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대구·경북 김종렬 기자]
![]() |
◇ 안동댐 진입로 임청각 앞에 우뚝 서 있던 수령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베어져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 안동시 제공 |
경북 안동시민들에게 신령스런 나무로 사랑을 받아 온 수령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잘려 나갔다.
22일 안동시에 따르면 안동시내에서 안동댐으로 가는 길인 석주로 2차로 도로 한복판에 있는 회화나무(일명 회나무)가 오전 3시께 누군가에 의해 베어졌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이 나무를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난다해서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왔다. 일명 공자수, 출세수, 행복수로 일컬어지고 있다.
지금도 안동의 각 문종 종택이나 서원문 밖에는 어김없이 회화나무가 서 있다. 옛 군청 마당과 향교터인 시청마당, 도산서원 광명실 앞, 집성촌인 내앞마을, 소산마을, 가일·하회·오미·하리마을 등 안동의 집집마다 우뚝 서 있다.
또 임하댐 건설로 수몰로 물에 잠긴 무실종택 앞에 서있던 회화나무도 수곡리 이주단지로 옮겨 심을 정도로 이 나무에 대한 사연과 사랑은 깊다 하겠다.
이 나무는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 임청각 앞에서 대문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임청각의 기운을 꺾어 맥(脈)을 끊기 위해 임청각 아래채를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철길을 놓아 일제에 항거한 민족의 기상을 꺾으려 했던 역사가 있는 고목이다.
![]() |
◇ 안동시내에서 안동댐으로 가는 길 ´석주로´ 2차 도로 한복판에 서 있던 회화나무 ⓒ 안동시 제공 |
그 후 이 나무는 안동을 찾거나 또는 일부 시민들이 교통에 불편을 느낀다며 나무를 베어야 한다는 등 핍박을 받으며 '위험장애물'이란 이름표를 달고 역사의 천덕꾸러기로 서 있었다.
안동인의 삶과 고성이씨 임청각의 혼, 무속인들이 내림굿을 받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던 임청각 앞 회화나무의 일화가 이제 사려져 가게 됐다.
안동시 관계자는 "길을 확장하는 것은 지금의 좌우측으로 얼마든지 가능한데 베어져 나갔다"며 "일제의 만행, 안동댐 축조의 흔적, 석주선생의 나라사랑 마음 등 회화나무의 파란만장한 사연도 문화가 될 수 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동시와 수자원공사안동댐관리단은 < 데일리안 > 과의 통화에서 "이 나무가 어떻게 잘려 나갔는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는 없다"며 "누가 했는지에 대한 정황을 파악 중이다"라고 말했다.
-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역사 2 (인물,소설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772함 수병(水兵)은 귀환(歸還)하라 (0) | 2010.04.02 |
---|---|
[스크랩] 천안함 실종자 생환 기원詩 네티즌 심금 울려 (0) | 2010.04.02 |
황희의 '청백리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0) | 2008.07.13 |
황희는 청백리한 인물이 아니었다? (0) | 2008.07.13 |
[평전] 김삼웅의 안중근 평전 (0) | 2008.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