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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생각한다

죽어라 공부한다

by 아름다운비행 2006. 11. 15.

우리나라의 교육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짧은 글.

'전문가 친구들 Xpert'에서 옮겨옴.

글을 올린 전문가 : 현영삼      이메일 : youth@xpert.co.kr

http://www.xpert.co.kr/main/xpert/ArticleCategory.asp?xid=youth

 

 

 

 

죽어라 공부한다(1)

 

 세계 각국의 유수 대학들이 ‘선진 대학’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생의 엄청난 공부량과 이를 유도하는 교수, 학교측의 엄격한 학사관리…. 여기에 학문에의 열정을 놓치 않는 교수들의 노력 등이 어우러져 있다. 이들이 그 나라의 경쟁력을 만든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스탠퍼드대, 일본 도쿄대, 중국 칭화대, 싱가포르 국립대 등 5개 대학의 성공인자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했는지를 시리즈로 살핀다. (편집자)

지난해 11월 23일 오전 7시40분, 중국 베이징 소재 칭화대 공대강의동으로 사용되는 기과루 1층 대형 강의실. 컴퓨터공학과 학생 180명 전원이 이미 강의실에 도착해 자습을 하고 있다. 오전 8시 1교시를 20분이나 앞둔 시각이지만 면학 열기는 만만치 않다. 오전 7시에 도착했다는 자이윈펑(19)군은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맨 뒷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속삭였다.

11월 7일 밤 1시 영국 옥스퍼드대 허트포트 칼리지 기숙사. 지리학과 2학년 헤일리 벤틀리(20)양은 이틀밤을 새 충혈된 눈으로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다음날 교수와의 1대1 수업 때문이다. 1주일간 읽은 참고서는모두 10권. 이를 소화해 2000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써 교수와 토론해야 한다. 그녀는 “매주 1대1 수업을 위해 교수가 준 참고도서 목록을 받아들면 숨이 막힌다”며 한숨을 쉬었다. 옥스퍼드에는 개강 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우울해지는 5주째를 빗대 ‘5th week blues’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도 있다.

세계 선진대학의 학생들은 공부로 날이 새고, 공부로 날이 진다. 매 시간을 쪼개 써야 할 만큼 절대 학습요구량이 많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학생 1인당 수업을 제외한 하루 평균 개인 학습량은 8시간(99년 통계). 먹고 자는 시간 빼고 대부분 공부한다는 말이 된다. “통계는 없지만 옥스퍼드 학생들은 수업을 빼고 1주에 50시간 이상을 공부한다”(랄프 월러 해리스 맨체스터 칼리지 학장).

 

 

죽어라 공부한다(2)

 

 한국 학생들의 공부시간은 내놓고 비교하기가 부끄럽다. 세계적인 석학들로 구성된 서울대 최고자문위원단(블루리본패널)이 서울대생 688명을 대상으로 수업시간 외에 하루 공부시간을 조사한 결과 ‘전혀 안 한다’는 응답이 13%, 2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학생이 전체의69%였다.

한국 학생들의 수업시간이 외국 대학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중국 칭화대의 졸업 필수학점은 180학점. 서울대는 130학점이다. 나머지 시간은 어디에 쓰는 것일까. 서울대 경영학과 3학년 윤모(24)씨는 “대학 들어와서 맨 처음 배운게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로 시작하는 ‘상대가’라는 노래”라고 했다.

시험기간 중 벼락치기 공부만 해도 졸업에 별 지장이 없다는 서울대는 외국 유학생들이 보기에는 신기한 학교다. 칭화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로 유학온 중국 학생 이모(25)씨는 “내내놀다가 시험 때면 바빠지는 동료들의 모습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선진대학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우선 수업마다 제출해야 하는 숙제량이 엄청나다. 스탠퍼드 공학부 2학년 매트 스타이너(20)군은 하루를 수업?아르바이트?숙제로 3등분해서 생활한다. 아침 8시쯤 일어나 오전에 경제학 1시간, 오후에 물리학, 기초공학 등 2시간의 수업을 듣는다. 이후 오후 5시까지 2시간은 교내 아르바이트 시간. 저녁을 먹고 보통 1주에 한 번씩 있는 경제학 및 물리학 조별 수업에 참석했다가 오후 9시쯤 숙제를 시작한다. 과목마다 문제풀이용 숙제인 ‘problem set’가 주어지고 간혹 리포트용 에세이도 써야 하기 때문에 항상 밤 2~3시까지 공부해야 한다.

싱가포르 국립대 인도네시아 유학생 샹게라(동남아학)씨는 “시험 기간이 아닌데도 학생들이 아침 7시부터 밤11시까지 늘 도서관을 지킨다”고 말했다. 스탠퍼드의 경우 교수가 학기 초에 나눠주는 A4 용지 150쪽 분량의 자습서 ‘reader’를 미리 읽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

칭화대 학생들의 공식적인 하루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돼 학교측이 전원을 꺼버리는 오후 11시에 끝난다. 하지만 학부생들은 이후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충전등을 켜서 공부한다. 이 충전등마저 꺼지면 전기가 들어오는 복도나 화장실에서 공부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옥스퍼드에서는 1대1 수업준비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써야 할 에세이가 밀리는 상황을 ‘essay crisis(에세이 재난)’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이때 자살을 생각한다’는 말이 퍼져 있다.

 

 

죽어라 공부한다(3)

 

 스탠퍼드는 시험기간 중에는 도서관옆 식당이나 강의실을 24시간 개방해 학생들을 지원하고, 옥스퍼드는 칼리지마다 있는 도서관을 학생들이 24시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공부하다 늦는 여학생들을 위해 학생회는 ‘옥스퍼드 여학생 심야버스’라는 이름의 에스코트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탠퍼드에서는 대학 경찰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요즘 ‘수재를 바보로 만든다”는 국내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동경대이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미사즈 유카리(미국학?3년)씨는 ‘성(성?gender) 사회학’ 수업 리포트 작성에만 사흘 밤을 샜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고 서점에서 책을 구해 읽느라 제출 마감 몇 주 전부터 하루 5~6시간을 꼬박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전력을 다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답을 옥스퍼드 교무부장 폴 슬랙 교수가 내놨다. “우리 학생들이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그리는 작업을 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낙제를 면해야 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고요.”

<조선일보 2002/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