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8년간의 영농일지 e-book 으로 배포, 단양 정화려씨

by 아름다운비행 2012. 8. 29.

* http://senior.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2/2012080201317.html 

8년간의 영농일지를 e-book으로 배포하는 충북 단양 정화려 씨(48)

먼저 귀농한 선배를 따라 2000년 단양에 흙집을 지은 정화려 씨는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스마트 농민이다. 농촌진흥청 주최 농업인 정보화능력경진대회 최우수상, 단양군 주최 농업인 홈페이지 경진대회 최우수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일터인 유월농장은 농림수산식품부와 농촌문화센터로부터 우수농업경영체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 2006년에는 신지식농업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꼼꼼한 기록이 낳은 정 씨의 스마트 귀농 라이프를 소개한다.

스마트폰으로 만나는 영농일지

건강한 농작물은 일기의 최대 수혜자다. 하지만 농사와 막역한 친구인 일기는 언제 어느 때 천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이는 농사를 지으려면 기후부터 파악해야 하는 이유이자 귀농인이 정착 초기 시행착오를 겪는 원인이다.

“방송을 보니 인근 제천에서 두릅을 기른다기에 무작정 사들였죠. 결국 500만원어치의 두릅 묘목은 3년 만에 전부 말라 죽었어요. 책을 보고 남들이 다 하기에 양봉에도 도전했죠. 내륙이라 따뜻할 줄 알았는데 겨울 기온이 북부지방 수준까지 떨어지더라고요. 내려온 해 겨울에 벌통이 다 얼어버렸어요. 미리 이 지역 기후를 좀 알았더라면 훨씬 효과적인 작목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에요.”

정화려 씨는 초기 실패로 인해 지식 대신 실전을 쌓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동네 분들을 따라다니며 귀동냥한 농사지식이 자산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사계절 내내 변화무쌍한 날씨는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서리가 언제 내리는지, 예초기는 언제 돌리는 게 적당한지, 땅벌은 언제 출몰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결국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영농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죠.”

정 씨는 2008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개인홈페이지(www.유월.kr)에 꾸준히 영농일지를 업데이트했다. 귀농 전 인쇄기획사에 종사했던 이력을 살려 영농일지를 종이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직접 찍은 사진을 곁들여 생생한 정보를 전달해, ‘이 책만 있으면 농사지을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8년 동안의 경험치가 고스란히 녹아든 이 기록은 작년부터 전자책으로 새 옷을 갈아입었다.

“작년 초에 뜻하지 않게 3박 4일 정도 입원을 했어요. 심심하던 차에 들고 간 노트북으로 영농일지의 e-book을 만들었죠. 밭에 나가 작황 상태를 보면 예년엔 어땠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전자책으로 변환해 놓으면 그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즉각 확인할 수 있잖아요.”

후배 귀농인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고자 전자책 무료 배포를 결심한 정 씨. 그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IOS용 스마트폰을 위한 PDF 파일과 안드로이드용 ePub 파일을 손쉽게 내려 받을 수 있다.

아는 만큼 나누는 재능기부

‘아는 만큼 나누자’는 신조로 귀농 생활에 임하는 정 씨. 이웃에게 물어물어 농사를 지었던 정착 초기를 상기한다면 쉬 납득이 가는 지점이다. 받은 대로 돌려주자는 의미일까. 그의 나누는 삶은 영농일지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료 배포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시의 청년 기준은 보통 20~30대잖아요. 시골은 달라요. 50대면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죠. 이 동네 역시 주민 대부분이 노인이에요. 그 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영정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우리 마을 24명, 어산천면 전체로 치면 100여 명 가까이 찍어 드렸어요. 비록 싼 디지털카메라였지만 보람이 있었죠. 인화해주는 업체에서도 제 취지에 공감하셨는지 알아서 보정까지 해주시더군요.”

