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
1960년대부터 무허가 건물이 밀집한 말 그대로 '달동네'였던 서울 성북구 삼선교로4길(삼선동1가) 인근 '장수마을'. 예정됐던 재개발이 무산돼 서울시로부터 주거환경관리 사업지로 지정된 이 곳이 유럽 지중해 섬마을로 조성돼가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이는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48). 그는 '북촌한옥마을'을 비롯해 '진관사역사관'과 경주 한옥호텔 '라궁', 서울 가회동 '선음재' 등으로 상을 휩쓸며 생활형 현대한옥 건축가로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도시계획과 일반 건축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하지만 장수마을과 같은 재생프로젝트는 달랐다.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된 장수마을은 낮은 사업성으로 주민 반대에 부딪쳐 결국 지난해 5월 구역지정에서 해제됐다.
재개발이 무산돼도 마을정비는 필요했다. 2007년 성곽산책로 공사 때문에 일부 가옥이 철거되긴 했지만 대다수 건물은 여전히 30~40년 전에 지어진데다 30% 넘는 주민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돼 안전을 위해서도 정비사업이 절실했다.
장수마을과 조 대표는 2000년부터 시작한 서울답사가 6년째 되던 해 만났다. 성곽 밑에 3층짜리 집들이 제멋대로 자리잡은 매력적인 마을로 생각했지만 산책로 조성 때문에 서울이 가진 멋(가옥)이 의미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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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삼선교로4길(삼선동1가) 인근 '장수마을'과 디자인(아래)전경. / 사진제공 = 구가도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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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은 일을 하기 전부터 터졌다. 주민들은 대부분 30년 이상 거주했지만 집으로 통하는 골목이 다르니 소통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주민 얘기를 듣고 마을을 손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조 대표의 예상을 빗나갔다.
집집마다 방문해 의견을 듣고 조율해 마을을 손보려니 시간도 늦어지고 제대로 된 디자인도 나오기 힘들었다. 결국 조 대표는 장수마을 정비사업의 주안점을 무엇보다 '주민'에 치중했다.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주민들과 많이 만나고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마련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는 건축가가 한 번에 마을을 디자인하기보다 주민 의견을 들어가면서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지도상의 필지가 아닌 골목을 중심으로 정비계획을 수립해 디자인하고 주민간 의견을 모으도록 했다.
마을 전체 지도를 만들어 골목 현황을 파악해 주민들이 원하는 걸 반영했다. 마을 전체를 실측하고 지도까지 만드는데 2~3명의 건축가가 6개월 넘게 걸리는 일이었지만 주민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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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삼선교로4길(삼선동1가) 인근 '장수마을' 모형도. / 자료제공 = 구가도시건축 |
주민 5명 이상 제안하면 디자인에 적극 반영하기도 했다. 반응은 좋았다. 관심도 없던 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마을이 변화했다. 마을이 높은 언덕에 위치한 만큼 기존 난간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작은 일이었지만 주민이 달라졌다.
재개발이 아닌 리모델링식 정비사업으로 집안이 깨끗해지고 주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기름보일러도 60년 만에 도시가스로 바뀌었다. 마을에 박물관이 생기고 주민들이 모여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됐다.
조 대표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디자인하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다. 특히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문제"라며 "사실 건축과 가장 밀접한 부분이 사람이란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곽 밑 장수마을이 너무 유명해지거나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민들끼리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따뜻한 곳이 됐으면 좋겠다"며 "디자인도 무엇보다 주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윤 기자 트위터 계정 @mto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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