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1 [인천인물 100인] 42. 계몽가 강화석·강준 부자 [인천인물100人·42] 계몽가 강화석·강준 부자 개화기 근대문물 토착화 '신지식인' 김신태 기자 / 발행일 2006-03-02 제0면 >42< 계몽가 강화석·강준 부자 가톨릭 신자이자 관인의 신분으로 개항당시 인천지역사회에 깊이 관여하며 종교와 교육, 계몽운동을 활발히 펼친 강화석(세례명 요한). 그리고 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천주교에 입문한 강준(세례명 바오로) 역시 신앙생활은 물론 교육사업에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갔다. 하지만 강화석이 아들(강준 1910년 이주)을 따라 1917년 황해도 수안지방의 들무정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인천을 떠나게 된다. 특히 관직에 있으면서 근대화된 문물을 받아들여 계몽가로도 활동한 강화석은 당시 보기 드문 신지식인중 한사람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19.. 2006. 10. 1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