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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한국어

한글날-세종대왕

by 아름다운비행 2019. 10. 10.

o 출처 : exc0105님의 티스토리, https://jwaumyeong.tistory.com/3227




  2008년 08월 29일 한글학회 창립 100돌 기념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 주시경 선생의 「한나라말」 가운데서.

한글학회는 대한제국이 기울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말과 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1908년 8월 31일에 주시경 선생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다. 당시 이름은 ‘국어연구학회’였으며, 그 뒤로 ‘배달말글몯음’, ‘한글모’,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 ‘한글학회’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100년 동안 한글학회는 한국어와 한글을 수호하고 연구하고 널리 펼치는 일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26년에 처음으로 한글날을 제정하였고, 1930년대에는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고, 표준말을 심사하여 정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겨레 최초의 대사전인 『큰사전』을 편찬하여 발행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일제에 의해 회원들이 투옥되고 고문을 당하고, 옥사하는 일까지 있었다. 광복 직후에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하고 교과서를 편찬하고 일본말을 몰아내는 일에 특별히 힘썼으며, 그 뒤로는 말글 정책 바로 세우기와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을 꾸준히 펼쳐 왔다.

우리 겨레의 넋이요 상징인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한결같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온 한글학회 100년의 업적을 기리며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우표에는 서예가 서희환이 쓴 주시경 선생의 「한나라말」 일부를 실었다.

출처:http://www.kstamp.go.kr/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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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 - 세종대왕, 훈민정음 반포

1443년 훈민정음이 완성되어, 1446년 10월 9일 반포됐다. 3년의 공백기간에는 용비어천가를 지어 훈민정음의 실용성에 대해서 널리 알렸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창제 당시에는 언문, 언서, 반절 등으로 경시되어 불리기도 했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우리나라가 중국 글자를 빌려서 쓰고 있어 우리말에 맞는 새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족 자주정신의 고취와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보다 쉬운 문자를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훈민정음은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되어 있었으나 초성`ㆁ` `ㅿ` `ㆆ`과 중성 `、 `가 없어져 현재는 24자만 남아있다. 훈민정음 책은 33장 1책으로 훈민정음 제작 동기와 취지를 알린 서문과 본문, 제작 원리와 용례를 해설한 해례, 정인지의 해례 서문으로 구성되어있다. /조선



훈민정음 반포일(?)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어제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60돌’이라고들 한다. 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고 1446년 ‘반포’(세상에 널리 퍼뜨려 모두 알게 함)했다는 게 상식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반포 560돌의 역사적 근거는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 말 세종이 친히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세종 28년 음력 9월 말 훈민정음에 대한 기록이 다시 등장한다. ‘是月訓民正音成’ 일제 시대 많은 한글학자들은 ‘成’을 완성됐다는 뜻으로 보고 ‘이번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됐다’로 해석했다.


하지만 여기서 ‘成’은 ‘완성할 성’이 아니라 ‘책 이룩할 성’이라고 한다.(려증동 경상대 명예교수의 ‘훈민정음을 반포한 일이 없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실록 한글 번역문도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실록을 정확히 따르면, 1446년은 훈민정음의 해설서 격인 〈훈민정음〉(이른바 해례본)이라는 책이 완성된 때이다. (다만 세종이 1443년에 공개한 훈민정음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형태인지, 그리고 반포 시기를 언제로 볼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실록 오역을 지적한 학자는 여럿이다. 국립국어원 인터넷홈페이지에 실린 ‘한글날의 유래’를 보면, 1940년대 국어학자 방종현 선생이 이 문제를 지적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1955년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논문 ‘한글 반포의 시기’ 등 여러 문헌이 이를 거듭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을 지적하기는 북한 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10월9일은 해례본 서문의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는 날짜를 근거로 정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한글날의 의미가 빛바래는 건 아니다. 다만 훈민정음 반포 기록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은 기억해둘 만하다. /신기섭 논설위원, 한겨레 2006-10-10



북한의 `한글날'은 1월 15일
남한은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지만북한은 1월 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훈민정음 반포일(세종28년 음력 9월 상순, 1446년 10월 9일)을 기준으로 `한글날'을 정해 기념해 오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창제일(세종 25년 음력 12월, 1444년 1월15일)을 기념일로 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에서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는 훈민정음 반포일은 북한에서 별다른의미 부여가 없이 지나가 버린다.


북한은 창제일이 5, 10년 주기로 꺾어지는 해에는 평양시 기념보고회를 열고 훈민정음의 우수성, 민족어의 발전 방향 등을 주제로 한 논의를 하기도 한다.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우리 민족의 글자생활 발전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으며 민족어의 규범을 세우고 그에 의하여 언어생활의 통일성을 보장할 수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도 생전 "이미 삼국시기부터 이두문자를 사용하여 오던 우리 인민은1444년에 가장 발전된 문자인 훈민정음을 청제함으로써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고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북한에서의 경축 수준은 남한의 한글날보다 덜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훈민정음의 우수성은 우리민족이 오랜 글자생활을 해온 전통과 경험을 살려 신지글자를 바탕으로 창제한 글자라는데 있다"면서 훈민정음을 독자적 창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에서는 이 신지문자가 고조선 시기 사용된 우리민족 고유의 문자이며한민족의 `시조글자'로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방송대학의 박교훈 부교수는 지난 94년 중반 신지글자에 대해 "단군시기부터 고조선에서 쓰인 우리 민족 고유의 글자로서 그 이후 변화 발전해 여러 가지글자를 낳은 우리 민족의 `시조글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훈민정음이 신지글자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정인지가 훈민정음머리글자에서 "글자는 옛 전자(신지글자)를 본떴다"고 한 점 △이암이 쓴 `단군세기'에 적혀있는 정음 36자(가림토글자)가 훈민정음과 비슷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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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반포550돌기념, 1996



