증한 결과 페렐만의 주장은 푸앵카레의 추측을 푸는데 거의 완벽한 해답을 제시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금을 거머쥐게 된 것은 페렐만이 아닌 미시간대학의 클레이너와 로트 교수로 이들은 페렐만의 짧은 논문을 검증한 끝에 300쪽에 달하는 '푸앵카레의 추측 증명' 논문을 발간해 상금을 받을 전망이다.

클레이 수락 연구소의 제임스 칼슨 회장은 "푸앵카레의 추측을 상세히 풀어내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학자에게 상금을 수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칼슨 회장은 또 "내 생애에 남은 6문제 중 한 문제라도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푸앵카레의 추측 역시 풀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은둔 수학자인 페렐만은 이 어려운 세기의 난제를 풀고도 상금을 받거나 세상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키지 못하게 됐다. 그는 16살의 나이인 82년 당시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출전해 우승을 한 영재로도 알려져 있다.


출처 : 머니투데이





부드러운 행동의 수학
푸앵카레 추측



  앙리 푸앵카레는 1854년 프랑스 낭시에서 태어났다. 푸앵카레 가문은 전혀 과장 없이 평가한다고 해도 크게 성공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앙리의 아버지 레옹은 의학교수였고, 앙리의 사촌인 레이몽은 여러 차례 프랑스 수상을 지냈으며,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 대통령을 역임했다. 앙리 역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혁신적인 수학자 겸 물리학자 중 하나가 되었다. 앙리는 아인슈타인에 앞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는 영광을 누릴 문턱까지 갔을 뿐 아니라, 이른바 대수 위상학이라는 현대 수학의 매우 중요한 분야를 거의 혼자서 창조한 공로로 (또한 다른 많은 공로로) 역사책들 속에 확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수 위상학에 관한 그의 공로는 보다 최근에 주목받게 되었다. 수학의 여러 분야와 천체역학과 현대 물리학과 심지어 심리학을 넘나드는 엄청나게 넓은 지식과 성취로 인해서 푸앵카레는 최후의 위대한 보편 과학자로 추앙된다.

  리만과 마찬가지로 개념에 기반을 둔 수학 접근방식을 수용한 푸앵카레는 역시 리만과 마찬가지로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근시였고 근육 발달이 나빴고, 한동안 심하게 디프테리아 1 를 앓았다. 그러나 일종의 문제아였고 평생 동안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 리만과는 달리, 푸앵카레는 예술과 체육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탁월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시절 푸앵카레는 탁월한 작문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능력은 훗날 그를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해설가 중 한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푸앵카레는 「과학과 가설(Science and Hypothesis)」(1901), 「과학의 가치(The value of science)」(1905), 「과학과 방법(Science and Method)」(1908)과 같은 유명한 대중과학서들을 썼다.

  1862년에서 1873년까지 푸앵카레는 낭시에서 뤼세(중등학교)를 다녔다. 오늘날 그 학교는 푸앵카레를 기념하여 뤼세 앙리 푸앵카레로 개명되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는 여러 차례 전국 규모 학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부터 그는 파리에 있는 유명한 종합기술학교(Ecole Polytechnique)에 들어갔다.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그가 기계적인 암기에서뿐만 아니라 심층적인 학습내용에서도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했다고 전했다. 푸앵카레는 흔히 시각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발상들을 연결시키는 데에 탁월했다.

시각적인 사유를 선호하는 푸앵카레의 성격은 그가 일생 동안 이룬 수많은 수학적 업적들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2 수학자로서 활동한 기간 내내 푸앵카레는 리만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얻은 결과에 기반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과거에 이룬 업적에 기반해서 작업하기보다는, 최초 원리들부터 스스로 연구하는 것을 선호했다.

  1875년 종합기술학교를 졸업한 푸앵카레는 광업학교(Ecole de Mines)로 진학했고, 이어서 베술에서 광업 기술자로 취직했다. 그는 일생 내내 광업의 모든 측면에 관심을 두었지만, 당시 그는 스스로 열망하는 것이 수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술에서 일하는 동안 푸앵카레는 파리 대학 샤를 에르미트의 지도하에 미분방정식에 관한 박사논문을 썼다. 박사학위 취득 후 그는 1879년 캉 대학의 교원직을 얻었고, 불과 2년 후에 파리 대학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 수학자로서 그가 지닌 놀라운 재능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무미건조하고 혼란스러운 그의 강의를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1886년 푸앵카레는 소르본 대학 수리물리학 및 확률론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1912년 58세의 이른 나이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종합기술학교 교수직과 소르본 대학 교수직을 유지했다.

  푸앵카레는 수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들 중 하나로 꼽는다─ 오늘날 '대중 과학'이라고 불리게 된 분야에서 탁월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수학적 사유의 본성에 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08년 파리 일반 심리학 연구소에서 '수학적 발명'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사유과정을 성찰한 것에 기반을 두고 수학적 창조력에 관해서 유명한 강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파리 고등연구학교(Ecole des Hautes Etude) 심리학 연구소 소장인 에두아르 툴루즈가 진행하고 있던 고도로 성공한 사람들의 작업습관에 관한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툴루즈는 수학자에 관한 연구결과를  1910년 책으로 출간했다. 그 책의 제목은 간단히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e)」이다.

  툴루즈에 따르면 푸앵카레는 엄격한 일정계획을 지켰다. 푸앵카레는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정오까지 수학을 연구했고,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다시 수학을 연구했다. 늦은 저녁 시간에 그는 관심 있는 기사들을 읽기도 했지만, 그외에는 모든 심각한 작업을 피했다. 그는 수학적으로 훈련된 두뇌는 잠든 사이에 잠재의식적으로 수학 문제들을 연구한다고 믿었기에, 편안한 잠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툴루즈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푸앵카레가 한창 문제에 몰두해 있을 때는 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가 더 이상 전진할 방법을 모르는 지점에 도달하면, 그는 작업을 중단하고 무언가 다른 일을 했다 ─ 그는 그의 잠재의식적 정신이 계속해서 문제를 숙고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푸앵카레는 이렇게 썼다 : "우리는 논리를 통해서 증명하고, 직관을 통해서 발명한다" 3 그는 수학적 도출과정이 공리화되고 (원리적으로) '기계화'될 수 있다는 힐베르트의 견해를 특히 못마땅히 여겼다. 푸앵카레는 힐베르트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 최후의 보편 과학자

  푸앵카레의 관심은 수학의 여러 영역들과 물리학과 과학철학에까지 걸쳐 있었다. 그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다섯 분야 4 모두에서 회원으로 선출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또한 1906년에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했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겉보기에 전혀 다른 영역들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푸앵카레는 여러 다양한 각도에서 그리고 흔히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물리학에서 그가 이룬 업적들 중에는 광학, 전기, 전신, 탄성, 열역학, 포텐셜 이론, 천체역학, 우주과학, 유체역학, 양자 이론, 상대성 이론에 관한 연구가 포함된다.

