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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순2

[인물 43] 석계선생의 아들 장광순 인천 박문여자중·고등학교 설립자인 장석우 선생을 거론하면서 아들인 '소계(少溪) 장광순(1907~1998)' 선생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장광순 선생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을 두고 양로원을 건립할 지 학교를 지을 지 고민하던 장석우 선생의 결심을 교육사업으로 굳히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학교 설립 1년만에 유명을 달리 한 부친을 대신해 사실상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해방 직후에는 천주교 서울교구에 학교를 넘겨줬다. 학교를 천주교 재단에 양도한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다. '해방이 되자 입학시험에 불합격했던 학생의 학부형들이 집단으로 학교를 사회에 기증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해 우리는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과거 동경(도쿄)에 있는 쌍엽(雙葉)학원.. 2006. 10. 14.
[인천인물 100인] 43. 장석우 "나라가 잘되려면 여자가 배워야 한다" 근대 여성교육 '희망' 일구다 ▲ 1940년 12월 부평동 현 경찰종합학교에서 진행된 소화고등여학교 교사 신축 기공식 장면. >43< 민족자본가 석계 장석우선생 선생이 지난 1940년 설립한 인천 소화고등여학교(현 인천 박문여자중·고등학교)는 당시 여성교육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인천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인천에는 인천공립고등여학교(현 인천여고)가 있었지만 일본인 자녀가 주로 다니고 한국인 학생은 불과 2~3명이 특별 입학하는 등 여성 교육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선생의 1남 2녀중 막내 딸인 장보원(92·미국 LA거주)씨는 “평소 아버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잘 되려면 여성이 배워야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기억하고 있어 여학교를 설립하게된 배경을 짐작케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평소 장 선생은 나라를 잃은.. 2006.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