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小滿)
옛날에는 보리고개가 시작되는 시기로 농촌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때이다. 산과들에는 아지랑이가
피어나며, 산속에선 뻐꾸기소리가 들려오고, 밤나무 꽃과 함박꽃이 활짝 핀다. 잠자리가 때를 지어 날아들어 여름을 재촉한다. 서고동저형의
기압배치가 형성되며, 간혹 황사가 내습하기도 한다.
농가월령가에 "4월이라 맹하(맹하) 소만(소만) 절기로다."라 했다. 소만이 되면 보리가 익어가며 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 옌다.
이때 쯤이면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내남없이 양식이 떨어져 가난하고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다. 산과 들판은 신록이 우거져 푸르게
변했고 '추맥(秋麥)'과 '죽맥(竹麥)'이 나타난다. 음력 3.4월이면 '권농(권농)의 달'이라 하여 매우 바쁜
시기이다. 봄바람과 더불어 모판을 만들면서부터 농사일이 바빠진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이용한 논갈이, 모판 만들고 볍씨 뿌리기, 올콩심기,
면화ㆍ참깨ㆍ아주까리 파종, 춘잠치기, 3월에 심은 채소류 관리 및 김매기, 소ㆍ돼지 등 교미시키기가 그것이다.
절기가 소만에 이르면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부터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감자꽃이 필 때면 아이들은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을
즐겨 부르며 놀았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감자 이 노래처럼 하얀꽃 핀 것은 하얀감자가 달리고, 자주꽃 핀 것은
자주감자가 달린다. 아이들은 이 동시에다 그들 나름의 신명나는 후렴을 지어 부르며 놀았다.
조선꽃 핀 건 조선감자 파 보나마나 조선감자 왜놈꽃 핀 건 왜놈감자 파
보나마나 왜놈감자
자주감자는 일명 '돼지감자'라 불렀다. 생명력이 왕성해 한국토질에 잘 되었으니, 맵고 아려서 어린애들이 잘 안 먹으려고 했다. 그러니
돼지감자는 자연히 어머니들 몫이었다. 하얀꽃 피는 흰감자는 맛이 좋아 아이들이 즐겨 먹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평지에서 연작하기가
어려웠다. 자연 맛은 떨어지지만 소출이 많은 자주감자를 심었다. 요즘에사 고랭지 지역에서 재배한 씨감자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씨감자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대관령, 봉화에서 바이러스에 강한 흰 씨감자가 생산되면서 흰감자가 대대적으로 보급되었다. 그러자
자주감자는 차츰 사라졌다. 지금은 어디선가 홀로 자주꽃을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24 절기의 여덟 번째. 양력으로는 5월 21일경부터 약 15일
간이며, 음력으로는 4월중이다. 태양 황경은 대략 60도의 위치에 온다.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든다.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 사람들은 소만을 5일씩 3후(三候)로 등분하여, ① 씀바귀가
뻗어 나오고, ②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③ 보리가 익는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심한 가뭄이 들곤 한다.
여름의 분위기가 본격적이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거나 이미 논에
모심기가 끝나 연푸른 들판과 넘실거리는 논물이 볼 만하다.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이으며, 가을 보리 베기에도 바쁜 시기라서 1년중 가장 바쁠
계절로 접어들 때이다. 이 시기에는 가물 때가 많아서 밭곡식 관리와 모판이 마르지 않도록 물 준비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모든 산야가 이토록 푸른데 대나무만큼은 푸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모습을 본 듯하다. 그래서 봄의 누래진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대나무 가을'라 한다.
초후를 전후하여 죽순(竹筍)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다. 시절식으로 참 좋은 별미이다. 또한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보리는 말후를 중심으로
익어 밀과 더불어 여름철 주식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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