  아직 20대일 때에 푸앵카레가 수학에서 이룬 중요한 업적 하나는 오늘날 보형함수 5 라고 불리는 함수 개념을 만들어내고 그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보형함수는 복소수에서 복소수로 가는 특수한 종류의 함수들이다. 그 함수들은 젊은 시절 푸앵카레가 천착한 일군의 문제들로부터 나왔다. 훗날 「과학과 방법」에서 푸앵카레는 그가 어떻게 그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아무 성과 없이 한동안 문제와 씨름한 후에 푸앵카레는 어느날 의식적으로는 수학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서 버스에 올랐다. 그때 갑자기 새로운 종류의 함수들을 정의할 수 있게 해 주는 핵심적인 착상이 떠올랐다.

  수학자로서 말년에 이른 후 푸앵카레는 복소수를 포함한 함수들에 관한 연구를 더 심화시켰다. 일반적으로 수학자들은 다수의 복소변수들을 포함하는 해석적 함수에 관한 엄청나게 중요한 이론을 창안한 인물이 푸앵카레라고 평한다. 생애의 여러 단계에서 푸앵카레는 자신의 재능을 또한 수 이론과 기하학에도 투입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위상학이라는 수학 분야에서 푸앵카레가 이룬 업적이다.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문제는 위상학에서 등장한다. 위상학의 창시자는 19세기 중반 가우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었지만, 위상학이 진지하게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895년 푸앵카레가 「위치의 분석(Analysis situs)」이라는 저술을 출간한 이후이다. 그 한 권의 책에서 푸앵카레는 사실상 그 후 50년 동안 위상학을 이끈 모든 개념들과 기법들을 소개했다.

  위상학은 일종의 '초기하학(ultra geometry)'이다. 위상학은 표면을 비롯한 여러 수학적 대상들의 일반적인 성질을 다루는 평범한 기하학과 미적분학으로부터 나왔다. 푸앵카레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위상학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수학 기법들을 적용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은 푸앵카레가 이 새로운 기하학을 연구할 즈음에 범했던(그리고 신속하게 발견했던) 오류의 산물로 우연히 등장했다. 위상학의 관심사는 대부분 3차원 이상의 대상들이다. 푸앵카레가 범한 오류는 2차원 대상과 관련해서는 매우 명백한 사실이 3차원 이상의 유사한 대상에 대해서도 참이라고 가정한 것에 있었다.

  이 오류를 이해하고 푸앵카레 추측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아마도 2차원 위상학부터 간단히 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려 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차원 위상학은,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흔히 '고무판 기하학'이라고 불리는 수학이다.



▣ 고무판 기하학

  런던에 가 본 사람이라면 ─또한 런던에 가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그림1>에 있는 지도를 알 것이다. 그 지도는 런던 지하철 표준 지도이다. 런던 전역의 지하철 구내에서, 또한 관광 기념 셔츠나 커피 잔이나 접시에서 그 지도를 볼 수 있다. 1931년 런던 지하철 임시제도공으로 일하던 29세의 젊은이 헨리 벡이 고안한 그 지도는 지금까지 그려진 지도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 지도를 개량하려는 많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지도는 묘하게도 사용의 편리함과 전체적인 외관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서, 런던의 현재를 상징하는 익숙한 그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하철 지도의 모범이 되었다.

<그림1> 실용화된 위상학 : 런던 지하철 지도


 

  하지만 그 지도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 지도가 위상학의 엄청난 힘을 예증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 지도는 단 두 측면만을 제외하고 모든 측면에서 부정확하다. 그 지도는 척도에 맞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점들 사이의 거리들이 모두 엉망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열차의 경로를 나타내기 위해서 예쁘게 그린 직선들이 실제 지하철 경로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철로 위를 달리는 지하철들은 회전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면서, 서 있는 승객들이 손잡이를 움켜쥐게 만들곤 한다. 또한 구간이 남북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고 해도, 실제 철로 구간이 남북 방향인 것은 아니다 ─ 실제 철로는 거의 동서 방향으로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지도가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는 두 측면 중 하나는, 특정한 역이 템스 강 북쪽에 그려져 있다면, 실제로 그 역이 템스 강 북쪽에 있으며, 남쪽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도가 표현하는 또 하나의 올바른 측면은 연결망이다. 역들이 각 노선에 놓여 있는 순서와 두 노선이 교차하는 지점(갈아타는 역)이 올바르게 표현되어 있다.

  사실상 지하철 승객이 지도를 통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오직 그 두 가지뿐이다 ─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리는지, 그리고 어디서 갈아타야 하는지 뿐이다. 지하철 지도는 승객들이 알아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다른 모든 세부적인 사항들을 무시함으로써 깨끗하고 보기 좋은 그림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림2>에 있는 업소용 냉장고 배선도도 각각의 전선이 얼마나 긴지 혹은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다. 배선도는 다만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만을 보여준다. 즉 연결망의 배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도안 역시 명확한 그림이 되기 위한 모든 다른 세부 사항을 무시하고, 냉장고를 만드는 기술자가 필요로 하는 단 하나의 정보를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유용성을 확보한다.

<그림2> 실용화된 위상학 : 업소용 냉장고 배선도는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만, 요소들의 정확한 배치나 전선의 길이 및 경로는 지정하지 않는다


 

  언급한 두 예는 모두 2차원 위상학의 핵심을 보여준다. 만일 지하철 지도가 완벽한 탄성을 가진 고무판 위에 그려져 있다면, 그 지도를 적당히 잡아늘이고 수축시켜서 세부까지 완벽하게 정확한 표준적인 지형 지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지도는 모든 구간에서 거리가 척도에 맞고, 선들의 방향이 정확할 것이다. 잡아늘이거나 줄이는 작업은 노선들이 여러 지점에서 만나는 방식을 바꾸어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를 수학용어를 써서 설명한다면, 연결망 6 의 배열은 '위상학적' 성질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연결망은 위상학적 대상이다. 당신은 전체적인 배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결망 속의 임의의 연결선을 비틀거나 잡아늘일 수 있다. 연결망을 변화시키려면 연결선을 끊거나 새로운 연결선을 추가해야 한다.