안타깝게도 당시 영정사진을 찍어 드렸던 스물네 명의 어르신 중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분은 다섯 명에 불과하다. 이미 돌아가셨거나 도시 자녀 곁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이다. 정 씨는 자꾸만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발생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컴퓨터도 가르쳐 드렸어요. 지금은 각 집에 방문해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대부분 컴퓨터를 가지고 있지만 애들 게임용 아니면 쓰질 않으세요. 농사일이 너무 바빠서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이 없는 경우도 꽤 많고요. 포털 사이트 검색방법을 시작으로 농업 관련 동영상 시청, 블로그 운영까지 다양한 정보 공유 루트를 설명해 드리는데요. 요즘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연결 방법 알려 드리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다재다능한 정 씨의 재능기부는 ‘풍물강습’까지 이어졌다.

“3년 전에 풍물동호회에서 장구를 배웠는데 재밌더라고요. 현재 마을회관에서 10여 명의 주민에게 강습하고 있어요.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다 함께 마을도 한 바퀴 돌면서 지신밟기를 해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음식도 대접받고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풍물놀이를 마을 전체로 확장시키고 싶어요. 이런 게 바로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는 수단이거든요.”

유기농을 통해 느낀 ‘파머스 하이’

13년 차 베테랑 귀농인 정 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귀농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다. 농사가 싫증 난 적도 없다. 오히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품었다. 땀 흘려 노동하지 않으면서 대가를 얻었던 도시 생활의 회한 역시 저만치 달아났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자각 뒤에는 굉장한 즐거움이 보상으로 주어져요. 그래서 농사일에 중독되는 것 같아요. 농촌에 사시는 분들 대다수가 수십 년씩 농사만 지으시잖아요. 할 줄 아는 게 농사밖에 없어서가 아니에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뛰어넘는 보람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보람을 ‘파머스 하이(Farmer’s High)라고 정의합니다.”

마라톤 주자가 고통을 이기며 달린 뒤에 맛보는 환희를 뜻하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본떠 만든 신조어 파머스 하이. 정화려 씨가 설파하는 농사의 기쁨인 파머스 하이는 자신의 한계점을 극복한 농사꾼에게 찾아오는 선물임이 틀림없다.

“제가 파머스 하이를 느낄 때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농산물은 단순한 작물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들이는 품을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 품은 지구 생태계에 긍정적인 여파로 귀결됩니다. 특히 친환경농업, 유기농법은 긍정적 여파에 플러스 알파겠죠.”

단양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유통사업단장을 역임 중인 정화려 씨는 귀농을 새로운 수익처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2008년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발표에 의하면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가 농업생산량의 2배인 67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해답을 유기농에서 찾고 있어요. 건강한 땅을 만드는 일은 홍수조절·대기정화·기후순화·토양보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죠. 귀농은 수익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소박한 삶이 낳은 풍요로운 마음

“제 귀농 결심은 ‘중간만 하자’였습니다. 일하는 것도 버는 것도 딱 보통 농사꾼 만큼만 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막상 내려오니 욕심이 생겼는지 3,000평으로 시작했던 게 어느새 1만 5,000평까지 늘었어요. 지금은 9,000평으로 줄인 상태입니다. 욕심 껏 늘리다 보면 과부하가 생기거든요. 일하느라 가족과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면 도시의 삶과 다를 바 없어지는 거죠.”

정 씨는 문득 귀농 전 방문했던 단양의 추억을 꺼냈다. 당시만 해도 농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시절이었다. 겨울이면 논에 물을 대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 나게 어울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모습에 혹한 초등학생 딸아이가 선뜻 귀농을 따라나설 정도였다.

“다시 보고 싶은 풍경이죠. 그런 게 시골의 참맛이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귀농의 궁극적인 이유는 물질적으로는 소박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언제 아이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보겠어요. 귀농 준비하실 때 돈 되는 작목부터 따지시는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런데 억대 농가 꿈꾸다가는 정작 소중한 걸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스마트 농민’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정화려 씨. 그에게 배울 점은 실로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똑똑한 귀농 생활 이면에는 농사꾼으로서의 고민과 철학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생산하는 가치를 믿으면 세상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였다. 산다는 것 자체가 ‘재미’라는 그의 소박한 삶을 닮고 싶다면 욕심을 버리는 게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