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hmynews의 블로그 "독도사랑"의 '명성황후'중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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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는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라
출처 : 서울흥사단
(서울=뉴스와이어) 2006년06월06일-- 성 명 서
“ 일본정부는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라 ”
-
야마가타 육군대장이 무쓰 외상에게 보낸 편지는 日내각 개입 결정적 증거 -
최문형(역사학) 한양대 명예교수가 공개한 야마가타 아리모토 육군대장이 1895년 7월 8일 무쓰 누네미쓰 외상에게 보낸
편지를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찾아내 사본과 내용을 공개했다. 최문형 교수가 공개한 자료는 일본 학자조차도 “정말로 무서운 것을
찾아냈다. 일본인으로서는 짐작은 했지만 찾아내기는 힘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다“ 고 평가할 정도의 실로 엄청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자료라 할 것이다.
공개한 자료는 당시 일본내각이 명성황후 시해(1985.10.8)를 주도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외의 정세에 방관 좌시할 수 없다는 문구의 당시 정세 해석(1895.7.8)과 각의에서 결정되는 대로 단행하시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서신
이후 청일전쟁이후 ‘3국 간섭’ 등 긴박한 시기에 외교에 문외한인 육군 중장출신 미우라를 주한 일본전권 공사로 임명하고, 석 달 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집단의 침입으로 시해된 것처럼 꾸민 을미사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미우라 공사는 9월21일 한성신문 사장에게 ‘여우사냥’을
운운하기도 했다.
그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乙未事變)에 대해 한일간은 물론, 국내에서도 여러 논쟁이 있어왔다. 최근에는
이태진(李泰鎭)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본 외무성 부설 외교사료관에서 찾아내 ‘한국 왕비 살해 일건(一件) 제2권’에 수록된 기밀문건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의 경성 주재 일등영사 우치다 사다쓰지(內田定槌)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을미사변 직후 직접 현장을 조사한 뒤 사건 발생 후
석 달이 채 안된 1895년 12월 21일 본국에 진상을 보고한 내용으로, 보고서는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인들이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소가 있던 건청궁(乾淸宮)에 침입한 경로와 황후 시해 지점(침전 바깥 틀), 황후의 시신을 잠시 안치했던 장소(옥호루)와
시신을 불태운 지점(녹산)을 표시하고 있다.
서울흥사단은 위의 공개된 일본측 자료의 내용에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침탈을 위해 일국의 국모를 뜰에서 처참하게 시해하고, 증거인멸을 위해 시신을 불태웠던 파렴치한 일제의 행위가 일본 내각에 의해 치밀하게
주도되었다는 사실을 어떤 이성으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그간 일본정부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낭인들이 우발적으로 주도했다’고 주장해지만, 최문형
교수님의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내각이 직접 개입했다는 분명한 역사적 증거가 만천하게 공개되었다.
이에 일본정부는 당시 日내각이
조선강제합병을 위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주도했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유족들은 물론 한국민들에게 사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에 여러 덧칠을 가하는 식으로 여전히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공작을 자행한다면, 한국민들은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아울러 일본학자들 또한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결코 은폐되지 않는다. 일본의
양심적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110여년전의 사건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일본의 우경화는 패권적 군국주의 부활을 회책하는 세력이 주도하고
있고, 그 세력의 근간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주도한 세력의 계승자로 연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성찰해 줄 것을 바란다.
한국정부 또한 명성황후 시해를 일본정부가 주도했다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밝혀진 이상, 그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 및 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정부는 당시 일본내각이 주도한 명성황후 파렴치한 시해 등 역사적 진실을 인정치 않은 일본이
독도문제가 역사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위안부’ 실체 부정,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참배, 평화헌법 개정 등 일련의 우경화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는 흐름의 본질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 이 자료는 http://seoulyka.or.kr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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