  임의의 연결망은 런던 지하철 지도가 지닌 성질들을 그대로 가진다. 그 성질들은 전기 회로도에서도, 회로 그 자체에서도, 컴퓨터 칩에서도, 전화 연결망에서도,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성립한다. 이 때문에 '고무판 기하학'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수학 분야 중 하나이다. 지하철 지도의 경우에는, 지도가 위상학적으로 정확하다면, 실제 도안이 어떠한지는 중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전기 회로나 컴퓨터 칩 설계에서도, 중요한 것은 연결망의 배열이다. 그 배열이 위상학적으로 정확하기만 하다면, 산출되는 장치가 가능한 한 빠르고 효율적이고 안정적이고 또한 (요즈음 요구되는 바에 따라) 작아지도록 실제 전선이나 전도성 경로(conductive channel)의 정확한 위치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설명하자면, 2차원 위상학(고무판 기하학)은 도형을 완벽하게 탄성적인 (가설적) 고무판에 그린 후, 고무판을 비틀고 잡아늘여도 그대로 유지되는 도형의 성질들을 연구한다. 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 연결망 배열은 그런 조작하에서 변함 없이 유지되는 여러 성질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지도는 늘 중요했고, 연결망의 수학은 특히 오늘날의 세계에서 중요하지만, 원래 위상학을 개발한 이유는 연결망에 응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실상 위상학의 발전을 가져온 동력은 그 어떤 응용 수학 분야에서 제기된 필요성도 아니었다. 위상학을 발전시킨 힘은 오히려 순수 수학 자체 내에서 나왔다. 위상학은 미적분학이 왜 타당한지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발전했다.



▣ 수학적 마술을 이해하기

  19세기 말이 다가올 즈음 수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에 기반해 ─때로는 명시적으로, 그러나 대개는 암묵적으로─ 있는 가정들을 자세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 연구 경향을 주도한 중요한 동기는 미적분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들로부터 나왔다. 17세기 중반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도입한 이래 수학자들은 미적분학을 광범위하게 또한 성공적으로 이용해왔다. 간단히 말해서 미적분학은 제대로 작동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적분학은 일종의 마술이었다.

  미적분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수학적 설명은 300년에 걸친 수많은 수학자들의 축적된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 설명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학자들은 실수와 무한 과정과 수학적 추론 자체의 본성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했다. 점점 더 세부적인 분석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추상화 수준이 극적으로 높아졌다(고도의 추상화에 의해서 세밀한 분석에 박차가 가해지기도 했다). 19세기 중반에 수학은 일종의 혁명을 겪었다. 그때 이후 수학은 점점 더 추상화되었다. 7 수학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간 동안 수학은 우리의 일상 경험에서 나온 패턴과 대상을 다루었다. 산술은 수를 다룬다. 수는 전문적으로는 추상적인 대상이지만, 우리의 삶을 이루는 뼈대 중 하나이다. 전문적으로는 매우 난해한 실수조차도 연속적인 직선이라는 간단한 직관으로부터 나왔다. 기하학은 우리가 매일 보는 모양들의 이상화된 변양태들을 다룬다. 확률론은 동전을 던져보거나 카드 놀이 혹은 주사위 놀이를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무작위한 사건들을 탐구한다. 대수학의 기호들과 방정식들은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추상적이게 보일지 모르지만, 18세기 후반 이전에는 그 기호들이 대부분 수를 나타냈으므로, 외관상의 추상성은 사실상 언어적 착각에 불과했다.

  반면에 19세기는 일상 경험의 일부가 전혀 아닌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다고 간주된─ 수많은 새로운 종류의 대상들과 패턴들의 등장을 경험했다(그 대상들 대부분은 기존 수학을 조심스럽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으므로, 그들 역시 일상적인 삶의 일부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감추어진 골격에 해당하는 부분들이다). 지난 150년 동안 수학자들이 연구한 새로운 대상과 패턴 중에는, 평행선이 서로 만나는 기하학 8 , 4차원 이상의 기하학, 차원이 무한히 많은 기하학, 도형의 대칭성을 나타내는 기호들을 사용하는 대수학 9 , 논리적 생각을 나타내는 기호들을 사용하는 대수학 10 , 2차원 혹은 3차원 공간에서의 운동을 나타내는 기호들을 사용하는 대수학 11 등이 있다.

  위상학의 발생도 이러한 새로운 추상적 대상들의 급증 속에서 이루어졌다. 위상학은 연속적인 변형에 의해서는 파괴되지 않는 도형의 성질들을 연구하는 '기하학'을 개발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그 새로운 기하학은 직선, 원, 정육면체 등의 개념에도, 또한 길이, 면적, 부피, 각도 등을 측정하는 작업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위상학이 연구하는 대상은 위상학적 공간이라고 불렸다(마찬가지로 기하학은 기하학적 공간을 탐구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학교 수학에 나오는 2차원 유클리드 공간은 기하학적 공간이다).

  미적분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과 위상학의 연관성은 매우 미묘하다. 본질만 얘기하자면, 두 연구는 모두 무한소를 다스리는 것에 의존한다. 미적분학에서는 무한소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위상학적 변환들은 왜 무한소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당신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알아야 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위상학적 변환들은 무한소를 참되게 이해하는 열쇠이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위상학적 변환의 본질은 변환 이전에 서로 '무한히 가깝게' 있던 두 점이 변환 후에도 서로 '무한히 가깝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잠시 후 나는 내가 왜 '무한히 가깝게'라는 표현에 따옴표를 붙였는지 설명할 것이다). 예를 들면 고무판을 잡아늘이기, 축소시키기, 비틀기는 가까이 있음이라는 성질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출발한 두 점은 그 조작들이 완결된 후에도 가까이 있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 장면에서 약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 이야기되는 가까이 있음 개념은 위상학적 공간에 있는 다른 모든 점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고무판을 잡아늘여서, 원래는 서로 가까이 있던 두 점이 우리가 보기에는 더 이상 가까이 있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가까이 있음'의 변화는 우리가 외부에서 부여한 기하학적 변화이다. 고무판의 관점에서 보면, 두 점은 여전히 서로 가까이 있다. 가까이 있음을 파괴하는 유일한 길은 고무판을 자르거나 찢는 것뿐이다 ─ 그리고 그런 조작은 위상학에서 금지되어 있다.

  위상학을 출범시키기 위해서 수학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음이라는 핵심 개념에 도달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들은 두 점이 '무한히 가깝게 있다'라는 가설적인 개념을 포착하는 방법을 찾는 일로부터 작업에 착수했다. 직관적으로 볼 때 위상학적 변환은 원래 무한히 가까이 있도록 만드는 성질을 가진다. 이 접근방식이 부딪힌 난점은 '무한히 가까이 있다'라는 개념이 잘 정의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12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위상학적 변화를 이해함으로써 수학자들은 위상학적 변환의 정확한 정의를 제시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 정의가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주제를 너무 많이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발견을 통해서 수학자들은 원래 분석 방향을, 말하자면, 뒤집을 수 있었다. 즉 이제 적절하게 정의되고 잘 이해된 위상학적 변환 개념을 이용해서 그들이 원래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던 '무한히 가까이 있음'이라는 직관적인 개념을 엄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무한히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제 있는 개념을 피하고, 대신에 위상학을 기반으로 삼아서 미적분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푸앵카레를 비롯한 수학자들이 위상학을 발전시킨 참된 이유였다.

