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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모습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by 아름다운비행 2008. 12. 25.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김기철 문화부기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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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special.chosun.com/Bbs/bbs/view.html?b_bbs_id=10009&pn=1&num=18

 

 

 

책 읽기가 진력이 날 때, 특히 요즘같이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에 찾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와 그 속편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이상 청어람미디어)입니다.

1940년생인 다치바나는 도쿄대 불문과 졸업 후 문예춘추 출판사에 입사했다가 2년 만에 “책을 더 읽고 싶어”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고 합니다. 마음껏 책을 읽던 학생 시절의 생활환경으로부터 ‘책만 읽고 있을 수 없는’ 생활환경으로 갑작스레 떼밀려 버렸을 때의 정신적 기아감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게 퇴사의 변입니다.

다치바나는 도쿄대 철학과에 다시 들어갑니다. 당시 면접 교수는 힘들게 문예춘추사 같은 유명한 기업에 취직해놓고 왜 배고픈 철학을 하려고 사직하느냐며 걱정했다고 합니다. 다치바나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오로지 책만 읽는 생활을 했답니다. 책을 얼마나 사들였던지, 책 무게 때문에 원룸 맨션 바닥이 꺼져 버릴 정도였습니다.

다치바나는 1974년 문예춘추에 실은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로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다나카 당시 일본 총리의 범법 행위를 파헤쳐 그를 실각하게 만든 심층보도였습니다. 다치바나는 그 이후에도 ‘일본 공산당 연구’  ‘우주로부터의 귀환’ ‘뇌사’ ‘원숭이학의 현재’ ‘천황과 도쿄대’ 등 100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다치바나의 지론중의 하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입출력비가 100대1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책 한 권을 쓰려면 100권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다치바나가 주간문춘에 연재한 ‘나의 독서일기’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입니다. 그가 소개하는 책을 읽다 보면, 일본이 왜 출판대국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인문,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문적 이슈에 대해서도 관련 책이 번역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에 대한 세계 최신의 연구 성과를 자국어(自國語)로 읽을 수 있는 지식 인프라가 구축된 나라가 일본이었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의 앞쪽(240페이지 분량)에는 다치바나가 자기 서고를 인터뷰 형식으로 안내하는 내용이 수록돼 있습니다. 다치바나는 장서 3만5000권을 소장한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작은 빌딩을 갖고 있습니다. 빌딩이라고 해봤자, 한 층에 여덟 평, 아홉 평 짜리 작은 건물이지만, 다치바나의 지적 세계를 모아놓은 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의 화려한 지적(知的) 탐험에 질투심마저 느끼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와 기독교 신학까지, 뇌과학과 원숭이학, 우주 비행, 석유에서 전공투 투쟁까지 그의 장서와 관심 분야는 좌충우돌, 종횡무진 그 자체 입니다.

다치바나의 특장인 논픽션도 그렇습니다. 다치바나는 1964년 문예춘추에 입사한 뒤, 논픽션을 읽기 시작합니다. 마침 그 해, 치쿠마쇼보(筑摩 書房)에서 50권짜리 ‘세계논픽션 전집’이 완간됩니다.

다치바나는 이 전집을 한 권씩 사서 대부분 다 독파했다고 합니다. 1권이 실크로드 탐험가로 이름높은 스웨덴인 스벤 헤딘의 ‘방랑하는 호수’, 토르 헤위에르달의 ‘콘티키호 탐험기’였다고 합니다. 상하 2단에 평균 500쪽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1권에 1편만 수록한 게 아니라 단행본 다섯 권 이상의 분량을 담았답니다. 힐러리 경의 ‘나의 에베레스트’,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의 ‘날개여, 저것이 파리의 불빛이다’, 월터 로드의 ‘타이타닉호의 최후’, 가와구치 에카이의 ‘티베트 여행기’ 등 논픽션 역사에 남을 만한 걸작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논픽션 전집이 나오면서 일본에는 논픽션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이와나미(岩波)의 ‘대항해시대 총서’ 시리즈(1기 11권, 2기 25권)나, 역시 이와나미의 ‘17·18세기 대여행기총서’(1기 10권)도 탐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다치바나는 자신이 지적(知的) 욕구가 비정상적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하는 지적 욕구는, 인간의 본질이자 문명 발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면서요. 예전에 읽었던 다치바나의 독서론을 다시 펼쳐 든 이유는 그의 책이 사그라지는 지적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다치바나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쓴 실전 독서법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책 한 권으로 다 알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비슷한 관련서를 몇 권이든 찾아 읽어라. 관련서들을 읽고 나야 비로소 그 책의 장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을 통해 그 테마와 관련된 탄탄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 없이는 선택 능력을 익힐 수 없다. 선택의 실패도 선택 능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료로 생각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말라. 수준이 너무 낮은 책이든, 너무 높은 책이든 그것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시간은 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비싸게 주고 산 책이라도 읽다가 중단하는 것이 좋다.

5. 읽다가 중단하기로 결심한 책이라도 일단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 보라.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속독법밖에 없다.

7. 책을 읽는 도중에 메모하지 말라. 꼭 메모를 하고 싶다면 책을 다 읽고 나서 메모를 위해 다시 한 번 읽는 편이 시간상 훨씬 경제적이다. 메모를 하면서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다섯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을 수가 있다. 대개 후자의 방법이 시간을 보다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 같은 것에 현혹되지 말라. 최근 북 가이드가 유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주석에는 때때로 본문 이상의 정보가 실려 있기도 하다.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활자로 된 것은 모두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책이라도 거짓이나 엉터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11. '아니, 어떻게?"라고 생각되는 부분(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을 발견하게 되면 저자가 어떻게 그런 정보를 얻었는지, 또 저자의 판단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숙고해 보라. 이런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그 정보는 엉터리일 확률이 아주 높다.

12. 왠지 의심이 들면 언제나 원본 자료 혹은 사실로 확인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번역서를 읽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고 자책하지 말고 우선 오역이 아닌지 의심해 보라.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사회인이 되어서 축적한 지식의 양과 질, 특히 20, 30대의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읽을 시간만은 꼭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