1945 - 10월 9일 한글날 첫 기념식


한글날 유래와 역사 - 세종실록에는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것으로 쓰여 있다. 이를 근거로 1926년 지금 한글 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당시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에 훈민정음 반포 여덟 회갑(480년)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지고, 이 날을 ‘가갸글’이라는 당시 한글의 이름에 따라 제1회 ‘가갸날’으로 불렀다. 국어학자인 주시경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뒤인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1년 또는 1932년부터 양력인 그레고리오력으로 당시 날짜를 환산한 10월 29일에 지내게 되었다. 한글연구단체인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국어학자 이희승과 이극로는 이를 1932년부터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1931년부터 양력으로 지내게 되었다는 신문 기사도 있다. 1934년부터는 전문가들의 의견대로 1582년 이전에 율리우스력을 썼던 것으로 가정하여 계산한 10월 28일에 지내었다.


1940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9월 상순에 책으로 펴내었다고 되어 있는데, 1446년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하면 10월 9일이 된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제정하고 공휴일로 만들었다.


1991년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한글날은 국군의 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그 뒤로 한글 학회 등 한글 단체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제정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2005년 10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지정 촉구 결의문’을 만장 일치로 채택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2005년 11월 30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내용의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2005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그러나 국경일 휴무 여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있어, 국경일 지정이 곧바로 공휴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훈민정음이 쓰인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을 기준으로 해서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제정했다. /위키백과

1970년 6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제정·공포하여 공휴일로 정했다. 그러나 1990년 법정 공휴일인 기념일에서 법정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로 바뀌었고, 2006년부터 법정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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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오백주년 기념, 1946.10.9




1946 - 한글 반포 500돌,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함

1946년 10월 9일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정부에서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

장소 : 각계 인사 2만여 명이 덕수궁에 모여 기념.

주관 :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주관.

www.hanmalgeul.org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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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1,한글학회 창립 50돌 기념

1957 -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전6권 완간
한글학회가 사전편찬에 착수한지 30년 만인 1957년 10월 9일 마지막 6권을 출간함으로 '우리말 큰사전'이 완간됐다. 우리 민족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927년 '조선어사전' 편찬 논의가 시작되어 1929년 10월 31일 이극로ㆍ이윤재ㆍ최현배 등 1백8명이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우리말 큰사전' 완간의 밑거름이 되었다.


1936년 3월에는 사전편찬작업을 '조선어사전 편찬위원회'에서 '조선어학회'로 이관, 3년 목표로 사전편찬작업을 시작했다. 16만 단어의 초고가 거의 완성될 무렵인 1942년 10월 일본 경찰이 서울의 '조선어학회' 사무실을 급습하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이 발생해 사전원고를 모두 압수당했다.


해방후 1945년 9월8일 사전원고가 서울역 운송창고에서 발견돼 편찬작업이 재개됐다. 마침내 사전 제1권과 제2권이 1947년 10월 9일과 1949년 5월 5일에 각각 출간됐고 우여곡절끝에 마지막 6권이 제1권이 나온 지 정확히 10년 9개월 만인 1957년 이날 완간됐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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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 첫번째 세종대왕 동상 헌화식


1968년 10월 9일,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는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첫번째 꽃을 바치는 자리(헌화식)를 마련했다. 이 날 열두 대학 대표들과 연합회 임원들은 세종대왕 영전에서, 한말글 이름 펴기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다짐했다.

한말글 이름의 날 법정기념일 추진위원회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www.hanmal.pe.kr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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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오백예순 돌 한글날


"2006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 반포 560돌이자 한글날이 국경일로 지정된 후 처음 맞는 기념일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은 그 당시 사용할 우리 글자가 없던 백성을 위해 세종대왕(조선 제4대 임금)이 1443년(세종 25년)에 창제하여 1446년(세종 28년)에 반포한 글자인데 모두 스물여덟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ㆍㅿㆁㆆ' 등 네 글자를 제외한 스물네 글자만 사용되고 있으며, '한글'이란 이름은 1913년 주시경 선생이 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글자로 닿소리(자음)는 소리를 낼 때 발음 기관의 생긴 모양을 본떴고, 홀소리(모음)는 하늘(ㆍ)과 땅(ㅡ)과 사람(ㅣ)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또한, 역사적으로 전 세계 400여 개의 글자 가운데 만든 목적과 만든 사람, 만든 때를 기록하고 있는 글자는 한글이 유일하다고 한다.

특히 문자를 만든 원리와 문자 사용에 대한 설명을 책으로 출판한 일은 유례가 없는 일로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여 유네스코에서는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였고, 2005년 12월 29일에는 우리 정부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오백예순 돌 한글날을 기리며 기념우표 한 종을 발행한다. 한글날의 참뜻을 새겨볼 때, 우리글이 만들어진 것을 축하하는 날이지만, 더 나아가 한글의 바탕이 되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정신을 되새기는 날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우표발행안내) /kstamp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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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daum.net/philook



출처: https://jwaumyeong.tistory.com/3227 [좌 가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