  위상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제기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과연 위상학적 공간에 관해서 무엇인가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생각해보라. 만일 당신이 직선의 곧음이나 평면의 평평함 같은 중요한 성질을 내다버리고 논의를 시작한다면, 당신이 무엇인가 실제적인 가치를 가진 결론에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다. 위상학적 공간에는 직선 개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정된 모양 개념도 없고, 어떤 종류의 거리 개념도 없다.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점이 서로 가까이 있는지 여부뿐이다. 그 이야기만으로 미적분학을 튼튼히 기반 위에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만으로 위상학 자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을까?



▣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런던 지하철 지도의 예는 위상학이 전적으로 공허한 학문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놀랍게도 위상학은 가장 풍부하고 흥미롭고 중요한 현대 수학 분야 중 하나이다. 위상학은 수학, 물리학 그리고 삶의 여러 다른 행보에도 많이 응용된다. 한 사례만 이야기하자면, 초끈 이론의 수학적 토대가 바로 위상학이다. 초끈 이론은 우주의 본성에 관한 최신 물리학 이론이다.

  위상학들이 연구하는 주제 몇 가지를 살펴보자.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서 나는 2차원 위상학(고무판 기하학)에 머물면서, 일반적인 고등학교 기하학에 나오는 성질들 중 어떤 것들이 위상학에서도 유효한지 검토하고자 한다. 고무판을 잡아늘이거나 비틀면, 직선이 곡선으로 변하고 거리와 각도가 변할 것이므로, 이 익숙한 기하학적 개념들은 위상학에서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이 곧거나 굽었거나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을 달지 않는다면, 위상학에서도 여전히 선 개념은 있다. 또 무엇이 있을까? 닫힌 고리, 즉 자기 자신과 만나서 닫히는 선은 어떨까? 만일 당신이 완벽하고 탄성적인 고무판에 고리를 그린다면, 고무판을 마음대로 늘이고 줄이고 비튼다 할지라도 고리는 여전히 고리일 것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위상학적 정리라고 부를 만한 최초의 수학적 결론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결론은 위대한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에 의해서 얻어졌다. 1735년 오일러는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라는 오래 된 수수께끼를 풀었다.

  동프로이센 프레골랴 강가에 위치한 도시 쾨니히스베르크 ─현재 지명은 칼리닌그라드이며 러시아 영토이다─ 에는 한 개의 다리로 연결된 두 섬이 있다. 한 섬은 양쪽 강안과 각각 한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다른 섬은 양쪽 강안과 각각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3>은 섬과 다리가 있는 도시의 윤곽을 보여준다.

<그림3> 오늘날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인 쾨니히스베르크의 윤곽, 1735년에 해결된 문제의 원천이 된 일곱 개의 다리가 보인다


 

  많은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은 매주 일요일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즐겼고, 당연히 그들의 산책로에는 여러 다리들이 포함되곤 했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 모든 다리를 꼭 한 번씩 거치는 산책 경로가 존재할까?

  오일러는 섬들과 다리들의 정확한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음으로써 그 문제를 풀었다. 중요한 것은 다리들이 연결된 방식, 즉 다리들에 의해서 형성된 연결망이었다. <그림4>에서처럼 섬─다리 연결망을 단순화시켜 그려도 문제는 동일하게 유지된다. 단순화된 도안에는 오직 일곱 개의 선(일반적으로 연결망의 '모서리'라고 불린다)으로 연결된 네 개의 점(연결망의 '꼭지점' 혹은 '마디점'이라고 불린다)만 있다.

<그림4>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연결망. 연결망의 마디점들(A, B, C, D)은 땅을 나타내고 모서리들(선들)은 다리를 나타낸다


 

  이제 오일러는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당신이 어떤 연결망을 돌아다녔는데, 각각의 모서리를 꼭 한 번만 지나면서 돌아다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출발점이나 끝점이 아닌 모든 마디점들은 짝수 모서리들이 만나는 점들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모서리들을 그 마디점으로 들어오는 모서리와 나가는 모서리로 남김 없이 짝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의 다리 연결망에서는 네 꼭지점 모두에서 홀수 모서리들이 만난다. 그러므로 모든 모서리를 한 번씩 거치는 경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다리를 꼭 한 번씩 건너는 쾨니히스베르크 산책 경로는 존재할 수 없다.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 해결은 오일러가 위상학과 관련해서 증명한 최초의 정리이지만 ─사실상 세계 최초의 위상학적 정리이다─ 그것이 오일러가 증명한 최후의 정리이거나 가장 중요한 정리인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정리의 명예는 오일러가 연결망과 관련해서 발견한 놀라운 위상학적 결론에 돌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오일러는 평평한 표면에 그려진 임의의 연결망에서, V가 꼭지점(마디점)의 개수이고, E가 모서리의 개수이고, F가 '면'(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모서리들로 둘러싸인 구역)의 개수라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공식이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V - E + F = 1

 

예를 들면 오일러가 연구한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연결망의 경우 V=4, E=7, F=4이다. 따라서

V - E + F = 4 - 7 + 4 = 1

이다. 또다른 예로 <그림5>에 있는 간단한 연결망을 살펴보자. 이 연결망의 경우 V=7, E=10, F=4이므로,

V - E + F = 7 - 10 + 4 = 1

이 성립한다.

<그림5> 오일러의 연결망 공식 증명. 이 연결망의 경우 V=7, E=10, F=4이므로, V - E + F = 1 이다


 

  놀랍게도 계산 값 V - E + F는 지금까지 그려진 모든 연결망에서, 그리고 미래에 그려질 모든 연결망에서 1이다. 오일러는 이 사실을 매우 간단하게 증명했다. 기본적인 생각은 임의의 연결망에서 시작해서 모서리와 끝-마디점(연결된 모서리가 오직 하나뿐인 마디점)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가는 것이다. 끝-마디점과 연결되지 않은 모서리 하나를 지우면, E와 F가 1씩 줄어들고 V에는 변화가 없다. 따라서 계산 값 V - E + F는 변하지 않는다. 이 지우기 과정은 단 하나의 마디점만 남을 때까지 계속 될 수 있다. 그렇게 한 개의 마디점만 있는 별볼일없는 연결망의 경우, V=1, E=0, F=0이므로 V - E + F = 1이다. 그런데 계산값 V - E + F는 지우기 과정 전체에 걸쳐 동일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았던 원래 연결망의 V - E + F 값은 1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오일러는 거의 최초로 위상학 문제를 풀었고, 거의 최초로 위상학 정리들을 증명했지만, 참된 의미에서 위상학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푸앵카레가 등장한 19세기 후반 이후였다.



▣ 표면 아래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위상학은 도형이나 대상을 연속적으로 변형시켜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성질들을 연구한다. 연속적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은 자르거나, 찢거나, 이어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수학자들은 흔히 뚜렷한 점이나 주름을 만들거나 없애는 조작도 추가로 금지한다. 나는 위상학에 관한 이 간략한 설명에서 그 추가 금지조항도 포함시킨 보다 엄격한 위상학 개념을 채택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위상학에서는 럭비 공과 축구 공이 동일하다. 이 둘은 또한 테니스 공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이 세 종류의 공은 각자 상대방으로 연속적으로 변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상학에서는 오직 한 종류의 '공'만 존재한다. 일상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공들을 구분할 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크기와 모양이다. 그러나 크기와 모양은 위상학적 성질이 아니다.

