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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서평/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

by 아름다운비행 2005. 7. 25.

* 궁리닷컴 자료입니다.

   http://www.kungree.com/bib/focus/cumings.htm

 

 

 

Bruce Cumings
Paperback 527 pages
(February 1998)
W W Norton & Co.
ISBN: 0393316815

 

6.25 전쟁 발발 50주년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올해에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여느 때와는 달리, 평화, 통일, 화해 등의 키워드가 초점이 되었다. 6.25 전쟁 또는 외국인들의 표현대로 한국 전쟁과 관련하여 빼놓은 수 없는 학자가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이다. 커밍스 교수는 현재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의 노만/에드너 프리링 석좌 교수이며, 노스웨스턴 대학의 국제/비교 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아시아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며, 이후 1975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동아시아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1981년에 제1권 해방과 분단 정권의 등장, 1945-1947(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1945-1947, 1990년에 제2권 The Roaring of the Cataract, 1947- 1950을 내놓았다.)은 이른바 수정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한국 전쟁을 다룬 대표적인 저서로 평가받아 왔다. 현재 도쿄 대학 명예교수인 와다 하루키 교수와 함께 창작과 비평의 지면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기도 했는데, 특히 1980년대 이후 우리 나라의 소장 학자,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의 수정주의 입장은 정설이나 마찬가지의 권위를 누리기도 했다.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무척 상세하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계기들을 다루고 있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해방 당시 한국 사회는 계급 혁명의 여건이 성숙되어 있었고, 외세가 아니었다면 한국의 계급 혁명은 실제로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 군정 및 남한 정부가 한국 민중의 기대를 배반하는 일련의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계급 혁명의 가능성이 말살되고 말았다. 38선 확정의 책임은 물론이고 단독정부 수립에 의한 남북 분단 고착화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미국에 있다. 해방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계급 혁명을 저지하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여 반공의 보루를 구축하는데 있었다.

 

커밍스의 그 저작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과 남한 정부의 반동성, 그리고 이들의 음모적 전쟁 유도, 북한의 상대적인 민족 정통성 우위, 한국 전쟁의 민족 해방적 성격 등을 부각시킨 셈이었고, 이것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 반미 운동과 맞물려 가히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198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커밍스의 수정주의 입장이 국내외 관련 학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커밍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커밍스는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 대해 무척 자세하게 규명하면서 비판하지만, 소련의 대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원인을 논하면서 다분히 간접적인 정황과 개연성에 따른 일종의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을 동원한다. 또한 그의 한국 현대사 연구는 한미일 각국의 방대한 문헌을 섭렵한 성과였지만, 소련 및 중국 자료를 충분히 조사, 활용하지 못했다. 한편 커밍스 교수의 최신작이라 할 이 책은 한국의 구체제가 몰락하면서 1860년에 문호를 개방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야말로 숨가쁘게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계기와 주제를 되짚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반도의 강제 합병과 1945년의 해방,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한반도 분할, 그에 뒤 이은 한국 전쟁,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장(잘 교육된 노동력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 체제에서 보다 민주적인 정치 체제로의 한국의 '거대한' 진전, 그리고 그러한 진전을 역설적으로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는 독점 재벌 세력과 '탐욕스런' 군부 세력, 일본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지도 모르는, 한반도의 독일식 통일에 대한 전망, 북한의 '은둔 체제'와 그 핵 개발 능력으로 인한 잠재적인 위협, 미국에서 '소수 인종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기도 하는 해외 이주 한인들의 열망, 통일 한국이 지구촌에서 자임하게 될 위치에 대한 전망.

 

무척이나 논쟁적이고 민감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쟁점의 소지가 될만한 언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수정주의적 시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별다르게 보기는 힘들 것이고, 역시 한국 현대사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주제 앞에서 커밍스 교수가 무척 조심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에서 이른바 한반도의 지정학적 측면을 무척 중시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이라는 다분히 적대적인 이웃들과 한반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근대 및 근대 이전의 한국 역사를 조망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중국 및 일본으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야 그렇다 하더라도, 한반도와 일본의 문화적 관계에 대한 커밍스 교수의 시각은 동아시아 역사 일반에 대한 커밍스 교수의 무지 내지는 무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커밍스 교수가 정치학자이지 역사학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고 할까. 요컨대 힘의 역학 관계에 민감한 정치학자 특유의 지적 감각 같은 것을 무리하게 문화 영역에까지 적용시키려 했던 것은 아닌지.

 

또 하나. 커밍스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 침탈이 결과적으로 한국의 근대적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각별하게 지적한다. 그런 식의 주장을 펼치는 국내 학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별달리 할 말은 없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근대화, 산업화, 이런 등속의 개념을 과연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지.... . 하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는 북한 사회를 스탈린주의적 정치 체제보다는 신유학 사상에 기반을 둔 일종의 왕국으로 파악한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에서도 한국 전쟁 내지는 한국 현대사 전반에 대한 자신의 수정주의적 시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요컨대 한국 전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에 무척 민감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간된 커밍스 교수의 다른 저작에 비해서는 급진성이랄까 그런 것이 많이 줄어 들었다.

 

사견이지만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책이기 때문에, 그리고 외국의 저명한 학자가 저술한 한국 현대사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요컨대 브루스 커밍스라는 이름의 값 같은 것이 있다면, 이 책은 이름 값의 약보합 내지는 소폭 하락의 원인이 될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목 A Modern History는 A라는 글자 때문에 겨우 거짓말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Modern History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사, 외교사로 편향되어 있다.

 

한 가지 부질없는 걱정. 우리 나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이 이 책을 한국 현대사의 표준적 저술로 간주하면 큰일이다. 다음과 같은 인상을 지니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지 못한 신생 독립국의 좌충우돌 모험담! 유사 이래 계속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문화적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지탱 해온 약소국의 기적같은 드라마! 강대국, 특히 미국의 음모에 이리 저리 휩쓸려 온 어리석은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