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정신 가지고 워킹모델 만들어야” 안철수 교수
전자신문 | 기사입력 2008.12.01 15:05
* http://media.daum.net/digital/others/view.html?cateid=100031&newsid=20081201150509178&p=etimesi
[쇼핑저널 버즈] 안철수 교수는 이미 '안철소 연구소'로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인터뷰 내내 '이분은 성공할 수밖에 없구나'란 생각을 갖게 해주신 안 교수. 2005년 안철수 연구소의 대표에서 물러나고 홀연히 유학을 결심, 현재 카이스트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고 있는 안 교수를 만나 그간의 근황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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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 그때만이 아니라 한 2~3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해가 V3를 만든지 한 20여년 정도 된다. PC라인이 18주년을 맞았으니 거의 함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경쟁도 치열했는데 감회가 참 새롭다.
Q. 이쪽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건 단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의학전문의로 의학연구자로서의 특기를 살린 셈이었다. 의학연구를 더 잘하기 위해, 다른 연구자보다 더 앞서가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앞서가게 됐다. 그렇게 실력이 앞서다 보니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됐고 백신까지 만들게 됐다.
잡지에 글을 개제할 당시만 해도 두 가지 일을 함께 병행했었다. 낮에는 의대 전문의로 일했고 새벽 3~6시까지는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했다. 양쪽 다 의미 있는 일이어서 다 하려고 했고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Q. 당시의 '산란형 바이러스'와 지금의 바이러스를 비교하면 얼마나 변화했는가
많이 다르다. 거의 20년 전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운영체제나 PC 등, MS프로세스도 퀴드코어로 바뀌고 DOS, 윈도우 3.0에서 비스타로 바뀌는 등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예전에는 컴퓨터 한 대에서 랜을 이용하곤 했는데 이제 인터넷은 기본인 시대가 됐다.
바이러스의 패러다임은 변화의 폭도 엄청나다. 어두운 곳에서 틈을 노리고 공략하다보니 많이 변화될 수밖에 없다. 디스켓을 통해 전염되는 BOOT 바이러스에서 파일을 이용한 바이러스, 바이러스를 암호화해 분석하지 못하게 하거나 분석 시 자폭하는 장치, 혹은 정상 프로그램 뒤에 숨어 찾지 못하게 하는 방법, 스텔스기법 등을 이용한 바이러스에서 이제는 파일로 존재하지 않고 메모리상에만 존재하는 아주 작은 사이즈의 연결통로에 위치한 바이러스 등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요즘은 1.25대란 때처럼 스스로 퍼져나가는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또 해킹과 바이러스가 서로 다른데 바이러스가 해킹까지 가능해 각자의 노하우를 가지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바이러스의 동기도 점차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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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가을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시절, 친구가 애플Ⅱ+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히 접한 순간 완전히 매료됐다. 그래서 이듬해 컴퓨터를 장만하게 됐다. 이후 컴퓨터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그러던 중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접하게 됐다. 의대생으로서 생물학적 바이러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존재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컴퓨터 백신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88년 초 우리나라에 브레인 바이러스가 상륙했는데 마침 기계어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바이러스를 분석하고 치료 방법까지 터득할 수 있었다. 마침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후배의 권유로 치료 프로그램을 완성했고 '백신(VACCINE)'이라 이름 붙인 뒤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우연히 하게 된 일이었지만 이후 국내에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용자들의 문의가 날로 늘어났고 이에 응답하고 상담하는 데만 하루에 몇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에는 컴퓨터와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깊은 고민 끝에 해결의 실마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은 남이 보기 좋은 삶이라는 데서 풀렸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해 나갈 일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4년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은 의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
Q. 의사에서 CEO, 대학교수로 계속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데 그 계기와 이유가 있다면
변신을 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철저히 미래 계획을 세우면서 진행하는 편이 아니다. 매순간 하던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전혀 새로운 길로 오게 됐다. 학창시절엔 의사가 천직이라고 믿으며 공부에 몰두했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해 의대 공부에 전념했고 박사학위 취득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앞서 말했던 것처럼 컴퓨터가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백신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계기가 돼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 백신 엔진을 개발하는 일은 당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열심히 하는 만큼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도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그 일을 통해 나오는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명예, 돈 같은 외형적인 것들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이 결과에 대해 미리 욕심 내지 말고 그 일 자체만 보고 판단하자는 것이다.
그 일 자체가 의미 있는지 또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지,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선택했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잘할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막연히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를 그만두고 벤처기업을 창업한 것도 의사 일이 싫거나 못해서가 아니라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보안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나 밖에 없던 시절이다 보니 더 의미가 있고 재미와 보람이 있으며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잘 되던 기업을 그만두고 유학을 가고 대학교수로 돌아온 이유도 벤처기업 경영자 일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고 한 기업보다 산업 전체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더 의미 있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며 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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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좋았다. 이전에 의사를 하면서 컴퓨터 바이러스 쪽 일을 동시에 진행한 것도 둘 다 의미가 있는 일이고 재미있고 또 잘하는 일이었다. 지금 대학교수로 오게 된 것도 안철수 연구소 보다 산업 전반을 도와주는 일이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지금 하는 일 자체가 가장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다. '어떤 것이 낫다'라는 것 보다는 '어떤 것이 더 의미가 큰가'가 더 중요하고 순간순간이 다르다.