  위상학자들은 커피 잔과 도넛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그림6>. 부드러운 찰흙으로 만든 도넛을 상상해보라. 당신은 그 찰흙 도넛을 주물러서 도넛 모양을 (손잡이가 달린) 커피 잔 모양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도넛 고리에 있는 할흙 대부분을 한 곳에 모아서 잘 주무르면 커피 잔의 몸통을 만들 수 있다. 도넛의 구멍은 커피 잔의 손잡이가 된다. 실제 찰흙으로 이 변형을 실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이 상상하는 완벽하게 탄성적인 찰흙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변형이 이루어진다.

<그림6> 도넛과 커피 잔은 위상학적으로 동일하다. 하나를 연속적으로 변형하여 다른 하나로 만들 수 있다


 

  덧붙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자꾸 도넛을 언급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유혹을 예방하기 위해서 수학자들은 ─그들은 앉은 자세로 일하기 때문에 비만이 될 위험이 높으며, 커피 또한 대단히 좋아해서, 최근의 헝가리 수학자 폴 에르되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수학자는 커피를 먹고 정리를 뽑아내는 기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도넛 모양을 토러스라고 부른다.

  당신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 위상학이라는 분야가 커피 잔과 도넛을 동일시하는 분야인만큼, 초기 위상학 연구의 많은 부분은 주어진 두 모양이 위상학적으로 다르다고 판단할 기준을 탐구하는 데에 할애되었다. 푸앵카레 자신도 이 탐구를 주도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예를 들면 임의의 두 공은 위상학적으로 동일하고, 임의의 두 토러스 모양도(원형이든, 타원형이든, 그밖에 어떤 모양이든) 위상학적으로 동일하지만, 임의의 공과 임의의 토러스는 위상학적으로 구별된다. 직관적으로 볼 때 명백히 구별되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구를 연속적으로 변형시켜 토러스로 만들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특별히 문제될 법하지 않은 '듯하다'(혹은 '것 같다')라는 말에 있다. 그런 변형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당신이 한 시간 정도 시도했지만 변형과정을 찾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변형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당신은 <그림7>에 있는고리 수수께끼에 나오는 모양 (a)를 모양 (b)로 연속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가? 쉽게 떠오르는 방법은 연결된 고리 하나를 (c)처럼 자른 후, 두 고리를 분리하고, 이어서 자른 고리를 다시 이어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자르지 않고도 변형시키는 방법이 있다. 당신은 놀랍게도 그 방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방법을 찾는 동안 당신은 두 대상이 위상학적으로 동일한지 여부를 완전히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가 중요한 연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림7> 고리 수수께끼. 대상 (a)가 완벽하게 탄성적인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상상하라. 당신은 그 대상을 (b)로 변형시킬 수 있는가? 간단한 방법은 (c)에서처럼 고리 하나를 끊은 다음 다시 이어붙이는 것이다. 이때 최종 이음새가 원래와 동일하기만 하다면, 이 변형은 위상학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조작이다. 그러나 자르지 않고도 변형시키는 방법이 있다. 당신은 그 방법이 보이는가?


 

  다시 반복하지만,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바꾸는 연속적인 변환과정을 찾을 수 없다는 것만으로는, 두 대상이 위상학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완벽하게 증명되지 않는다. 완벽한 증명을 위해서는, 두 대상 중 하나는 가지고 있고 다른 하나는 가지고 있지 않은 특정한 위상학적 성질 ─즉 연속적인 변형 하에서 변함없이 유지되는 성질─ 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성질 하나를 접했다. 앞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임의의 연결망에서 V - E + F 값은 위상학적 성질이다. 그 값은 임의의 연결망에서 동일하다. 뿐만 아니라 연결망이 그려진 표면을 연속적으로 변형시켜도 연결망이 연결된 방식은 변하지 않으므로, V 값도 E 값도 F 값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펴본 경우, 즉 평면에 그려진 연결망의 경우 V - E + F 값은 1이 된다(평면에서 V - E + F 값이 1이므로, 어떻게 구겨지고 비틀렸든 상관없이, 임의의 얇은 판에서 V - E + F 값은 1이다). 한편 구면에 그려진(즉 구면의 일부만 덮는 것이 아니라 구면 전체를 덮는) 연결망에서는 V - E + F = 2 이다. 토러스에 그려진(역시 토러스 전체를 덮는) 연결망에서는 V - E + F = 0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2차원 평면과 구면과 토러스가 위상학적으로 다르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구멍이 두 개인 토러스(8자 모양 토러스)에 그려진 연결망에서는 V - E + F = -2 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중 토러스가 평면이나 구면이나 토러스와 다름을 안다.

  물론 이 특수한 네 표면들의 경우에는, 그 어떤 것도 다른 것으로 연속저으로 변형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앞에서 본 연결된 고리 수수께끼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신이 구면이나 토러스를 벗어나 약간만 더 복잡한 모양을 탐구하더라도, 사태는 훨씬 덜 명백해진다.

  특정한 표면에 그려진 임의의 연결망의 V - E + F 값은 수학자들이 말하는 표면의 위상학적 불변항 중 하나이다. 이는 그 값이, 표면을 위상학적으로 변환시킨다(연속적으로 변형시킨다) 할지라도 불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값이 평면에 그려진 임의의 연결망에서 동일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V - E + F 값은 표면의 오일러 특성값이라 명명되었다. 오일러 특성값은 특정한 두 표면이 위상학적으로 동치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다. 같은 역할을 하는 여러 특징들을 표면의 위상학적 불변항들이라고 부른다.

  또다른 위상학적 불변항으로 표면의 색수(chromatic number)가 있다. 색수는 지도를 색칠하는 것과 관련된 고전적인 문제로부터 기원했다. 1852년 프란시스 거스리라는 영국 수학자가 다음과 같은 평범한 듯한 질문을 제기했다 : 임의의 지도에 있는 구역들에 색을 칠하려면 몇 개의 색이 필요할까? 한 가지 지켜야 할 조건은 경계선을 공유하는 임의의 두 구역이 다른 색으로 칠해져야 한다는 것이다(두 구역이 한 점에서만 만난다면, 그 두 구역은 경계선을 공유하는 구역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네 가지 색을 필요로 하는 지도를 그리는 것은 매우 쉽다. 하지만 혹시 다섯 가지 색을 필요로 하는 지도도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증명하는 데에는 100년 이상이 필요했다. 1976년 마침내 완성된 증명은 고도로 전문화된 수학적 논증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중요하게 이용한다. 사실상 오늘날 4색 정리라고 불리게 된 그 사실의 증명은 컴퓨터 이용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된 최초의 중요한 수학적 증명이었다.

  4색 정리는 분명히 위상학적 결론이다. 왜냐하면 지도가 그려진 표면을 연속적으로 변형시켜도 공유하는 경계선들의 패턴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계선을 공유하는 두 구역은 변형 후에도 경계선을 공유할 것이며, 변형 후 경계선을 공유하는 두 구역은 변형 전에도 경계선을 공유한다. 따라서 변형 전에 지도를 올바르게 색칠했다면, 그 색칠하기는 변형 후에도 올바를 것이다.

  원래 거스리가 던졌던 질문과 4색 정리는 평면에 그려진 지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임의의 표면에 그려진 지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표면의 색수는 그 표면에 그려진 임의의 지도를 색칠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색깔 수이다. 4색 정리에 의해서 평면의 색수는 4이다. 구면의 색수 또한 4이다(4색 정리의 증명은 평면에 그려진 지도에 대해서도, 구면에 그려진 지도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토러스의 색수는 7이다.



▣ 측면들을 고려하기

  또 하나의 위상학적 불변항은 '측면' 개념에서 기원했다. 표면이 한 측면만을 가지는지 혹은 두 측면을 가지는지 물을 수 있다. 얼핏 보면 이상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모든 표면은 앞면과 뒷면, 즉 두 측면을 가지지 않는가?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오직 한 측면만을 가지는 ─앞면만 있는─ 표면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폭이 좁고 긴 ─예를 들면 폭이 2센티미터이고 길이가 90센티미터인─ 종이띠를 구해서, 그 띠를 한 번 꼰 다음, 양끝을 이어붙여서 <그림8>에서 보는 것과 같은 꼬인 고리를 만들자. 그 꼬인 고리는 측면이 오직 하나뿐인 표면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려면, 띠의 중앙선을 따라 연필로 선을 그어보면 된다. 당신은 당신이 긋는 선이 고리를 두 번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표면의 한 측면에 있는 선이 다른 측면으로 가려면 반드시 모서리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당신이 꼬인 고리에 그은 선은 모서리를 통과하지 않고 두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는 그 꼬인 고리가 오직 한 측면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꼬인 고리는 뫼비우스의 띠라고 부른다. 뫼비우스는 뫼비우스 띠를 발견한 독일의 수학자이다.

  뫼비우스의 띠는 오직 한 측면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오직 한 개의 모서리만을 가진다. 당신은 연필로 모서리를 검게 칠하는 방법으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일반적인(즉 원통형의) 고리의 모서리를 색칠하면, 다른 모서리 하나는 칠해지지 않은 채 남는다. 하지만 당신이 뫼비우스 띠의 모서리를 색칠하면, 칠해지지 않은 모서리가 남지 않는다. 칠하기를 마치면, 하나뿐인 모서리 전체가 칠해져 있다.

  뫼비우스 띠의 예가 보여주듯이, 측면 개념은 모서리의 존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대부분 수학자들은 모서리가 없는 표면 ─이른바 닫힌 표면─ 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서리가 사실상 표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위상학적 성질들은 표면의 내재적인 구조 ─표면이 어떻게 비틀리고 꼬였는지─ 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하나 혹은 다수의 모서리를 가진 표면 각각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그 표면과 거의 동일한 성격을 가진 닫힌 표면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구면은 유한 평면(예를 들면 원반)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구면에 대해서 어떤 위상학적 결론을 증명하면, 그 증명은 직접적으로 유한 평면에 관한 귀결을 낳는다(역도 마찬가지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완벽하게 잡아늘일 수 있는 고무 원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원반의 모서리를 한 곳으로 모아 표면 전체가 닫힌 주머니 모양 ─위상학적 구면─ 이 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뫼비우스의 띠에 대응하는 닫힌 표면은 클라인 병이라고 부른다. 그 명칭은 그 표면을 발견한 독일의 수학자 펠릭스 클라인에게서 나왔다. 클라인 병에는 가장자리가 없으며, 내부도 외부도 없다(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내부와 외부가 동일하다). 이론적으로 고찰하면, 뫼비우스 띠 두 개를 서로 맞대어 꿰매면 클라인 병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이론적으로 고찰한다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평범한 3차원 공간에서는 그 꿰매붙이기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클라인 병은 (수학적 대상으로서) 오직 4차원 공간에서만 존재한다. 우리의 3차원 공간에서 클라인 병을 구현하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클라인 병의 자기 관통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림9>에 있는 대상을 얻을 수 있다.

<그림9> 클라인 병을 표현한 그림. 클라인 병은 주위 공간을 내부와 외부로 나누지 않는 닫힌 표면이다. 3차원에서는 오직 표면이 자기 자신을 관통하는 것을 허용해야만 클라인 병을 구성할 수 있다. 4차원에서는 자기 관통 없이도 클라인 병을 구성할 수 있다


 

  나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수학자들이 그런 자기 관통 클라인 병의 유리 모형을 연구실에 장식품으로 가지고 있다. 4차원에서는 클라인 병이 자기 자신을 관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거리를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오직 4차원에만 존재하는 대상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 사소한 반론은 수학자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수는 제곱근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앎은 복소수를 개발하고 더 나아가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수학자들을 막지 못했다. 수학의 엄청난 힘의 많은 부분은 3차원 세계에 사는 존재로서 우리가 가진 일상적인 개념을 넘어서는 대상을 연구하는 데에 수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우리는 클라인 병에 그려진 연결망의 성질들을 탐구할 수 있다. 탐구해보면, 클라인 병의 오일러 특성값(즉 V - E + F 값)이 토러스와 마찬가지로 0임을 알 수 있다. 아니, 그렇다면 클라인 병과 토러스가 위상학적으로 동치라는 말인가? 아니다. 오일러 특성값으로는 클라인 병과 토러스를 구별할 수 없지만, 색수로는 둘을 구별할 수 있다. 클라인 병의 색수는 6인 반면에 토러스의 색수는 7이다.

  오직 한 측면만을 가진다는 것에 대응하는 클라인 병의 위상학적 성질은 이른바 정향 불가능성이라는 특이한 개념이다. 클라인 병 표면이 정향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 표면에서는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할 수 없고,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클라인 병 표면에 작은 왼손을 그린 다음, 그 그림을 표면을 따라 충분히 멀리 끌고간 후(충분히 멀리 간다는 것은, 만약 클라인 병이 3차원에 있다면, 그림이 자기 관통 병목을 완전히 통과할 정도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당신은 그 그림이 마술처럼 오른손 그림으로 바뀐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 실험은 뫼비우스 띠에서 더 쉽게 해볼 수 있다. 뫼비우스 띠 표면에 작은 왼손을 그려라. 이어서 동일한 왼손 그림을 그 옆에 그리고, 계속해서 연이어 그리면서 띠를 돌아 원래 위치로 돌아오라. 원래 위치에 돌아온 당신은 왼손이 오른손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다. 당신이 클라인 병이나 뫼비우스 띠 표면에 작은 원을 그리고 그 원에 시계방향을 나타내는 화살표를 붙인다고 해보자. 만일 당신이 그 그림을 끌고 가거나 동일한 그림을 연달아 그리면서 움직여 표면 전체를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당신은 화살표가 반시계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림10>을 참조하라.