후회나 고민은 없었다. 물론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쉽게 포기하기란 힘들다. 10여년 전 의사를 그만둘 당시에는 반년정도 고민했고 CEO를 그만둘 때는 일 년 정도 고민했다. 2005년 3월 그만둘 당시부터 약 1년 정도 이것이 과연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Q. 학창시절의 안철수는 어땠나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공부를 열심히 했다. 또 의료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사회로부터 빚을 많이 졌다는 느낌을 받았고 학생이지만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 등을 모색한 끝에 토요일마다 구로동에 봉사진료 활동에 참가했다.
방학 중에는 무의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대학원을 진학한 후에는 봉사활동이 어려웠고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돈 보다는 사회에 대한 봉사의 개념으로 판단했다.
어릴 때도 많은 사람이 그렇듯 호기심 많고 이것저것 기계를 뜯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라디오나 여러 가지를 뜯어보고 조립해보고 고치지 못해 부모님께 혼이 난 적도 많았다.
Q. 사모님도 같은 카이스트 교수라고 들었다
다행인지 아내도 같이 공부를 하는 입장이라 이해를 많이 해줬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아도 아내도 함께 공부하다보니 마찰은 없었다. 전업주부였다면 아마 힘들었을 것 같다. 같이 의학공부를 하고 미국에서는 법대를 진학해 법률 쪽 공부를 했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저작권 문제 등 법률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
Q. 자녀도 똑똑하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교육법이 있다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스스로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것 같다. 애들은 부모보다는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책이나 공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부모가 책을 읽어야한다, 공부를 해야 한다 말해도 부모 스스로 보여주지 못하면 별로 영향력이 없다.
맹모삼천지교란 말도 맞는 말이다. 부모도 결국 환경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몇 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셋 다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공부할 환경이 갖춰진 것 같다.
Q. 소프트웨어를 경시하는 풍조에 대해
인터넷을 보면 젊은 사람들은 소프트웨어를 사고파는 것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프트웨어로 돈을 받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는 사람은 바보 취급 하고. 네트워크 게임이나 휴대폰 사용료는 비쌈에도 지불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이것은 스스로의 일자리를 빼앗는 불행한 일이다. 대기업은 이미 너무 많고 고용창출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약 2,000만명의 일자리는 결국 지식기반 산업에서 충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경시하고 있어 일자리를 잃는 격이라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Q. 요즘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성공한 이유는 리스크 테이킹을 해왔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세계 13위까지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저지르고 위험을 감수하며 일을 시작하다보니 위험에 관한 준비가 마련돼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위험 관리가 중요하다. 성수대교 붕괴, 백화점 붕괴 사고 등은 안일하게 위험에 관한 관리를 하지 않아 더 큰 화를 부르지 않았는가. 유지관리가 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정보를 포함한 보안이슈는 기술이 아닌 문화, 인식, 습관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왜 습관이 중요할까?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최신식 잠금장치를 장치했다고 치자. 그러나 주인이 문을 잠그지 않으면 도둑맞을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는 기술이슈를 우선하고 있으나 보안 쪽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 보안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들여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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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벤처기업 경영자와 각 분야 실무자가 제대로 못해서 그렇다. 창업자를 포함한 벤처기업 경영진이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나 경영을 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경우에는 당연히 성장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둘째, 기업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부실하다. 인력을 제공하는 대학, 자본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 등이 있는데 이들이 부실하다. 벤처기업은 조그맣기 때문에 다 잘해야 한다.
셋째가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이다. 벤처기업을 만들면 수익창출을 이뤄 R & D 투자를 할 여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그 열매를 다 가져간다. 단기적으로 이런 구조는 큰 덩치들이 잘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들도 안 좋다.
세계화가 계속 진행되고 영어교육 이후로 기업처럼 국민들도 여건이 좋은 곳으로 떠나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에는 대기업과 공무원만 남고 나머지는 외국에서 이주한 노동자로 채워진 나라가 될 것이다. 또한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우리나라가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양극화가 심해지게 된다. 글로벌 아웃소싱은 해외 업체를 도와주는 일이다.
Q. 대한민국이 IT강국이라는 말에 대해
IT강국이 아닌 IT소비강국이다. 결국 물건 팔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을 많이 쓰고 있는데 많이 쓴다고 해서 우리가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거의 모든 기술이 외국에서 수입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물건 팔기 좋은 나라가 될 뿐이고 여기에 부가가치를 더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게임이나 인터넷 게시판 활용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Q. 안철수 교수에게 '안철수 연구소'란
'워킹모델'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모델이 생기면 거기에 맞는 성공 사례가 생길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어떤 분야에서 하나의 사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선배 입장으로 소프트웨어 회사를 어떻게 만들면 되는가 하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를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
현재는 카이스트 풀타임 정교수와 안철수 연구소 비상임을 맞고 있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안전지향인 젊은이들 중에 몇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길 기대한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가르치고 젊은 기업들의 교육 등을 통해 성공사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진 유정민 기자 artist@pc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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