<그림10> 뫼비우스 띠의 정향 불가능성. 화살표를 밀어 띠를 한 바퀴 돌면, 화살표의 정향이 바뀐다


 

  표면을 따라 도형을 끌고 가는 방식으로 왼손을 오른손으로 혹은 시계방향을 반시계방향으로 바꿀 수 없는 표면은 정향 가능한 표면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면 구면(혹은 평면)은 정향 가능하며, 토러스와 이중 토러스도 정향 가능하다. 반면에 그런 바꾸기가 가능한 클라인 병(혹은 뫼비우스 띠)과 같은 표면은 정향 불가능한 표면이라고 불린다. 정향 가능성(혹은 정향 불가능성)은 위상학적 불변항이다.



▣ 분류가 시급하다

  위상학이 이룬 초기 성과 중 하나는 단 두 가지 위상학적 불변항, 즉 오일러 특성값과 정향 가능성만 있으면 임의의 닫힌 표면들을 구별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일 두 표면이 동일한 오일러 특성값을 가지고 또한 둘 다 정향 가능하거나 둘 다 정향 불가능하다면, 그 두 표면은 실제로 동일하다 ─ 한 표면을 어떻게 다른 표면으로 연속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지 당신이 평생 동안 알아내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이 결론은 그 두 속성만으로 모든 표면들을 (위상학적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의미하므로 표면 분류 정리라고 불린다.

  개략적으로 말한다면, 표면 분류 정리는 구면을 기본 표면으로 설정하고 임의의 주어진 표면이 구면과 얼마나 다른지를 ─구면을 그 표면으로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찰하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증명되었다. 그 전략은 구가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이고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닫힌 표면이라는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과 상통한다.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이 경우 구면을 어떤 다른 표면으로 바꾸기 위해서 가해야 하는 조작은 일반적인 위상학적 조작인 연속적인 변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당신이 구면을 비틀고 구부리고 잡아늘이고 줄여서 어떤 다른 대상을 만들었다면, 그 대상은 위상학적으로 구와 동일할 것이다. 주어진 표면을 구로부터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고찰함으로써 표면들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비틀기, 잡아늘이기 등과 더불어 자르기와 이어붙이기를 허용해야 한다. 위상학작들은 이 조작과정을 '수술'이라고 부른다. 적절한 명칭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수술과정에는, 부분들을 잘라내고, 그 부분들을 비틀고 구부리고 잡아늘이고 줄이고, 다시 그 부분들을 꿰매붙이는 작업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분류 정리에 따르면, 임의의 정향 가능한 표면은 특정한 개수의 '손잡이'가 달린 구면과 위상학적으로 동치이다. 손잡이를 붙이려면, 구면에 구멍 두 개를 뚫고, 그 두 구멍을 관으로 연결하면 된다. <그림11>을 참조하라. 클라인 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3차원 공간에서는 뫼비우스 띠의 자기 관통을 허용하지 않는 한 그 꿰매붙이기를 수행할 수 없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4차원이 필요하다.

<그림11> 손잡이와 크로스캡. 표면에 손잡이를 붙이려면(왼쪽), 표면에 구멍 두 개를 뚫고, 두 구멍을 원통형 관으로 연결하면 된다. 크로스캡을 붙이려면(오른쪽) 구멍 하나를 뚫고, 구멍 경계선에 뫼비우스 띠를 꿰매붙이면 된다. 뫼비우스 띠는 단 하나의 모서리를 가지므로, 이 작업은 개념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3차원에서는 오직 띠가 자기 자신을 관통하는 것을 허용해야만 이 작업이 수행될 수 있다. 위상학의 한 근본 정리 ─표면 분류 정리─ 에 따르면, 임의의 부드럽고 닫힌 표면은 정해진 수의 손잡이나 크로스캡이 달린 구면과 위상학적으로 동치이다


 

  20세기 초에 푸앵카레를 비롯한 여러 수학자들은 표면과 유사한 고차원 대상 ─이른바 '다양체'─ 의 분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들은 2차원 표면에서 유효했던 전략과 유사한 전략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그들은 구면의 3차원 변양태(이른바 '3─구면')를 기본으로 설정하고, 임의의 3차원 다양체(줄여서 '3─다양체')가 3─구면과 얼마나 다른지를 고찰하는 방식으로, 모든 3─다양체를 분류하려고 했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구면이나 토러스 같은 정상적인 표면은 2차원 대상이다. 그 표면이 둘러싼 공간은 물론 3차원이지만, 표면 자체는 2차원이다. 평면을 제외한 모든 표면은 3차원 이상의 공간에서만 구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임의의 닫힌 표면은 3차원 이상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구면이나 토러스를 구성하려면 3차원이 필요하고, 클라인 병을 구성하려면 4차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구면, 토러스, 클라인 병은 2차원 대상이다. 이들은 두께가 없으며, 원리적으로는 평평하고 완벽하게 탄성적인 고무판으로부터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구면을 원(원은 2차원 공간에 있는 1차원 대상 ─곡선─ 이다)의 (3차원 공간에 있는) 2차원 변양태로 간주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구면의 (4차원 공간에 있는) 3차원 변양태를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상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대상을 결정하는 방정식들을 정식화하고, 그런 '대상'을 연구할 수 있다. 실제로 물리학자들은 그런 가상적인 대상들을 밥먹듯이 연구하고, 그로부터 얻은 결론들을 이용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한다. 3─다양체, 즉 표면의 3차원 변양태(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을 가진 공간에 존재한다)는 때로 초표면이라고 불린다. 구면의 3차원 변양태는 초구면이라고 불린다.

  수학적으로는 3차원에서 멈출 이유가 없다. 당신은 3, 4, 5, 6차원 혹은 임의의 차원을 가진 다양체를 결정하는 방정식들을 정식화할 수 있다. 이런 대상들을 연구하는 일 역시 한가한 사변이 아니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연구하는 수학적인 물질 이론들은 우리가 사는 우주가 11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 이론들에 따르면, 11차원 중 3차원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나머지 차원들은 전자기 복사와 같은 혹은 원자를 구성하는 힘들과 같은 다양한 물리적 특성들로 나타난다.

  푸앵카레는 해당 차원의 '구면'을 기본으로 삼고 수술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3차원 이상의 다양체들을 분류하려고 했다. 이 시도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주어진 (2차원) 표면이 구면과 위상학적으로 동치인지 여부를 판정해주는 간단한 위상학적 성질을 찾는 일이었다(우리가 지금 위상학을 논하고 있음을 상기하라. 심지어 정상적인 2차원 표면의 경우에도 사실상 연속적인 변형을 통해서 구면으로 바뀔 수 있는 표면이 겉보기에는 극도로 복잡할 수 있다).

  2차원 표면에 대해서는 그런 성질이 존재한다. 당신이 연필을 들고 구면에 단순한 폐곡선을 그린다고 해보자. 이제 그 폐곡선이 구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크기가 줄어든다고 상상해보자. 폐곡선이 줄어드는 데에 한계가 있을까? 당연이 없다. 당신은 점과 구분할 수 없을 때까지 폐곡선을 줄일 수 있다. 수학적으로는 폐곡선이 정말로 점이 될 때까지 줄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토러스에 폐곡선을 그린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당신은 점으로 줄어들 수 없는 폐곡선들을 토러스에 그릴 수 있다. 토러스의 구멍을 완전히 둘러싸는 폐곡선들, 그리고 토러스를 허리띠처럼 감는 폐곡선들은 무한정 줄어들 수 없다.

  표면에 그린 임의의 폐곡선을 점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은 구면에게만 있는 위상학적 성질이다. 즉, 어떤 표면이 있는데 그 표면에 있는 모든 각각의 폐곡선('모든'이 중요하다)이 표면을 떠나지 않으면서 점으로 줄어들 수 있다면, 그 표면은 위상학적으로 구면과 동치이다.

  3차원 초구면에서도 사정이 동일할까? 이것이 바로 1900년대 초 푸앵카레가 던진 질문이다. 그는 신속하게 '그렇다'라는 대답에 도달함으로써, 3차원 초표면 분류 정리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기를 바랐다. 그는 폐곡선들이 다양체 속을 움직이거나 변형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하기 위해서 호모토피 이론이라는 체계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실제 역사는 지금 내가 설명한 것과는 달랐다. 처음에 푸앵카레는 3─다양체에 대해서도 폐곡선-줄이기 성질을 이용해서 3─구면을 식별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 가정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음을 깨달았고, 1904년에는 자신의 의심을 담은 글을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어로) 다음과 같이 썼다 : "경계가 없는 콤패트한 3차원 다양체 V가 있다고 하자. V가 3차원 구면에 호모토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V의 근본 군이 사소한 경우가 있을까?" 전문 용어들을 걷어내고 이야기하면, 푸앵카레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 "어떤 3─다양체가 3─구면과 동치가 아니면서 폐곡선-줄이기 성질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 푸앵카레 추측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의 질문은 신속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여러 위상학자들이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연된 답변조차 듣지 못했다. 그리하여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혹은 반증)은 수학에서 가장 큰 명예가 걸린 과제 중 하나로 부상했다.

  진보는 오랜 세월을 통해서 일어나는 법이다. 1960년 미국의 수학자 스티븐 스메일이 5차원 이상의 모든 다양체에서 푸앵카레 추측이 참임을 증명했다. 즉 만일 5차원 이상의 어떤 다양체에서 그 다양체에 그려진 임의의 폐곡선이 점으로 줄어들 수 있다면, 그 다양체는 해당 차원 초구면과 위상학적으로 동치이다.

  안타깝게도 스메일이 이용한 방법은 3차원이나 4차원 다양체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다. 따라서 원래 푸앵카레 추측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았다. 그 후 1981년 미국 수학자 프리드먼이 4차원 다양체에 대해서 추측을 증명하는 방법을 발견했다(프리드먼의 업적은 물질의 본성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대단히 큰 도움을 주었다).

  이제 문제는 분명해졌다. 푸앵카레 추측은 3차원을 제외한 모든 차원에서 참임이 밝혀졌다. 푸앵카레가 원래 질문을 던질 때 고려했던 차원이 바로 3차원이다. 앞에서 언급한 고올로 스메일과 프리드먼은 수학자들의 노벨상으로 인정받는 필즈 메달을 받았다. 푸앵카레 추측의 마지막 한 경우를 해결하는 사람에게도 의심이 여지 없이 같은 명예가 주어질 것이다(단 그 사람이 필즈 메달 수상 제한 연령인 40세보다 젊은 사람이어야 한다. 필즈 메달은 수학의 주요 문제에 도전하도록 젊은이들을 고무시키기 위해서 제정된 상이다). 또한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그 혹은 그녀는 수학자 사회 전체의 찬사와 함께 밀레니엄 현상금 100만달러도 받을 것이다.

  문제 해결에 나설 사람은 증명을 시도해야 할까, 아니면 반례를, 즉 폐곡선-줄이기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3차원 초구면과 위상학적으로 동치가 아닌 3차원의 초표면을 찾는 데에 주력해야 할까? 다른 모든 차원에서 푸앵카페 추측이 참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을 감안할 때, 많은 전문가들이 증명 쪽으로 쏠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증명은 수백 페이지에 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약 20년 전 한 수학자가 증명을 제시했고, 수학자 사회는 진지하게 그 증명을 검토했다. 세밀한 검토를 위해서 여러 달이 걸렸고, 결국 증명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림12> <그림7>에서 제시한 고리 수수께끼의 정답







출처 : 수학의 밀레니엄 문제들 7 / 케이스 데블린 / 까치

1. Diphtheria ; 법정전염병으로서 주로 호흡기의 점막이 침해를 받기 쉬운 어린이들에게 흔하게 발생한다. 유행기는 겨울이며, 도시에서는 연중 볼 수 있으나 최근에 들어서는 비교적 보기 어려운 병이다 
2. 일부 역사가들의 추측에 따르면, 푸앵카레는 근시였기 때문에 교수들이 칠판에 쓰는 내용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독자적으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시각화 기술을 발전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3. Mathematical definitions in education, 1904 
4. 기하학, 기계학, 물리학, 지리학, 항해술 
5. 保形函數, automorphic function 
6. 연결망은 다양한 선들로 연결된 점들의 집합이다 
7. 케이스 데블린의 책 「수학 유전자(The Math Gene)」에서 케이스는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단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은 추상을 다루는 데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8. 이른바 '비유클리드 기하학' 
9. 이른바 '군 이론' 
10. '명제논리학' 
11. '벡터 대수학' 
12. 정확히 설명하자면, 푸앵카레를 비롯한 수학자들이 19세기 말 이 연구를 할 당시에는, '무한히 가까이 있다'라는 생각을 수학적으로 명료화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950년대 미국 수학자 로빈슨이 그 방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우리의 논의와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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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lunouz ] 2006/08/17 21:10 +/- reply
네 뭐 퍼가시는거야 기분나쁠 건 없지만, 도대체 어디로 퍼가셨는지 저도 좀 알면 안될까요?
싸이월드 메인페이지를 링크해주셔도 글쎄.. 낭패감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네요.ㅋ
아무튼 관심가져주셔서 저도 일말의 보람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